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02 - 멋진 신세계, 2021.1.2.3
문지혁 외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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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린 디스토피아에 살고 있을까? 디스토피아 관련 소설이 많은 것을 보면, 왜 그러한 책들이 넘쳐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가련한 못짐처럼, 현실에 빗대어 암울한 미래가 예견되어 있기라도 하듯, 희망보다는 절망으로 점철된 세계, 암울한 미래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끌고가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의 시선을 이끄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그 많은 예언서와도 같은 책들이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걸음은 제자리에 서있는 느낌이다. 아니, 오히려 퇴행적인,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난듯 을씨년스럽다. 왜냐하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여행을 비롯해서 소소한 행복이었던 지인들과의 모임까지 취소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미래가 5년이나 앞당겨졌다는 말도 일부 있지만, 그렇게 되었다면(일부 시인은 하지만) 희망으로 인해 기쁨이 넘쳐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 부당하고 억울함을 어떻게 극복해야 한단 말인가.

《에픽 #02》의 제호는 ‘멋진 신세계’다. 디스토피아 소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이기도 한 이 책은 코로나로 인한 우리의 현실을 대면하게 한다. 하지만 마냥 부정적인 시각만 간직할 수는 없기에 한 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현실을 부정하고 탈피하려는 사람들이 존재하는한 우리에겐 희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을 탄압하고 귀찮게 구는, 그 어떠한 힘에도 굴복하거나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에세이와 소설을 함께 읽을 수 있는 기쁨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크리에이티브 논픽션 파트인 ‘part 1’에는 앞서 언급된 문지혁의 글과 함께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이 기록한 여성 노숙인의 이야기, 소설가 정명섭이 고백하는 그가 밀덕(밀리터리 덕후)이 된 연유, 에세이스트 남궁인이 채록한 응급실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실려 있다. 픽션 파트인 ‘part 3’에서는 김솔, 김홍, 송시우, 이주란, 황정은의 신작 단편소설을 읽을 수 있다. 2020년대 한국 사회가 보여주는 디스토피아 속 역설을 이들 작품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노숙인의 이야기는 픽션이 아니어서 우리에게 더 울림을 준다.

‘part 2’에서는 편집자 김화진, 평론가 이지용, 임지훈이 논픽션과 픽션 도서를 엮여 소개한 1+1 리뷰,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 「스페인 하숙」 「여름방학」 등의 작가인 김대주의 버추얼 에세이 ‘if i’를 통해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건널 수 있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제목 자체로 지독한 역설이다. 그럼에도 ‘멋진 신세계’라는 말을 발음할 때마다 어떤 기대감으로 마음이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우리가 맞이한 ‘뉴노멀(신세계)’은 전혀 멋지다고 할 수 없지만, 전염병의 공포에 맞서면서도 일상을 가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때때로 경탄한 한 해였다. 2020년의 디스토피아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낸 모든 이들이 2021년에는 저마다 순수한 의미에서의 ‘멋진 신세계’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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