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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롱도 - 초간단무효시와 으깨진 눈사람
김태용.멜롱도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6월
평점 :
불과 몇 년 전이었다면 이 책은 훨씬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시인이 AI와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언어를 주고받으며 작품을 만들어 간다는 설정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미 AI와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생각을 확장하며, 창작의 동반자로 협업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지금, 이 과정은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AI 시대의 문학은 완성된 작품만이 아니라,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오가는 사유 자체를 하나의 텍스트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멜롱도』는 뛰어난 시집이라기보다, 그 가능성을 보여준 흥미로운 기록이다.
이 책에서 내가 발견한 의미는 시인과 AI의 대화를 통해 인간의 언어가 무엇인지 다시 확인하게 된 데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시와 AI의 거리다. 멜롱도는 시인의 시를 읽고 수정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버전을 제안하지만, 그 과정에서 종종 시를 더 설명적으로 풀어낸다. 압축된 이미지와 여백, 리듬으로 의미를 남겨야 하는 시를 산문처럼 해설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기존의 시를 변형하는 능력은 보여주었지만, 그 자체로 새로운 시적 감각을 창조한다는 인상은 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정된 시보다 그 사이에 오간 대화가 훨씬 흥미롭다. 시인이 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설명하고, 멜롱도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다시 방향을 찾는 과정 속에서 시인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힌트를 얻는 듯 보였다. AI는 시를 대신 쓰기보다, 창작자가 자신의 언어를 다시 바라보도록 만드는 질문과 거울처럼 작용한다.
이 책에서 내가 발견한 첫 번째 가능성은, 아직 시처럼 함축과 맥락, 리듬과 여백이 중요한 장르에서는 인간의 감각이 여전히 훨씬 깊고 정교하다는 사실이다. AI는 언어를 다룰 수 있지만, 시인의 고유성이나 언어가 끝난 자리에서 시작되는 침묵까지 완전히 다루지는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두 번째 가능성은 이 책이 보여준 창작 방법에 있다. 이 책은 완성된 문학 작품이라기보다 AI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지,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다시 바라볼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아직 AI와의 협업이 낯선 사람이라면 이 대화 자체가 하나의 실용적인 사례가 될 수도 있겠다.
AI가 빠르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기에 언젠가는 예술적·문학적 창작 영역에서 인간보다 더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낼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창작의 중심이 여전히 인간에게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AI는 그 주변을 맴돌며 새로운 관점을 비추는 존재일 수 있다. 인간의 고유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그 고유성을 더 깊이 탐색하도록 돕는 동반자. 이 책은 바로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법론이자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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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증정 @happybooks2u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