빌 브라이슨 언어의 탄생 - 영어의 역사, 그리고 세상 모든 언어에 관하여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 유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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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를 영어영문과를 지원했지만 아쉽게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문과 출신인 나는 아직도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삼십년 째 밥벌이를 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IT관련 일이다. 영어영문과를 떨어진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만약 그때 영어영문과를 들어갔다면 인생의 판로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자못 궁금한 정도랄까.


우리는 자신의 근원이 무엇인지 찾고 싶을 때가 있다. 난 어학이나 문학 쪽이 아니었나 싶다. 당연히 영어에도 관심이 많아 번역 일에 도전해볼까 잠시 주춤하기도 했던 적이 있다. 하나를 더 말하자면 소설과 글쓰기다. 십년 넘게 여기에 매료되어 언젠가는 꼭 책(소설)을 쓸 거야, 하는 목표는 아직도 가슴 깊숙한 곳에 간직한 채 살고 있다. 실천을 못하는 것은 나의 게으름이 동반한 핑계일 수도 있다. 아직 그 시기가 오지 않은 것이라고 하는, 어떤 계기가 오지 않은 탓을 은근슬쩍 차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느긋한 마음을 먹는 이유는 어차피 인생은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지만, 좀 게으르다고 해서 큰일 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하면 되는 거니까. 인생은 기니까. 이놈의 게으름이란.


삼십년 전으로 돌아가서 이 책을 봤더라면 어쩌면 원래 하고 싶은 길을 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쓸모없는 짓이라고 질책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하지만 나의 마음의 고향이 그렇다는데 어쩔 것인가. 아무튼 지금부터라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진짜?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이 책의 힘을 빌려 한 번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당장 할 수는 없고, 그건 용기가 없어서 어떤 계기가 필요한데, 성큼 그 놈을 때려잡기라도 할라치면 저만치 도망가니 이를 어쩐다? 포기는 금물이므로 이 두꺼운 책을 천천히 읽어 내려갈 수밖에. 읽다보니 벌써 많은 페이지를 넘겼고 조금 있으면 목표지점에 도달할 날이 올 것이므로 더 힘을 내서 영어 완전 정복이 오는 그 날까지 파이팅하자.


“언어란 과학이 아니라 오히려 유행이며 용법과 철자와 발음의 문제는 마치 옷단의 공그른 선처럼 이리저리 탈선하는 성향이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는 것은 그것이 더 쉽고 더 이치에 맞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문장이 뒤통수를 한 대 걷어차고 지나간다. 왜 이걸 진작 몰랐을까?


그리고 살아남은 영어의 역사를 빌 브라이슨과 쫓다 보면 2000여 개의 단어를 창조한 언어 천재 셰익스피어, 인터넷은커녕 주변에 도서관도 하나 없는 상황에서 4만 3000개의 단어를 정의하고, 11만 4000개의 예문을 덧붙여 1775년에 《영어 사전》을 편찬한 새뮤얼 존슨, 40년에 걸쳐 1만 5000여쪽에 달하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편찬 책임자였던 은행 출신의 독학 언어학자 제임스 어거스틴 헨리 머리 같은 인물들뿐만 아니라 단어를 잘못 해석하여 역사가 바뀌었을 만한 결정적 사건들도 마주하게 된다. 또한 빌 브라이슨은 단어, 철자법, 발음 같은 기본 요소부터 방대한 단어의 정의를 담아낸 사전 편찬자들의 이야기, 1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모욕적인 욕설의 특성, 그리고 한때 사람들에게 앉아서 하는 오락 중 가장 인기가 높았던 십자말풀이 같은 말놀이에 이르기까지 언어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낱낱이 해부하고 있다.


이제껏 몰랐던 영어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읽다보면 영어단어 하나 외우려고 안간힘을 썼던 지난날의 고통의 시간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귀중한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책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걸. 그리고 영어영문학과를 선택한 내가 잘 못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원래 목표를 언젠가는 꼭 이루리라는 걸. 이 책을 읽고 못 이룬 영어에 도전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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