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서인이 내세웠던 이데올로기는 명을 향한 '사대', 그리고 명을 무너뜨린 원수 청을 향한 '복수'였다. 인조의 뒤를 이은 효종과 함께 '북벌'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는 집권을 위한 표어였을 뿐, 실제로 북벌을 추진할 생각은 없었다. 서인과 윤휴의 갈등은 여기서 시작한다. 윤휴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했던 북벌을 실제로 추진하려 했다.
서인이 북벌을 이데올로기로만 내세웠던 건, 당시 조선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경신대기근으로 온 나라가 굶주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쟁은 자살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윤휴는 북벌을 추진하기 위해 조선을 개혁하려고 했다. 서얼제도, 방군수포제 등 사회 병폐를 완화하여 조선 사회 시스템을 회복시킨 다음 전쟁을 수행하고자 했다. 하지만, 서얼제도와 방군수포제는 기득권인 양반의 강한 반발에 부딪힌다. 같은 당파에도 비판받을 정도였다. 결국, 그의 개혁은 환국 정치를 거치면서 실패로 돌아간다.
현대의 시점에서 봐도 북벌 추진은 무리수다.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공민왕의 요동 정벌처럼 일시적인 성공에 그쳤을 확률이 높다. 일단, 조선의 상황이 말이 아니었다. 여러 폐단을 바로잡고, 비효율적인 제도를 개혁한다고 해도 조선이 청나라와 대척할 수 있을 정도의 국력을 갖추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한 세대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청나라를 자극했다가 몽골과 고려 관계처럼 완전한 속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광해군이 괜히 중립 외교를 수행하려고 한 게 아니다. 윤휴의 북벌론도 이데올로기다.
저자는 상당히 '서인'에 적대적으로 서술하면서, 그들과 대척점에 서있던 '남인'과 윤휴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승리자의 입장인 서인의 관점에서 쓰였고, 서인은 상당히 부패한 집단으로 봤다. 그들과 맞선 윤휴는 자주적이고 합리적인 개혁가로 조명했다. 하지만, 서인도 긍정적이 부분이 많다. 또한, 송시열이 신분제를 옹호하는 주자학을 고집했고, 윤휴는 이를 개혁하려 한 개혁가로 다룬다. 실상은 송시열도 주자학의 한계를 인정했고, 그리 교조적인 사람도 아니었다. 반대로, 윤휴는 대표적인 민생 개혁인 대동법에 반대했다. 저자의 주관적인 견해가 짙은 책이라, 조심해야 한다. 저자는 흑과 백을 명확히 구분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현대 진보와 보수처럼 서인과 남인의 대립도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