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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 자본이 만든 메트로폴리스 1830-1871 현대의 고전 13
데이비드 하비 지음, 김병화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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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파리를 사랑하는 방법_모더니티의 수도, 파리_데이비드 하비



[모두가 사랑하는 낭만의 도시 , 파리의 시작점]​

근대성을 조명하는 일은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 누구나에게 흥미를 끄는 일이다. 우리가 운명적 사랑에 빠진 연인에 대한 그 모든 것을 궁금해 하듯이, 역사와 낭만, 모더니즘을 두루갖춘 파리라는 도시가 과연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걸까? 그리고 언제부터일까?라는 의문은 그곳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하다.

사실 근대와 그 이전을 구분짓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근대성을 정의하는 기준이나 시각은 사람 혹은 학문적 성격에 따라 달리할 것이다. 다만 현대 우리의 생활양식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경제적 토대인 자본주의는 어떤식으로든 영향력을 가질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예상에서 이 책을 읽어나갔다. 하지만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는 자본주의를 이야기하면서도 그렇지않은 것 같은 묘한 감상과 여운을 느끼게 한다. 그 이유는 아마 이 책이 파리라는 도시의 형성과 변화과정을 지리학자의 눈으로 관찰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리학자는 경제관계 이전에 공간관계에 먼저 관심을 두는데, 공간의 변화에 집중하는 것이 곧 도시의 변화를 따라가는 일이고 또 동시에 자본주의적 모순과 그것이 불러오는 총체적 변혁을 생생히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공간관계의 이러한 면모는 경제관계만을 분석하는 것보다 입체적이며 이중적인 감상을 느끼게 한다.

이런 측면에서 저자 데이비드 하비는 1840년대 전후의 파리의 공간을 발자크와 도미에의 작품세계를 통해 묘사하는 것으로부터 파리의 변화를 추적하고 있다.



[발자크 속 파리와 자본주의의 속살]​

사실주의 작가인 발자크의 작품세계에서 파리는 끝도 없이 변화하고 있고 절대로 멈추지 않는 듯하다. 특히 그 속의 인물들은 대개 시골 출신들이 파리 생활에 적응해가는 통과의례의 장면을 묘사하는데, 자본주의가 빚어내는 인간형과 그들을 지배하는 파리라는 도시의 변화상이 생생히 드러난다. 발자크 작품속 자본주의는 단순히 생활양식과 공간변화만 불러온 것이 아니라 인간심리와 관계의 변화도 관찰되는데, 예를들면 인간 고유의 특성인 친밀성이나 감정이 차가운 계산과 이기주의, 의제자본과 이윤추구로 환원되면서 위협받는 모습이 비춰진다. 발자크의 작품속 자본주의는 인간의 내면과 관계에까지 파고든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파리 근대성의 시작은 신화가 아니라 정치체에 대한 열망]​

저자는 발자크, 도미에 등의 작품을 통해 자본주의가 불러온 변화를 생생히 그리고 입체적으로 전하고자하였다. 그러한 이유중 하나는 파리의 근대성을 대표하는 즉, 창조적 파괴기라 일컬어지는 제2제정기의 오스만화가 이뤄낸 도시개조(근대성)가 신화가 아님을 드러내기 위함에도 있다. 발자크가 묘사한 1840년대 파리의 자본주의는 제2제정기 이전부터이미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있었으며, 프랑스에서 1830~40년대에 크게 유행했던 낭만주의와 유토피아적 사회주의, 공화정에 대한 열망은 자본주의가 그전부터 사회전반을 장악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그리고 1840년대의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여성운동가 개혁가는 도시를 미래의 좋은 사회가 되어야 할 어떤것의 기반이 되는 하나의 정치적 사회적 물질적 유기체형태(하나의 정치체)로 보고 관심을 가졌다. 하나의 정치체로서의 도시라는 이러한 발상은 모두가 동의한 근대성의 방향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신의 도시를 소유하고 개조하기 위한 열망이었다.



[오스만의 도시개조와 자본의 순환]​

1850년 이후의 파리는 제2제정기 오스만의 도시개조와 자본의 순환으로 대표될 수 있다. 저자의 시각인 역사지리적 관점은 오스만의 도시개조와 자본의 순환을 공간관계에 미친 물질성과 그 사회적 결과를 중점으로 살피고 있다.

오스만의 도시개조가 신화는 아닐지라도 업적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자본과 노동의 잉여를 광대한 공공사업계획으로 흡수하는 수단으로 무장했고 도로망뿐 아니라 하수도, 공원, 기념물, 학교등 모든 분야에 투자가 이뤄졌다. 모든 공간관계에서 창조적 혁신이 이뤄졌다.

또 새로운 공간관계는 국가와 금융자본, 토지 이권의 역할아래서 각각의 상호적응과정을 겨쳐 융합적으로 창출되었다.

오스만의 도시개조는 한편으로는 자본의 순환과정이었다. 제2제정의 제국이 살아남으려면 자본과 노동력의 과잉은 기필코 흡수되어야 했다. 파리의 내부공간을 그처럼 변형시킨 공공사업을 통해 그러한 과잉을 흡수하다보면 특별한 공간 구조의 구축을 통해 자본이 자유롭게 순환하게 되었다. 봉건적 족쇄에서 풀려난 자본은 파리의 내부 공간을 그 자신의 고유한 원칙에 따라 개조했다. 오스만은 프랑스에 걸맞는 근대적 수도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러나 결국 그가 기여하여 만들어낸 것은 자본의 순환이 진정한 제국주의적 권력이 되어버린 어떤 도시였다.

오스만과 제2제정의 황제는 자본주의를 제국주의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했지만 자본의 순환은 도시 공간의 변형을 낳고 변형은 산업구조 및 노동방식의 변화에 곧바로 영향을 주고 또 그것은 각 계급의 생활형태와 의식의 변화를 초래했다

거꾸로 말하자면 모든 가치가 상품 가치로 환원되는 자본주의 체제가 오스만의 도시 개조 과정를 기회로 삼아 자리 잡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제2제정기로부터 시작된 1950~70년대 파리의 공간관계로부터 시작하여 분배와 노동시장, 재생산을 거쳐 자연, 과학, 전통 등 살아 있는 도시가 어떤 모습을 통해 공간을 바꾸고 의식이 형성되는지 두루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지리학의 관점을 지녔지만 이 시기의 면면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분석을 통하고 있기에 이 시기 파리에 대한 종합을 전하려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진다.



[파리의 낭만 속에 숨겨진 피의 역사]​

파리를 공간관계 중심으로 보든, 자본주의를 앞에 놓고 보든 이 도시의 변화가 정치체의 모습을 드러내보인다는 사실은 꽤나 인상적이다. 1930~40년대에는 양육하는 국가로서의 정치체에 대한 열망이, 1950년대 제 2제정기의 역사는 자본의 축적이 가지는 힘에 맞서 황제 권력의 주위에서 정치체의 힘을 재구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19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후에는 파리코뮌이 그 자리에 있었다. 정치체의 열망엔 시•공간의 구분이 없기에 어느 곳이든 그 흔적이 서려있다. 어떤 공간에는 여러 정치체들이 뒤섞여있기도 하다.

사크레쾨르 바실리카가 그러하다. 몽마르뜨 언덕의 꼭대기에 위치한 사크레쾨르 대성당은 그 높이 만큼이나 낭만적인 파리의 전경을 마음껏 감상 할 수 있다.

과연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도시를 바라볼까?

낭만의 도시 파리인가? 1789년의 정신일까? 아니면 프랑스의 죄악이 묻혀 있음을 생각할까? 르콩트와 클레망 토마 같은 순교자의 피인가? 그것도 아니면 무자비하게 도살된 2만명 이상의 코뮌 가담자들의 피인가?

파리는 고요하다. 하지만 도시는 무덤 같은 침묵으로 그 역사를 숨기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를 사랑하는 방법은 이 숨겨진 역사를 아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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