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명화 - 그림 속 은밀하게 감춰진 인간의 또 다른 본성을 읽다
나카노 교코 지음, 최지영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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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익숙한 예술 분야는 무엇일까?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음악이라고 답할 것이다.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귀에 꽂힌 이어폰 너머로 제각기의 취향에 맞게 들려오는 음악은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을 준다.

음악 다음가는 예술은 무엇일까. 최근의 음악들은 대개 가사말이 함께 한다.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지만 분명히 들리는 가사말 덕분에 해석의 폭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 경우는 잘 없다. 매일 듣는 음악으로부터 영감이 부족할 때 우리는 미술관을 찾는다. 화폭 안의 그림을 보며 누구든 자신만의 감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기에 미술은 음악과는 또 다른 특별한 감상을 준다. 미술만이 주는 영감의 주관성, 그것이 미술이 음악 다음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예술인 이유일 것이다.


<욕망의 명화>는 작가들이 담아내고픈 욕망을 잔뜩 머금은 그림을 이야기한다. 그림 한 점 한 점에서 느껴지는 인간 세계의 보편적인 진리를 함께 풀어낸다. 보는 이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의 감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미술이라 했다. 수 년의 시간이 걸려 완성된 작품의 뒷이야기를 통해 그 하늘과 땅의 간격을 더욱 넓히고 감상자에게 전에 없던 영감의 희열을 안겨주는 것이 <욕망의 명화>가 주는 기쁨이다.

중고등학교 때 미술 수행 평가에서 늘 반 꼴찌를 하던 나는 미술적 영감을 느껴본 적이 없지만 위대한 작품에는 모두 저마다의 모티프가 존재한다. <욕망의 명화>에서 다루는 작품들이 대부분 중세 유럽의 것이기에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기독교 사상과 성서, 유대인과 관련된 것들이 반영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해당 모티프에는 다시 인간의 본질적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사랑', '지식', '생존', '재물', '권력'이 바로 그것이다. 때문에 <욕망의 명화>는 다섯 가지 욕망을 기준으로 욕망이 투영된 작품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 모리스캉탱 드 라투르의 <퐁파두르 후작>

부르봉 왕가의 핏줄에는 우울증의 어둠이 스멀스멀 흐르고 있었다. 루이 15세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자신의 피에 흐르는 우울증은 앓지 않을 수 있었다. 다양한 이유들이 있었지만 그의 '총희' 퐁파두르 후작 부인이 있었던 까닭도 컸다.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왕의 '공식 총희'로서 해당 '지위'는 단 한 명에게 주어지는 것이었다. 단순히 왕의 정부로서 사랑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그녀는 무척이나 영리한 사람이었다. '지식의 욕망'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모리스캉탱 드 라투르의 <퐁파두르 후작>을 보면 그녀라는 사람을 알 수 있다. 책상을 가득 채운 책들, 장신구를 하나도 걸치지 않고 '공사'를 구분할 줄 아는 현명함, 멋진 드레스를 걸치고서 국가의 의복 산업을 주도했던 모습이 모두 투영되어 있다. 그녀는 실제로 루이 15세가 정치에 관심도 소질도 없는 것을 알게 되자 실질적인 국가의 재상이 되어 정책에 많은 관여를 했다. 기품 있어 보이는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뿐만 아니라 그녀의 지적 욕망과 강대한 야심이, 그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통해 그림 너머로 드러나는 것이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아마 이 유명한 작품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의 최후의 만찬을 그렸던 수많은 작품들과는 다르게 독특한 구도를 지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을까? 또한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그림 속에 숨겨진 예수와 12사도의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을까? <욕망의 명화>에는 기독교 사상과 관련된 작품이 많이 등장한다. 덕분에 인류의 절반을 이루는 서양, 서양의 근간이 되는 기독교 문화에 대해서도 폭넓고 깊은 교양을 쌓을 수 있다. 예수를 은화 서른 닢을 받고 팔아넘긴 유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사랑'에 대한 욕망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다. 자신이 사도 중에서 예수를 가장 사랑한다고 여겼던 유다는 예수 또한 자신을 가장 사랑해 주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자신의 충고를 무시하고, 점차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 되어 간다. 동경하는 인물을 향한 사랑은 변질되어 배신이라는 암울한 결과를 낳게 되었고 배신으로 인해 예수를 잃은 유다는 되려 더 이상 삶을 지속할 수 없었다. 이성 간의 에로스적인 사랑이 아니더라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인간의 가장 본연적인 감정이다. 다빈치의 그림 속에서 이 모든 모티프를 읽을 수도, 맥락을 파악할 수도 없다. 오히려 맥락을 파악한 후 그림을 보면 인류의 걸작이 다시금 새롭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그림의 본질과 내면을 공부하고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 일리야 레핀의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작은 울림을 주기를 원한다. 그 울림은 사랑의 위대함, 진실함의 소중함 등이 될 수도 있지만 이기적이고 잔혹한 인간성에 대한 고발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작품들이 사회 고발의 성격을 띤다.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뭉근하고 은은하게.

러시아의 화가 일리야 레핀 또한 볼가강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현장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네바 강을 천천히 거닐다 세련된 신사와 숙녀들 사이로 후줄근한 누더기 옷을 걸쳐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배를 '끌어당기는' 것을 목격했다. 빈부의 격차, 인간의 잔혹성을 고발하기 위해 이를 스케치해서 친구에게 보여준 레핀은 볼가강으로 가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볼가강에는 밧줄에 몸을 질끈 동여매고 거대한 범선을 뭍까지 끌어당기는 인부들이 가득했다. 이 얼마나 참혹한 광경인가.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에는 생명의 끈질김이 묻어 나오기도, 같은 생명에게 참담한 일을 부여하는 인간의 비인간성이 드러내기도 한다. 탈옥수, 탈영병, 불법 이민자들로 구성되어 한 마디 불만도 없이 주름살 가득 구겨진 얼굴로 배를 끄는 이들의 그림은 그렇게라도 견뎌야 했던 인간들과 그 옛날의 어두움이 공존한다.


교양이라곤 없게 생겼지만 전시회를 가는 것을 무척이나 즐긴다. 미묘한 구도로 아름답게 구성된 갤러리를 거닐다 보면 화폭에 담긴 그림들로부터 실제로 어떠한 영감을 받는 느낌이다. 키스 해링의 낙서로부터 자유분방한 미래를, 사진 그룹 '매그넘'의 사진전에서는 프랑스 파리의 혁명적 자유를 느낄 수도 있었다. 보는 방식도, 보는 이유도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손으로 그려낸 예술 작품은 영감의 향연이다. 그야말로 제멋대로 마음껏 상상해도 된다. 그 상상을 증폭시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그림의 근원을 탐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욕망의 명화>는 기독교 사상, 중세 유럽의 문화, 예술가의 배경 등 다양한 근원을 마구마구 쏟아내었다. 매우 정돈된 방식으로. 덕분에 그 유명한 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담지 않아도 나름의 멋진 영감들이 떠오른 느낌이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명화들이 전시된 해외의 유명 미술관은 물론 국내의 미술관도 방문이 힘든 요즘 책을 통해 미술이 주는 영감을 만끽해 보는 것은 어떨까. 친절한 설명 덕분에 직접 눈으로 담는 것보다도 강렬한 상상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속의 욕망을 통해 영감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욕망의 명화>였습니다.


* 본 리뷰는 북라이프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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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코어 히스토리 - 종말의 역사에서 생존의 답을 찾다
댄 칼린 지음, 김재경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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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민의 절반을 쓸어버린 치열한 전투 이후 살아남은 자들은 강해졌을까? 수 세기에 걸쳐 수 억 명이 흑사병으로 목숨을 잃었던 중세 유럽의 다크 에이지는 유럽을 더욱 강한 공동체로 만들었을까? 답은 '그렇다'가 될 수도 '아니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종의 기원>이나 <이기적 유전자>에 의하면 살아남은 자들의 유전자는 보다 강한 개체를 만든다. 어쩌면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하드코어'한 대 격투는 살아남은 자들을 강하게 만들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피바람도 우리를 강하게 할까?

<하드코어 히스토리>는 인류 역사상 수없이 되풀이되었던 종말의 현장에서 다가올 미래를 전망한다. 코로나19 이전의 대재앙이었던 페스트는 중세 유럽을 지도 상에만 존재하는 지역으로 만들 뻔했다. 청동기 시대가 저물었던 이유에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으리라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이었던 로마는 1000년에 달하는 찬란한 역사를 뒤로하고 어떻게 몰락하게 되었을까. 핵 전쟁은 인류가 미래에 '강인함'을 발휘할 여지조차 남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류가 겪었던 수많은 위기들을 가벼운 수준으로 나열했으리라 판단했지만 <하드코어 히스토리>는 보다 심오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로마 제국의 흥망사를,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망'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풀면서 우리가 같은 역사를 되풀이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고 역설한다. 냉전 시대를 기점으로 지구상에 3만 개가 넘는 핵무기가 만들어진 이유와 각 나라의 수많은 윤리적 결정들을 통해 거대한 힘을 쥔 이들의 비인간적인 태도를 보고 있으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기도 한다.

유럽 대륙은 피가 낭자하고 늘 살육이 벌어지던 곳이었다. 수많은 부족들이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정복 전쟁을 일삼았고 민간인들의 피해 또한 피할 수 없었다. 로마 제국은 절대적인 맹주가 없던 유럽을 삽시간에 정복한 강력한 제국이었다. 현대의 군사 전문가들이 여전히 주의 깊게 연구하는 존재인 로마군을 통해 로마는 1000년에 달하는 '영원한 제국'을 만들 수 있었다. 여러 국가에서 파견된 용병들을 하나로 결속하여 통솔하는 장군들의 리더십은 빛났고 그렇게 정복한 땅에 관개 시설과 사회 간접 기반을 설치하여 제국 자체를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로마 시대는 여전히 야만의 시대였다. 가끔씩 '훈족', '게르만족'과 같은 현세의 사람들도 역사 책에서 흔히 본 부족들이 영토를 침범했고 로마는 점점 쇠락했다. 막강하던 군대가 야만인화 되기 시작하면서 쇠락의 속도는 점차 빨라졌다. 중국이 주변의 모든 국가를 오랑캐라 칭했듯 로마의 입장에서도 주변의 거칠고 난폭한(또한 강력한) 부족들은 모두 야만족이었다. 수많은 야만인 중 게르만족은 로마의 군대로 빠르게 편입되었다. 이는 로마군에게 결코 좋은 일은 아니었고 로마군의 규율과 체계는 당나라 군대가 되어버렸다. 여기에 훈족이라는 또 다른 강력한 야만인이 등장하면서 결국 로마는 찬란한 역사를 뒤로 한 채 책 페이지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미국이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중심으로 자유세계의 뛰어난 과학자들을 모아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원자의 힘을 만들어 냈을 때 과학자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자신들의 성과에 미소를 띠거나 눈물을 짓거나. 눈물을 지었던 사람들은 원자폭탄이 생각보다 더욱 막강한 힘을 지닐 수 있겠다는 공포감에 떨고 있는 것이었다. 2차 대전의 말미 일본에 당시 과학의 정수가 투하되었고 세계는 종전과 함께 충격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념으로 대립된 두 세계가 원자폭탄을 중심으로 대규모의 군비 경쟁을 시작한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핵무기와 같은 강력한 살상 무기는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다고.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다는 명목으로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이 될까? 이와 같은 명제는 윤리적으로 엄청난 공분을 불러왔다. 3차 대전이라는 사건이 만약에 발생하게 된다면,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들은 최후의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는 어느 한 진영의 승리가 아니라 '핵'의 승리를 불러올 것이다. 인류의 종말과 함께 말이다.

이처럼 거대한 힘을 미국 대통령이라는 하나의 개인에게 쥐여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각국 정상들은 핵 전쟁의 상황이 발발했을 때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까. 2차 세계 대전의 시기까지는 인류가 선택한 결정들을 되돌리는 것이 가능했다고 할지언정 핵 전쟁은 그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여태 수없이 반복했던 것처럼 역사는 핵전쟁 이후에도 반복될 수 있을까? <하드코어 히스토리>는 이와 같이 무거운 이야기에 대한 의문을 품고 이야기를 끝낸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가 인간적인, 윤리적인 차원에서 많은 생각을 했던 책이었다. 지금의 이라크에 자리했던 고대의 제국 아시리아와 페르시아의 전쟁,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 인류에게 종말을 선사할 핵 전쟁, 그리고 이에 비하면 아주 작은 이슈처럼 보이는 코로나19와 페스트까지 인류의 곁에는 수많은 위기가 함께 했었다.

고등한 종족이라 스스로를 생각하는 인간이지만 수많은 위기 뒤에도 또 다른 위기는 다가오고 만다. 학습 능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강력한 위협이 존재함도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위기들을 모두 견디고 인류 전체의 측면에서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인류의 욕심으로 인해 만들어진 코로나19, 핵 전쟁과 같은 이슈는 자연스러운 수준의 위협이 아니다. 더 강력한 바이러스가 만들어지고 핵 전쟁이 발발하면 인류는 미래를 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종말의 역사 속에서 미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라 하지만 인간의 오만함은 역사 속에서 우리를 지워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종말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오만함을 경계하다, <하드코어 히스토리>였습니다.


* 본 리뷰는 북라이프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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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래보고서 2021 (포스트 코로나 특별판) - 세계적인 미래연구기구 ‘밀레니엄 프로젝트’가 예측한 코로나가 만든 세계!
박영숙.제롬 글렌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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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전에도 비대면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음식 배달 앱은 전 국민의 필수 어플이 되었고 이용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택배기사님들은 원래도 하루에 300~500건가량의 물량을 처리해야 했다.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해결하려는 변화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코로나는 원래도 급변하고 있던 현대 사회를 더욱 빠르게 바꾸어 버렸다. 1000km로 순항 중이던 비행기에 로켓 엔진을 달아 우주로 날아가게끔 만든 격이다. 세상은 매분, 아니 매초 변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흐름을 쉽게 따라가지 못한다. 코로나 이전의 세계는 따라잡지 못하면 뒤처지는 대로 살아가면 되었다. 돈을 벌 기회를 조금 놓치면 되었고 높은 자리로 올라갈 기회를 잠시 미루면 되었다. 이제는 아니다. 2020년에 들이닥친 파도는 뒤떨어진 자들을 모두 휩쓸어 갈 것이다. '기본소득 시대', '재택근무', 'S.A.F.E.T.Y 여행산업' 등 개인이든 기업이든 모두에게 공평한 이 파도는 기존의 '물결'과 같은 단어와는 차원이 다르다.


<세계미래보고서 2021>은 코로나 이후에 빠르게 적응해야 하는 지구상의 모든 존재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와 같다. 교육, 산업, 비즈니스, 정치, 거버넌스, 인류에 이르기까지 주요 분야에 대해 폭넓고 깊은 통찰력을 제시한다. 트렌드나 미래학 관련 책을 선호하는 편이 아닌데 코로나19로 인해 급변한 미래상을 너무나 세세하게 그려내 그 미래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책이었다. 논리를 하나하나 따져보아도 부족함이 없는 구성 덕분에 미래를 단단히 준비할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생길 정도이다.


책의 서론은 미래를 뒤흔들 9가지 기술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안에는 이세돌을 압도한 알파고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발전된 인공지능, 초현실적 섹스 로봇, 인체에 들어가 다양한 질병을 고칠 수 있는 나노로봇인 나나이트, 커스터마이징 인간 '디자이너 베이비' 등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가슴 설레는 기술들이 가득하다. 저자는 이들 기술이 미래 사회를 빛낼 이유뿐만 아니라 동반되는 다양한 위험성을 함께 이야기하며 기술 발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세계미래보고서 2021>은 '부', '교육', '지속 가능한 인류', '시민', '국가와 정치', '복지', 비즈니스와 일자리', '기술 문명'의 8가지 주제에 대한 미래상을 제시한다.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고 하여 결코 세부적인 내용이 수박 겉핥기 식으로 얕은 것이 아니다. 4500명에 달하는 기업인, 학자, 전문가가 긴급 진단했다는 문구에 맞게 각 주제별로 깊이 있는 내용에 각 장을 유심히 넘기게 된다.

■ 부의 미래

기존의 화폐 경제와 부동산 중심의 성장은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이미 스칸디나비아의 몇 나라를 비롯하여 많은 나라들이 '캐시 프리'를 실현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경제가 개편됨에 따라 음성적인 시장을 방지하고 실물 화폐 발행에 따른 비용 등을 줄이기 위해 전자 화폐는 보다 빠르게 현실에 등장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 법정은 최초로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 화폐를 실질 화폐로 인정했다. 기존의 화폐 시스템에 대격변이 들이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택근무와 원격 근무는 결론적으로 기존의 부동산 시장에 큰 변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미국의 경우 많은 IT 기업들이 재택근무의 실효성을 인정하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은 2021년 상반기까지 집에서 일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어떤 변화가 생긴다는 것일까? 샌프란시스코 팔로 알토 등에 멋들어지게 지어 놓은 사옥들이 쓸모 없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남의 테헤란로 사옥들의 공실률이 20% 이상으로 급증하고 있다. 건물의 소유주는 임대 수익 등에 큰 타격을 입게 되고 건물값 또한 내려가게 될 것이다. 문제는 IT 기반으로 산업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는 상태에서 원격 근무는 충분히 수용 가능한 변화라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잠잠해져도 부동산 시장에 들이닥친 변화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 교육의 미래

대한민국의 대학교 수는 400개가 넘는다. 미국은 2000개가 넘는다. 향후 5년 안에 50%가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며 정부의 지원금만을 바라고 학생들에게 허울뿐인 졸업장만을 주는 부실한 교육 기관을 설 곳이 없다는 것이다.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등은 학위가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학위가 있어도 자신들이 진행하는 소정의 교육 과정을 이수한 후 해당 증명서를 제출하지 못하면 지원서를 쓸 수 없다고 말한다. 명목 상의 학위보다 '기술 역량'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실리콘밸리의 IT 공룡들이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MOOC를 기반으로 한 전 세계적인 무료 온라인 교육 시스템이 더욱 탄탄해지고 있다. MOOC의 선두주자인 코세라는 현재 2500만 명 이상의 수강생을 보유하고 있다. 150개가 넘는 대학교와 협력하여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스탠퍼드 등의 세계적인 대학교 또한 포함되어 있고 심지어는 최고 경영자 과정(MBA) 또한 제공한다. 실속 없는 교육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대학교 타이틀에 목매는 대한민국의 교육은 변하지 않을 것인가. 대치동의 학원가가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보는 것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 지속 가능한 인류

우주여행은 더 이상 상상 속의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는 화성에 식민지를 만든다는 전 인류적인 비전을 지니고 테라포밍을 진행하고 있다. 다른 행성의 환경을 지구와 비슷하게 만드는 테라포밍은 타 행성 '식민지' 계획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또한 스페이스 X는 톰 크루즈와 우주에서의 촬영 건을 계약했다. 모든 액션 연기를 스턴트 대역 없이 직접 하기로 유명한 톰 형은 이제 인류 최초로 우주에서 영화를 촬영한 위대한 배우로 발 돋움 하려 하고 있다. 우주 산업을 필두로 한 인공지능과 냉동 인간 기술 등 또한 활발히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제 상상했던 모든 것은 실행되기 직전에 다다른 상태이다.

■ 일자리와 비즈니스의 미래

여행, 숙박, 공유 경제 등의 비즈니스는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산업군 중 하나이다. 특히나 여행의 경우 2025년은 되어야 예년과 같은 수준을 되찾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산업들은 뼛속 깊이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도태되는 수준이 아니라 사양산업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여행 산업은 당분간 규모가 축소되고, 비즈니스 위주로 진행될 것이다. 부득이하게 관광 여행을 떠나고 싶은 이들은 보증금을 내고 14일간 격리되어야 한다. 일행 중 한 명이라도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온다면 냈던 보증금은 그들을 위한 치료비와 격리 비용으로 쓰이게 된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여행을 떠나고 싶을까. 재택근무와 원격 근무는 비즈니스 업계가 심각히 고려해야 하는 변화 중 하나이다. 불필요한 건물 임대비와 운영 비용 등을 줄이고 인건비의 효과적인 활용을 하는 기업만이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이와 같은 대격변을 가져온 이슈가 있었을까 싶다. 심지어는 2008년의 금융 위기도 이처럼 모든 산업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진 않았다. 정말 이번 파도는 '헤쳐나가는' 대신 파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후에 다시 일어서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코로나19가 일으킨 사회적 변화는 규모가 거대하다. 이는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비즈니스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이 움직이고 있다.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우리 개인 또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여태 마주했던 수많은 파도를 그저 조용히 받아들였다면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번 파도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이니 말이다.

코로나19 시대를 이겨내는 이 시대의 필독서, <세계미래보고서 2021>였습니다.


* 본 리뷰는 비즈니스북스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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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협상하기 - 골드만 삭스 CEO, 나는 어떻게 중국을 움직였는가
헨리 M. 폴슨 주니어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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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세 속에서 무자비한 행보를 보이면서도 강대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과 중국을 상대하는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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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10주년 개정증보판)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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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SNS로 집중력과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울리는 경고가 될 것 같습니다. 처음 출간 이후 더욱 심화된 인터넷뇌를 지니게 된 현대인의 필독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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