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동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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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누군가 최초로 생각해낸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롭다. 나아가 그것이 지금 우리의 삶을 이루는 지식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최초의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그 자체로 가치 있다.

실제를 안다는 것은 왜 중요할까. 실제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신들의 세계로 지구와 인간, 그리고 수많은 자연현상을 설명하려 들면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물론 상상력은 사실과 무관하기에 자유로울 수 있지만, 과학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은 우리의 삶과 생활을 실제로 변화시킨다. 자연을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며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데 있어 과학은 분명 더 유용하고 생산적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자연현상은 대부분 신의 의지로 설명되었다. 번개는 제우스의 분노였고, 비는 신들의 세계에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이런 세계관이 지배적이던 시대에 아낙시만드로스는 자연을 신이 아닌 자연 그 자체로 설명하려 했다. 그는 자연현상을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원리 자체로 이해하려 했으며,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까지 상상하며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세계는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를 수 있으며, 우리가 경험하는 좁은 범위가 곧 세계 전체는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가 제시한 ‘아페이론’이라는 개념은 매우 인상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직접 인식할 수도 없지만,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존재를 가정한 근원적 실체다. 오늘날 과학이 원자, 전자, 중력장, 암흑물질 같은 보이지 않는 개념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을 떠올려 보면, 그의 사고가 얼마나 선구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그것으로 세계를 설명하려는 태도는 이후 과학의 발전을 가능하게 만든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이 책에서 카를로 로벨리는 과학의 핵심이 ‘확실성’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과학을 신뢰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기 때문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축적된 지식 속에서 그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지식은 언제든 수정될 수 있고, 새로운 관찰과 논의 속에서 더 나은 이론으로 발전한다. 과학은 끊임없이 세계를 다시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진화한다.

이러한 과학적 태도는 민주적 사고와도 닮아 있다. 고대 그리스 도시들이 왕을 추방하고 토론과 논의를 통해 사회를 운영하려 했던 것처럼, 과학 역시 권위가 아니라 비판과 토론 속에서 발전한다. 하나의 절대적인 권위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과 비판적 사고 속에서 더 나은 이론이 선택된다. 과학은 단지 자연을 연구하는 방법이 아니라, 세계를 생각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결국 과학적 사고의 핵심은 확신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에 있다. 우리가 가장 잘 안다고 믿는 것조차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그리고 새로운 관찰과 논의를 통해 세계를 다시 이해하려는 태도다. 아낙시만드로스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바로 이러한 정신일 것이다. 신화와 권위의 세계를 벗어나 자연을 스스로 이해하려는 시도, 그리고 기존의 세계관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수정하려는 용기.

카를로 로벨리는 이를 두고 과학을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험”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작은 정원 같은 세계관을 벗어나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게 만드는 모험. 아낙시만드로스가 시작한 이 모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더 넓은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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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증정 @samnparkers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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