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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엄마 ㅣ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9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 / 202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간다는 것. 이 엄청남 말의 의미를 이 어린 작가가 알고 있을까. 어리다고 무시한 게 아니라 아이어른이 된 이 작가의 동심세계를 나름대로 그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의 세계를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일어서였다. 모르면 더 좋았을 것을. 아이는 아이답게 커야하거늘.
아이는 아이답게 커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면 지론이다. 어차피 어른이 되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될 것을 미리 알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어른의 세계를. 끔직하다 못해 숨이 턱턱 막히는 그리고 현실을 방황하는 어른의 세계를. 고통으로 얼룩진 어른의 세계를. 그런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어른들을.
요즘, 우리 사회도 병들어가고 있다. 아동학대가 그 증거다. 연약하고 연약한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을 떠나, 학대를 가하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사회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정말 알 길이 없다. 정의로운 사회에서 벗어나면 그 사회는 망하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부패가 만연하고,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서로간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서로 못 믿는 사회가 그런 사회인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엄마’라는 말의 무거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떠난 사람이 어느 날 우리 앞에 나타났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가난하지만 엄마와 단둘이 씩씩하게 살아가는 중학생 소녀 하나미는 어느 날 집 앞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는 할머니를 만난다. 느닷없이 말을 걸어오더니 엄마를 찾는 이상한 할머니. 게다가 이 다쓰요 씨라는 사람, 보통 할머니들과는 다르게 아주 무례하고 괴팍하고 제멋대로다. 근데 알고 보니 이 할머니가 한참 전에 돌아가신 줄 알고 있던 ‘엄마의 엄마’라는 게 아닌가. “거, 거짓말. 할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 세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엄마의 엄마』 중 책의 절반에 달하는 「태양은 외톨이」에서 하나미-엄마-할머니, 삼대 모녀의 누구도 원하지 않는 동거가 시작되는 장면이다. 하나미의 밝은 시선을 따라 자칫 심각해질 수 있는 모녀의 사연이 명랑하게 묘사되고, 베일에 싸여 있던 엄마의 과거가 조금씩 드러난다. 딸을 버린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를 ‘엄마’라 부르지 않기로 다짐한 엄마의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엄마의 엄마』 출간 후 인터뷰에서 스즈키 루리카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 뒤로,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간다는 것”에 관해 줄곧 생각해왔다고 말한다. 그처럼 작가가 만든 세계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은 잔잔한 아픔과 함께 그저 뚜벅뚜벅 있는 힘껏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같은 인터뷰에서 작가는 고백했다. 어떤 관계이든지 어딘가에는 빛이 존재한다고, 그리고 마지막은 빛나며 마무리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작가라면 위와 같은 가치관을 가져야 마땅하나, 개인의 노력보다는 사회의 공동체가 정의와 평등으로 『진보와 빈곤』에서 말하는 평화의 왕이 다스리는 나라, 즉 유토피아를 실현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빈곤이 타파되면, 탐욕이 고결한 열정으로 변하면, 인간을 반목하게 하는 질투와 두려움 대신에 인류애가 평등으로부터 피어나면, 최하층도 안락과 여가를 누리는 상황이 되어 정신력에 대한 속박이 풀리면, 우리 문명이 얼마나 높이 날아오를지 누가 측정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