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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
앨러스테어 레이놀즈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5년 7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독서한 뒤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당신이 사실이라 믿는 것이 사실이 아니다.” 수많은 책과 영화들이
케치프레이즈 (catchphrase)로 내걸고, 수많은 비평가들이
사용하기에 이것보다 더 극적이고 눈길을 끄는 문장은 없을 것이다. 특히 장르물에서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이 나온 이상 이 문장은 앞으로 이 책의 이야기를 나타내는 고유 문장으로 한 동안 존재할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
소개 글이나 전문가 혹은 독자들의 리뷰를 먼저 훑어보고 큰 반전이 있겠구나 지레짐작은 했었다. 근데
내가 예상했던 반전은 그저 미미한 한 조각일 뿐이었다. 물론 중간부터 약간의 의심은 있었다. 반전의 끝의 존재는 어쩌면 사고가 빨리 돌아가는 매니아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했을 건데(물론 나는 그 중에 속하기엔 부족하다.), 반전으로 가는 길이 깔끔한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 달동네 골목같이 너무나 구불구불하고 지름길과 막다른 길이 혼재되어 있는 그런 길이며 후반으로 갈수록 길을 나아가면
어딘가 어떤 포인트에서 강제로 튕겨 나가지는 그래서 다시 시작점으로 내동댕이 쳐져 땅바닥에 뒹구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다. 나의 이 표현이 내용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느껴지는가? 아니. 오히려 내 나름의 극찬의 표현이다. 내동댕이 쳐지면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어디까지 있나 확인해야만 하는 심정으로 책을 노려봤다. 심완선 평론가님 표현을 빌리자면 짜증
나도록 매혹적이다. 몇 번이고 내동댕이 쳐지고 땅바닥에 뒹굴어도 책을 포기하지 못하는 어떤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 즉 403페이지 분량 전체가 ‘끝까지 풀지 않고는 못 베길 수수께끼’ 인 것이다.
나는 보통 어떠한
책을 읽을 때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나 잊지 말아야 할 장치에 인덱스를 붙인다. 그리고 서평을 할 때
전후관계와 스토리를 잊지 않고 주제 문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메모장에 그때그때 포인트 문장과 감정을 기술해 둔다.
그런데 이 책의
시 공간 변화를 기억하고자 붙인 인덱스와 반복되는 현상을 기록한 인덱스, 그리고 중심 문장이라고 ‘당.시.에.’ 확.신.해서 붙인 인덱스
등등이 난무해져서 뭐가 뭔지 도저히 구별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고,
역시 중요 의미일 거라 생각해 기록해 둔 것들이 한 챕터 한 챕터 진행되면서 새로이 갱신되었기에 그것들 마저
혼잡해지고야 마는 결과를 만들고야 말았다. 나는 엄청 당황했다. 이러면
어떻게 이 책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지? 라는 생각에 길 잃은 아이 같은 당혹함이 가득해졌다.
그러다 마지막 100여장
남은 상황에서 모든 내용의 반전이 이뤄지고 주인공이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 동안 주인공 사일러스 코드가 무의식적(?)으로 거부해서 덩달아
나마저 튕겨졌던 진실의 장막이 걷힌다. 그러자 그렇게 진입이 강력히 금지되어 있던 진실의 공간으로 코드도
나도 스윽 미끄러지듯 입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진실은 잔인하고도 안타까우며 ‘기계처럼’ 차갑지만 또한 그 무엇보다 당연했다. 그 때부터는 이 책의 성격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바뀐다. 대
전제인 SF속에서 그 전까지는 모험 & 미스터리 물이었다면
지금부터는 그 무엇보다 인간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장 인간적인 요소가 없어져야 할 상황에서 그 어느때보다
‘인간 보편의’ 가치가 지켜지고 ‘인간적인’ 희생과 ‘인간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다. 아니 인간적이지 않아 더 가능한 결말인가?
많은 분들이 모험의
흥미와 위상전환이라는 난해한 수학적 의미, 그리고 마지막에 풀어지는 수수께끼에 중심을 두는 반면 난
이 두터운 책은 마지막 32장 약 20페이지를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강하게 생각한다. 물론 반전과 수수께끼 모두 엄청난 희열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난 그 32장의 20여페이지
전체 한 문장 한 문장을 절대 잊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은 지극히 차가운 하드 SF적이면서도 극도의 따스한 인간적인 책이라고 평하고 싶다.
***이 책은 미친 책이다(posi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