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
한지수 지음 / &(앤드)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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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설렘이나 아름다운 이국의 풍광을 기대했다면, 이 소설집에서는 조금 다른 풍경을 만나게 된다. 『캐리어』에 실린 일곱 편의 이야기는 설렘과 기대로 점철된 여행에서 벗어나 회고와 성찰의 시간을 그려 낸다. 어쩌면 그렇기에 독자는 오히려 예기치 못한 여행을 경험하게 된다.

새로운 장소로 떠나고 싶은 욕망은 결국 떠날 곳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비슷한 동기를 가진다.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시작이 필요할 때 우리는 여행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 소설집 속 인물들의 여행은 오히려 과거를 불러온다. 일상을 벗어난 순간, 오래 덮어 두었던 기억과 감정은 더욱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낯선 거리에서 익숙한 얼굴을 떠올리고, 새로운 풍경 앞에서 가장 오래된 상처와 마주한다.

읽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공간과 감정이 만들어 내는 미묘한 어긋남이었다. 적막한데 소란스럽고, 뜨거운데 서늘하며, 시원한데 허전하다는 문장들은 상반된 감각을 통해 인물들의 내면과 상황을 대변한다. 낯선 여행지와 과거의 기억, 도피와 성찰, 이별과 위로가 서로 모순되면서도 하나의 감정으로 이어지는 힘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한다.

표지에 대한 이야기도 꼭 하고 싶다. 책을 덮은 뒤 다시 바라본 표지는 읽기 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문턱에 걸터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인물은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처럼도, 이미 긴 여행을 끝낸 사람처럼도 보인다. 볕은 따뜻하지만 공기는 쓸쓸하고, 눈앞에는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지만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자세는 묘한 여운을 남긴다. 처음에는 단지 아름다운 이미지라고 생각했던 그림이, 일곱 편의 이야기를 모두 읽고 나니 하나의 의미 깊은 장면처럼 읽혔다. 표지는 가장 먼저 만나는 소설이면서, 마지막에야 비로소 이해되는 또 하나의 문장임을 실감했다.

개인적으로는 여행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진 지금의 나를 떠올렸다. 한때는 매년 어디론가 떠나야만 삶이 환기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로는 더 이상 여행을 갈망하지 않게 되었다. 한곳에 오래 머물며 내 안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큰 의미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어쩌면 그들에게는 떠날 곳보다 온전히 머무를 곳이 더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낯선 여행지가 필요할 만큼, 지금의 삶이 이미 더 낯선 무대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방법이 반드시 여행만은 아닐 것이다. 한 권의 책을 통해서도 지금 서 있는 자리를 잠시 떠날 수 있다. 『캐리어』는 사람의 마음을 여행하게 만드는 소설집이다. 오래 묻어 두었던 기억과 감정을 마주하게 하고, 잊고 있던 마음에 다시 말을 건네는 여행. 그 단순하지 않은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각자의 회고를 통해 지금 서 있는 자리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회고는 앞으로의 삶을 버텨낼 한 겹의 단단한 마음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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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증정 @nexusbooks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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