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의 만남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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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고록은 1940년대, 열두 살 소녀가 해방과 월남, 전쟁을 거쳐 서울에 뿌리내리기까지의 삶을 담고 있다. 기차 지붕 위에 몸을 싣고, 38선을 기어 건너며, 적산가옥에서 혹독한 겨울을 견뎌 내는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역사 속 한 장면처럼 낯설다. 하지만 그 고단한 역사 속에서도 열두 살 소녀의 문학을 향한 열정과 서울에 뿌리내려 가는 분투는 깊고 섬세한 감정과 함께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없던 시절이었기에 모든 것은 어려웠다. 전차를 타고 어렵사리 등교하던 일, 처음 돈을 주고 물건을 사던 일, 친구와 극장에 가던 일, 읽고 싶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던 시간들. 지금이라면 너무나 평범해서 기억조차 나지 않을 순간들이 저자에게는 평생 간직할 특별한 사건이 되었다.

나에게도 분명 처음 극장에 가던 날이 있었고, 처음 돈을 주고 무언가를 샀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을까. 아마도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부모님 세대가 만들어 준 안정 속에서 부족함보다 선택의 고민을 배우며 자랐다. 평범한 일들이 특별한 사건이 될 이유가 없었다. 풍요는 분명 감사한 일이지만, 동시에 일상의 놀라움을 조금은 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지금 우리 세대는 평범한 일상이 가능해진 그 안정 자체가 특별한 행운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돌아가신 할머니가 많이 떠올랐다. 북에 고향을 두고 언제나 온화한 얼굴로 가족을 품어 주던 할머니. 많은 것을 겪었기에 더 많이 참고, 더 많이 이해하며 살아가셨던 분. 얼굴에 새겨진 주름마다 말로는 다 하지 못할 이야기들이 있었을 것이다. 저자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 지난 세기를 통과해 온 할머니의 시간 역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분들이 견뎌 낸 시간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의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도 새삼 깊이 다가왔다.

저자의 독서에 대한 열정이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전쟁과 피란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던 소녀. 모르는 단어가 가득한 일본어 번역본이라도 끝까지 읽어 내려가던 마음. 삶이 아무리 어려워도 배움을 향한 순수한 열망만큼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 책을 읽으며 어머니와 오래전 서울의 풍경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도 내게는 큰 선물이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이야기, 부모님 세대의 기억,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시대가 대화 속에서 되살아났다. 책에 등장하는 1940년대 서울의 모습을 실제 사진으로 찾아보며 활자 속 풍경이 더욱 생생하게 살아나는 경험도 의미 있었다.

좋은 회고록은 과거를 기록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을 다시 꺼내 보게 만든다. 『서울과의 만남』은 한 소녀가 서울을 만난 이야기를 넘어,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꿈과 삶을 고스란히 전하며 지금의 우리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물려받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풍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그러나 특별함은 때로 부족함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기도 한다. 오늘 내가 쉽게 지나치는 평범한 하루 역시 언젠가는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삶의 한 장면이 될 수 있다. 나 역시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는 지금의 하루와 어린 시절의 풍경을 더 특별하고 소중하게 회고하게 되지 않을까. 추억은 시간을 견디며 깊게 여물고, 마침내 우리 삶을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한 사람의 기억은 결국 한 시대의 역사가 된다. 『서울과의 만남』은 그 귀한 기억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건네는, 오래도록 읽혀야 할 소중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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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증정 @yolimwon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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