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이 되어라,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긍정성의 과잉이 활동성의 과잉을 가져오고 이로인해 후기 근대 사회의 인간은 ‘무언가‘를 행할 수 없는 탈진 피로 상태를 맞이한다.
(‘분노‘의 힘을 잃고 짜증만 남는다는 것도 공감이 되었다.)

이상적인 자신, 성공한 자신이라는 이상 자아는 현실 자아와 괴리되어있고 이로인해 스스로를 착취하면서도 자책하게 된다.
자유롭다고 생각하기에 더 벗어나기 어려운 고리같다.
실상은 성과 사회의 폭력이며 자신을 향한 폭력일지 모른다.

역자 후기의 말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나의 경영자다‘라고 말하는 책을 저자는 ‘나는 나의 자본가이며 착취자이다‘로 읽었다는 말.

힐링과 쉼이 넘치는 서가를 보면 지친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갈 힘을 다시 찾으려는 것이 느껴진다.

나 역시 성과 사회와 이상 자아에서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다.
타인을 착취하면 안되듯, 나 자신도 착취하면 안되겠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많이 생각하게 된 책이었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 P28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 P29

실상 활동과잉은 다름 아닌 정신적 탈진의 증상일 뿐이다. - P48

역설적이게도 활동과잉은 극단적으로 수동적인 형태의 행위로서 어떤 자유로운 행동의 여지도 남겨놓지 않는다. - P54

즉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면서 끝없이 자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추월해야 한다는 파괴적 강박 속에 빠지는 것이다. 자유를 가장한 이러한 자기 강요는 파국으로 끝날 뿐이다. - P101

타자에게서 오는 폭력이 사라지는 대신 스스로 만들어낸 폭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한 폭력은 희생자가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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