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서점에서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를 사서 읽은 후, 츠지무라 미즈키 작가를 알게 되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여러 인물들의 심리와 이야기가 섞이는 소설을 좋아하는데(특히 장르가 미스터리라면 더욱)오랜만에 취향에 닿은 작품을 읽게 되어 너무 행복했다.

그 후로 츠지무라 미즈키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는 중이다. <태양이 앉는 자리>도 읽고 싶은 책 목록에 넣어둔지 오래되었지만, 번번히 찾지 못하다가 얼마전 중고서점에서 발견했다.

현재까지 읽은 츠지무라 미즈키 작가의 책은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상),(하)>, <동그라미>, <거울 속 외딴성> 그리고 <태양이 앉는 자리>다.

아직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읽으면서 비슷하게 떠올린 생각이 있다. 첫번째는 이름을 장치로 잘 사용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다정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름을 이용해 헷갈리게 하는 장치는 아직도 속는 중이다. 처음 읽었을 때 받았던 충격에 여운이 오래갔었는데, <동그라미>의 단편 중 하나, <거울 속 외딴성>에 이어 <태양이 앉는 자리>에서도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정말 생각하지 못했다. 밝혀지고 나서 앞 내용을 보니 중간중간 복선이 숨겨진 게 그제야 보였다.
애칭이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게 늘 신기하다. 앞으로도 신기해 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작품을 읽을 때도 등장할지도 문득 궁금해진다.(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다정함을 느낀다는 게 더 좋은 이유는, 장르가 미스테리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 속에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있고, 그 비밀이 인물 사이를 날카롭게 찌른다. 하지만 미스테리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 공감하게 되고, 행복해지기를 바라게 된다면 그 비밀의 정체가 더 두려워진다. 비밀이 드러날 때가 가까워지면 그러지 마, 행복하게 해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미스테리 장르에선 너무 쓸쓸한 희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에서의 인물들은, 아픔을 가진 인물 미즈키의 주변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마지막까지도 서로의 아픔을 놓지 않았고, 결국에는 한뼘 더 성장하게 된다. 그 다정함이 이상하게 나는 눈물이 났다.

<태양이 앉는 자리>에서는 배우가 된 교코를 동창회에 나오게 하려고 마음을 모으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름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다들 열등감과 부족함을 가면 속에 숨긴다. 그 열등감의 방향이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그중 마음이 갔던 인물은 사토미 사에코였다. 사에코는 어린 시절 다른 이들에게 배척당한 기억이 있었고, 그래서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길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너무나 일찍 체념해버리는 모습이 씁쓸했다. 열등감은 비뚤어진 욕망을 만들고, 심지어 친구의 마음조차 왜곡해서 받아들이게 된다. 사에코의 이야기를 읽을 때 친구 기에가 정말로, 사에코를 좋아한 게 아닐까봐 걱정했다. 왜 기에는 사에코에게 온 편지를 찢어버렸을까? 왜 먼저 사에코에게 말을 걸었을까? 그 걱정은 사에코와 마사키의 관계까지 이어졌다. 두 사람의 관계를 읽는 부분에선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까 걱정되었다. 심지어 사에코는 마사키를 통해 기에를 이기고 싶었다는 욕망을(아...)직접 털어놓기까지 한다. 환장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기에는 생각보다 너무나...올곧은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덜 흔들리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사에코의 오해가 풀리는 장면에선 이전의 작품을 읽을 때처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소중한 친구에게 날아온 놀리는 편지에 화가 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데, 그걸 깨달은 순간 사에코는 기에가 화를 내는 일이 환상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친구의 마음을 온전히 받을 수 없어서, 사에코는 친구를 이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이 안타까웠고, 그럼에도 사에코를 찾아와 문을 열어달라고 한 기에의 마음도 생각할 수록 눈물이 났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믿는다. 긍정적인 의미로.

극단에 소속되었다는 소식을 숨기고, 배우가 된 동창생 교코를 생각하는 한다 사토미의 이야기도 안타까웠다. 비슷한 일을 하며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싶은 상태에서 이미 그곳에 닿은 누군가를, 한때 같은 교실에 있었던 사람을 보는 미묘한 박탈감과 부러움이란 감정이 너무 잘 느껴졌다. 동시에 다른 동창생의 외모를 깎아내리는 묘사까지, 그 열등감을 감추려는 것 같아 더 안타까웠다.

쓰다보니 교코의 얘기를 아직 꺼내지 못하게 되었다...
한때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이들을 거느렸던 다카마 교코는 기요세를 좋아했고, 그 사랑을 이루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쟁취해야 할 목표가 되었다. 그 목표는 또 어느 순간부터 원래의 좋아했던 마음을 먹어치워 결국엔 같은 반이자 친구였던 아이를 공격하는데 이른다.

그 후로 주변 인물들은 사라지고, 좋아했던 사람도 친구였던 이와 만나게 되며, 스스로도 그 교실에 남아있는 것이 괴로워지지만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혼자서 버티려한다. 그건 약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더욱, 다카마의 약함을 보여주었다.

스스로를 벌하듯 가둔 체육 창고의 문을 막은 건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악의를 품고 가둔 친구도 학교를 떠났지만, 정말로 부모님의 사정으로 떠난 거였다. 생각보다 큰 상처를 남기지 않아서 독자로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물론 그렇다고 다카마의 악의가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그때를 기억하는 스즈하라 교코도, 기요세도 이제 그 교실을 떠나 신경쓰지 않는다.
이야기는 다카마가 나아갈 길을 끝내 없애지 않았다.

태양 같은 존재가 된 배우 스즈하라 교코는 동창회로 부르려던 사람들을 만나거나 혹은 이야기를 나눈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옮긴이의 말에서 처럼, 다른 이들보다는 훨씬 ‘어른‘이었던 스즈하라 교코는 미숙한 이들을 알게 모르게 성장하게 한다.(434p)어떤 문으로도 가둘 수 없는 태양빛을 만난 이들은 자신 안에 있던 그림자를 본 것 같다. 더 나은 사람이고 싶고, 더 자랑할 만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비뚤어져 다른 사람들을 낮추고 소문거리로 삼고 싶어지는 그런 그림자를.

인물들의 그림자를 보여주고, 그들에게 스스로를 가둘 문은 사라졌다고 말해주는 이야기에서 나는 이번에도 다정함을 느꼈다. 내 안의 그림자를 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게 되어서, 다른 이들도 그럴 수 있다고 말해줘서라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긍정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한층 더 두꺼워졌다. 내 모습도 남의 모습도 그냥 그대로 괜찮다고 긍정할 수 있게 되길. 더 괜찮은 어른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길. 어디에서든 빛나는 태양을 잊지 않을 수 있길.

(여담/시마즈 겐타와 마사키 오사무는...음 잘 모르겠다. 다른 인물에 비해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시마즈가 치마를 훔친 사람이었다는 것도(어떤 이유를 붙여도 으으음 왜 남의 치마에 손을 대고 싶어지는지 잘 모르겠다.),돈을 뜯기면서(돈을 주고 산 것처럼 된 행위)유키의 뒷담화를 들었던 것도 그리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유키가 더 다정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은 합당한 생각이지만 그게 시마즈이지는 않을 것 같다. 이야기 상에서도 그렇게 되었고(유키는 다른 사람을 만난다), 유키에게 무섭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동창회 간사를 그만두었으니 그래도 성장의 여지가 보인다고 하고 싶다. 마사키도...말할 것도 없다.)

(여담2/쓰다보니 유키 이야기는 거의 못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열등감과 비뚤어진 욕망은 다른 인물을 통해 이미 이야기했으니 빼자면 유키 시점에서는 어린시절의 트라우마가 인상깊었다. 강해지고 싶었던 어린아이의 마음이 느껴진다. 아이를 함부로 대하지 말자...아이도 불합리한 일은 다 알고 기억한다ㅠㅠ)

(여담3/츠지무라 미즈키 작가의 작품은 여전히 더 읽어보고 싶다. 가장 읽고 싶은 건 <오더메이드 살인>, 그리고 <열쇠 없는 꿈을 꾸다>도 재밌을 것 같다. <아침이 온다>도 아직 안 읽었는데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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