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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태양이다 - 박미하일 장편소설
박미하일 지음, 전성희 옮김 / 상상 / 2019년 10월
평점 :
나는 한국어 강사로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친지 꽤 되었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그리고 끝에 -스탄이 붙은 나라에서 온 학생들을 꽤 많이 만났다. 그 중에 간혹 김 XXX, 고 XXX로 성이 한국식인 친구들이 있는데 혹시 고려인이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들을 만나면 참 반갑다. 그렇지만 막상 그들과 더 깊은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 한국어 수준이 아직 낮으면 언어에 제약이 있기도 하고 내가 바쁘다는 핑계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 고려인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무엇보다 저자의 이력이 눈에 들어왔다. 저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타지키스탄의 두샨베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이름이 ‘박미하일’로 바로 고려인이다. 고려인이 쓴 작품은 읽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되었다.
이 소설은 독특한 매력이 있다. 주인공은 국적이 카자흐스탄인 ‘비켄티 전’이라는 고려인이다. 그는 시인으로 작품의 영감을 얻기 위해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간다. 가는 도중 열차에서 ‘레라’라는 여성을 만나 좋은 감정을 느끼고 함께 모스크바에서 잠시 머물기도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서는 하숙집에서 두 달간 머물다 우연히 만난 ‘보리스’의 소개로 오래된 화물선에서 겨울을 지내기도 한다. ‘예르나’라는 창녀를 만나기도 하고 한국인 여행자인 ‘권은필’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특유의 정서가 있는데 문학을 하는 이들의 감수성이랄까?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부유하며 떠도는 듯한 인상을 준다. 고려인으로 뭔 이국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렇지 않을까? 저자는 러시아 국적을 가지고 있고 러시아어를 쓰지만 러시아에 진정으로 속해 있을까? 지금 러시아와 한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한다고 하는데 어디에서나 타자의 입장으로 있을 것 같다.
또 중간에 한 노인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거대했던 나라가 무너지고, 이제는 각자 자기 굴속에 틀어 박혀들 있어!”
노인은 자유를 부르짖었지만 오히려 자유를 잃었다고 이야기한다. 소련 때는 우크라이나와 여러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들이 하나였다. 그때는 어디든지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쪽으로 이동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고 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지난날로의 회귀를 꿈꾸는 자들에게는 다르게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결국 주인공을 구원하는 존재는 가장 무시당할 수 있는 신분의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주인공이 그 사람에게 정착하기를 바라지만 소설은 그 끝을 분명하게 나타내지 않고. 여전히 주인공이 떠날 것임을 암시한다. 고려인의 삶이 그런 것일까? 아니, 어쩌면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그럴지도 모른다. 이 땅은 나그네로 잠깐 왔다가 간다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참 재미있는 소설이다. 예전의 러시아의 대문호들이 쓴 듯한 특유의 정서도 있다. 이러한 보석 같은 소설이 숨겨져 있었다니 참 아쉽다.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하고 고려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면 한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