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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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순간들을 지나온 뒤에야 비로소 그 장면을 이해하게 된다. 그때는 이미 지나버린 뒤이고,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까지 함께 따라온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그렇다. 그들은 선택하는 동안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설령 알고 있었다고 해도 그것을 끝까지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삶은 언제나 그보다 빠르게 흘러가고, 판단은 느리게 도착하기 때문이다.

나쁜 의도는 없었다는 말은, 그것이 사과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그 말은 어떤 책임을 지기 위해 꺼내지는 것이기보다, 이미 벌어진 일을 감당하기 위해 쓰인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그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다만 그때의 선택이 불가피했다고 자신을 정당화하면서.

이 책 속 인물들은 어떤 면에서는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충분히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공감을 불러낸다. 더 나은 쪽을 향해, 덜 불안한 방향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가능한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불쑥불쑥 요동치는 씁쓸함 속에서도 익숙한 감정들이 그 사이에 끼어들고, 한 번쯤은 비슷한 방식으로 지나온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자리에 놓였을 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삶은 혼자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우리는 수많은 인간사의 얽힘 속에서 살아가고, 나의 선택과 누군가의 선택이 겹쳐지는 순간, 다른 한쪽은 밀려나기도 한다. 그 밀려남의 대상은 내가 될 수도, 내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시리게 다가오는 것은, 이 사회 안에서 누군가가 이토록 자연스럽게 배제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열편의 단편 속 타인들은 익숙한 자신이기도 혹은 가까운 누군가이기도 하다. 나쁜 의도는 없었다는 말은 타인을 향한 해명이지만 자신을 향한 설득이기도 하다. 이미 지나간 선택들을 조금 덜 무겁게 받아들이기 위해, 혹은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지 않기 위해 반복되는 외침.

그렇게 말하는 것이 우리를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삶의 장면 앞에서 정확한 답을 내리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고, 우리에게는 서둘러 넘어가야 할 다음 장면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설명되지 않은 것들을 그대로 둔 채, 우리는 또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반복 자체가, 어쩌면 삶의 형태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해는 언제나 지금이 아니라, 다음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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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증정 @changbi_insta (가제본)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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