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줘
이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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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암울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 얼마 전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한동안 디스토피아 소설에 매료된 적이 있다. 상상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인간이 다양한 군상. 그들의 처절한 모습 속에서 적나라한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다. 한 줌 먼지로 사라질 보잘 것 없는 인간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쯧쯧 혀를 내두른다. 밑바닥 인생, 최악의 상황이 오면 인간은 동물이 되고 본능만이 남는다. 그 본능이라 함은 먹고, 싸고, 쾌락에 빠지고,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성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적자생존의 상태.

 

이 책 소원을 말해줘도 상상의 공간과 인물을 창조해 디스토피아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저자가 이런 끔직한 세계를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 피부 각화증. 온몸이 허물로 덮이는 피부병을 기저로 한 이 소설은 전에 없었던 새로운 이야기이다. 또한 작가의 상상력이란 정말 무궁무진하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7년 동안이나 꽁꽁 숨겨온 이야기를 푸는 순간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생각과 함께, 입이 근질근질 할만도 할 텐데 그걸 어떻게 참았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들게 했다.

 

7년 만에 탈고한 이 장편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거대 제약 회사가 지배하는 인구 50만의 기획 도시. 주인공 그녀는 거대 파충류 사육사다. 석 달 전 산사태로 동물원이 무너지자 야생동물들은 도시 곳곳으로 흩어지고 도시는 혼란에 빠진다. 그녀는 비단뱀을 찾아 D구역으로 간다. D구역에 격리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피부 각화증이 심해져 뱀의 허물 같은 각질이 온 몸을 뒤덮는 풍토병을 앓고 있다. 그들은 전설 속 거대 뱀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세상의 모든 허물이 영원히 벗겨진다고 믿고 있다.

 

롱롱을 찾으면 정말 허물을 벗을 수 있을까. 영원히 허물을 벗으면 한 번도 허물 입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한 번도 버림받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전설의 뱀 롱롱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진 도시는 허물을 영원히 벗으려는 열망에 휩싸인다. 시민들은 판타지 속에 투영된 자신들의 욕망은 거짓이 아니었단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의 생생한 분노가 그 증거다. 판타지의 붕괴가 가져온 비참한 현실을 직시한다. 판타지를 부풀린 것은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이며, 지금 당장 판타지와 현실을 잇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침내 시민들은 거대한 뱀처럼 꿈틀거린다. 허물에 덮인 자들이 꿈틀거리며 D구역의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도시정부와 거대 기업이 모의한 충격적인 음모가 드러난다.

 

공포란 인간의 욕망과 여러모로 비슷하지. 공포가 공포를 낳는 것처럼 욕망이 욕망을 낳는다네. 내가 공포를 이용했다면 자네는 욕망을 이용한 거야. 허물을 벗고자 하는 욕망. 그게 죄라면, 자네와 내가 저지른 죄의 무게는 비슷할 걸세.”

 

미래의 암울한 밤의 도시 D구역에 격리된 사람들. 그 속에서 인간들은 각자의 욕망대로 꿈틀댄다. 현대인들의 생활과 연관지어보면 현재 자신이 처한 곳이 어쩌면 D구역이자 디스토피아가 아닐까싶다. 뱀처럼 꿈틀거리며 흘러내리는 용광로 같은 인간의 욕망이란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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