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회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6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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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한 지 어언 28년째이다.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직장 내 풍경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현대인은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개인주의가 만연하다보니 자신이 올라가려면 타인을 꺾어야 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지는 곳이 직장이다.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삶은 점점 더 숨이 막힐 정도로 건조해진다. 그 속에서 치열한 전투가 매일 벌어지는데, 총이 없을 뿐이지 보이지 않는 총알은 머리 위로 슝슝 지나다닌다.

 

직장 내 정치는 이제 보편화됐다. 누구든 사내 정치에 뛰어든다. 그렇다고 대놓고 유세를 하지는 않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 그림자 뒤에서 숨 가쁘게 움직일 따름이다. 기득권을 잡으려고 보이지 않는 손들은 은밀한 악수로 서로 협약한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가. 직장 내 정의란 존재하는 것일까. 갈수록 심각해지는 권의의식은 어느새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졌다. 이 거인을 꺾을 수 있는 다윗은 어디에 있는가.

 

이 책의 저자 이케이도 준이 우리에게도 첨예한 문제인 내부고발을 다룬 군상극일곱 개의 회의로 한국 독자를 찾아왔다. 현지에서는 출간 반년 만에 NHK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며, 인기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 출연진이 대거 출격한 영화 <일곱 개의 회의>(국내 개봉명:내부고발자들월급쟁이의 전쟁)는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소설 일곱 개의 회의120만 부 이상이 판매되며 각종 도서 차트에서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는 등 단 한 권에 이케이도 준의 매력을 채워 담은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감추려는 자와 드러내려는 자가 벌이는 처절한 파워 게임. 실적 압박 때문에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한 영업부 회의실. 온종일 조는 게 일상인 만년 계장 야스미는 오늘도 어김없이 졸다가 발표를 망친다. 이 일로 갈등이 촉발되어, 직속 상사이자 영업부 에이스로 칭송이 자자한 사카도는 야스미에게 노골적으로 폭언과 질책을 퍼붓기 시작한다. 그러자 야스미는 기다렸다는 듯 사카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발해버린다. 결과가 뻔해 보이는 에이스와 구제불능의 대결.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사카도에게 대기 발령 조치가 내려진다. 이해할 수 없는 인사의 배경에는 누구도 상상 못 한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었는데…….

 

작가는 챕터마다 인물과 시점을 바꿔가며 이야기를 차곡차곡 겹쳐나가는데, 하나의 사건을 중심에 놓고 다양한 방향에서 압박해가는 구성 덕분에 긴장의 끈은 한순간도 느슨해지지 않는다. 아울러,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 지시에 순응하는 사람, 수수방관하는 사람, 자기 보신밖에 모르는 사람 등 어느 조직에나 존재할 법한 현실적 캐릭터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진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또한 거부하기 힘든 매력이다. 그 인물들이 생존을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이전투구를 거듭하는 모습은 리얼리티 그 자체. 그러나 시종 내부고발을 둘러싼 갈등에 대해 다루면서도, 작가는 권선징악이라는 전형적 메시지에 매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완전한 승자도 완전한 패자도 없는 씁쓸한 현실을 포장 없이 내민다. 책장을 덮은 다음 바른 일이란 무엇인가’ ‘직장인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자문해보는 것도 유의미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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