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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오션 브엉 지음, 김목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2월
평점 :
어째서 이 소설에 ‘아름답다’는 수식어가 붙는지 알겠다.
그리고 너무도 아름다운 것 앞에서는 왜 우리가 쉽게 말을 잃게 되는지도.
전쟁과 가난, 가정 폭력, 퀴어이면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삶. 이 어둡고 비참한 서사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이 가득하여 눈부시다.
이 작품은 영어를 읽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여 있다. 더불어 이미 생을 마감한 연인에 대한 애도의 글도 함께 전한다. 애초에 도달할 수 없는 수신자를 향해 쓰인 말들. 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어지는 문장들이다. 말로 건네지 못했던 기억과 감정들을 붙잡기 위해 쓰인 글은 전달의 불가능함 속에서 진실을 껴안고 그로 인해 완전해진다.
베트남 전쟁을 통과해 온 할머니와 가난한 이민 노동자로 살아온 어머니, 그리고 미국 사회 속에서 자라난 아들 리틀독이 있다. 전쟁은 총성이 멎은 뒤에도 사람들의 몸과 언어 속에 오래 남아 있고, 가난과 폭력은 일상처럼 반복된다. 그 상처를 섬세하게 바라보는 소년 리틀독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깊이 있게 이해하며 성장해 간다.
이 소설의 여러 장면은 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전쟁과 도피, 가난의 이야기는 가족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나의 역사가 된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트라우마를 안은 가족의 삶은 어린 시절 내내 리틀독에게 폭력과 가난으로 대물림된다. 그들의 삶과 기억은 더 이상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현재의 경험이 되어 화자의 고통과 상실, 결핍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이것이 역사가 전해지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신이 겪지 않은 시간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소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은 그런 기억들이 자신의 이해와 만나 색을 입는 순간이다. 상처로만 남을 수도 있던 이야기들이 이해와 연민을 통과하면서 새로운 감정을 만들고, 기억들은 오롯이 자신만의 삶이 되어 글로 쓰인다. 전쟁과 폭력, 차별과 억압의 삶은 잔인하다. 그러나 과거가 트라우마가 되고 슬픔으로 남더라도 그는 외면하지 않는다. 이해하려는 시도 속에서 가족과 연인에 대한 깊은 사랑이 싹트고, 그 숭고함이 몹시도 아름다워 문장마다 우리를 멈춰 세운다.
이 작품 앞에서는 무엇을 공감했고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는 일조차 망설여진다. 내 삶의 어떤 고통도 그들의 삶에 비견될 수 없을 때, 단 한 번뿐인 삶이 얼마나 다르게 주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빛으로 가득 찬 시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둠으로 채워진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삶을 완전히 비추어 볼 수 없기에 무엇이 전부인지 끝내 알지 못한다. 그 빛과 어둠이 각자의 세계 안에서 얼마나 밝고 얼마나 어두운지 또한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 해석은 각자의 몫으로 남아 생으로 이어진다.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삶은 덧없고 빛으로 기억되는 순간들은 찰나로 머물지만,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 삶이 글로 닿는 순간 매혹은 어쩌면 영원하다. 오랜 시간 뒤에도 내내 매혹적일, 더없이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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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구매한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