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ㅣ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세 모녀 이야기가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세 모녀는 생활고를 못 이겨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 글은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어느새 무감각해진 가슴에서 무겁고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경종을 울리는 소리였다. 동그래진 눈과 짝 벌린 입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 모습, 그대로였다.
이 소설은 세 모녀의 이야기와 닮은 두 모녀의 이야기이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죽음보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는 데에 있다. 소설의 힘은 이런 데서 발휘되는 것 같다. 현실과 다른 상상으로 희망을 부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소설의 작가는 어른이 아니다. 소설의 주인공과 나이가 비슷한 십대다. 십대의 감성이 책 곳곳을 가득 채우며 전업 작가와는 다른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다. 아울러 전체적인 플롯이나 문체가 어른들 못지않다. 오히려 초등학생이 쓴 글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아이, 다나카 하나미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아이는 아이답게 커야하지만 이미 훌쩍 커버린 하나미를 볼 때, 마음 한 구석이 짠한 감정이 일어난다. 특히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에선 진한 감동이 밀려오는 데, 여기서 작가의 감수성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두 모녀의 애틋한 사랑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어쩌면 그건 같은 또래의 작가가 주인공에게 이입되어 발생하는 순수 그 자체라고 얘기할 수 있다. 그 점이 성인 작가가 어린 주인공을 내세워 쓸 때와 사뭇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다섯 개의 단편에는 희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언젠가 어딘가에서」에서 담임 선생님께 ‘어느 가정에나 비밀로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는 의미인 ‘장식장 안의 해골’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 집 해골은 이 찻장으로는 다 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던 하나미는 「꽃도 열매도 있다」에서 ‘비록 바늘 끝처럼 보잘것없는 희망이라도, 희미한 빛이라도, 환상이라도, 그게 있으면 어떻게든 매달려서 살 수 있’다는 겐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안녕, 다나카」에서 입시 스트레스 때문에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며 고통받는 신야에게 다나카 모녀는 인생의 가치란 좋은 학력과 부에 있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주며 다시 살아갈 힘을 선사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펴내며 ‘희망이 느껴지는 소설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고 하니,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옛 속담을 떠오르게 한다. 더욱이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픈 일이 생기면 일단 밥을 먹으렴. 한 끼를 먹었으면 그 한 끼만큼 살아. 그렇게 어떻게든 견디면서 삶을 이어가는 거야.”라는 엄마의 말은 희망이란 이처럼 단순하면서 명쾌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희망’이란, 무엇인가. 혹독한 강제수용소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 희망이라는 두 글자였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이, 또 자주 이 단어를 떠올리는가.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이 소설의 두 모녀처럼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살았으면 좋겠고, 그렇게 살기를 희망한다. 이와 같은 소중한 단어를 상기하게끔 해 준 이 책의 저자와 주인공에게도 감사함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