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모호함에 관하여 - 정답을 내리기 어려운 삶의 문제들을 대하는 심리학
네시베 카흐라만 지음, 배명자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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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제들 앞에서 결국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질문은 하나로 수렴한다. ‘인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환경 위기, AI 기술과 생명 윤리, 부와 분배, 정치적 대립, 가정 불화와 폭력, 범죄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사회적 문제들은 제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인간의 대립성과 모순이 놓여 있다. 비교적 선택이 분명해 보이는 사안도 있지만, 어떤 문제들은 고려해야 할 변수와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해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삶은 이처럼 0과 1로 환원되지 않는 회색 지대로 가득하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단순한 결론이 아니라, 모호함을 수용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5·18의 참혹한 현장을 바라보며 한 가지 질문을 품었다고 한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안에서 누군가는 총을 쏘고, 누군가는 그 총에 맞아 쓰러지며, 또 다른 누군가는 피 흘리는 이를 위해 헌혈 줄에 선다. 폭력은 인간 존재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존엄과 연대 역시 인간의 일부라면, 이 상반된 얼굴은 어떻게 한 존재 안에서 공존하는가. “어떻게 인간은 같은 상황에서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문학적 사유를 넘어 인간 이해의 근본을 겨눈다.

네시베 카흐라만은 『인생의 모호함에 관하여』에서 이 모순을 심리학적 관점으로 풀어낸다. 심리치료사인 저자는 내담 사례와 사회적 논쟁, 정치적 갈등, 친밀한 관계의 균열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쉽게 세계를 ‘옳은 우리’와 ‘그른 그들’로 나누는지 보여준다. 이분법적 사고는 혼란을 정리하고 감정을 통제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현실을 과도하게 단순화하는 방어 기제이기도 하다. 흑백 논리는 안정감을 주지만, 그 안정감은 대개 환상에 가깝고 문제는 오히려 심화된다.

저자는 모호함을 수용하며 ‘중간 지대’에 머무르는 태도를 제안한다. 모순되는 두 입장을 동시에 바라보는 상태, 즉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 태도를 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폭력과 사랑, 현실과 이상, 거짓과 진실처럼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상황들은 내담자의 사례와 저자의 통찰을 통해 구체적인 감정과 태도로 드러난다. 우리가 왜 성급히 한쪽을 선택하려 하는지와 그 충동을 잠시 멈추는 법을 함께 조명하며,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어떤 한편을 완전히 악으로 규정하는 대신, 다른 면을 인식할 때 생기는 불편함을 견디는 것. 사랑과 두려움이 한 관계 안에서 함께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정치적·도덕적 딜레마 앞에서 느낌표 대신 물음표를 선택하는 것. 이러한 태도는 판단을 유예하는 나약함이 아니라 복잡성을 감당하는 성숙함에 가깝다.

이 책은 추상적인 논의를 넘어, 모호한 문제와 갈등 앞에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내적 태도와 방향을 제시한다. 판단을 보류하고, 불편한 감정을 밀어내지 않은 채 머물러 보며, 상대를 단정하기 전에 자신의 불안을 돌아보는 일. 모호함을 수용하는 능력이 타고나는 성향이 아니라 훈련 가능한 태도임을 드러낸다. 이러한 내적 기술은 불확실성과 극단적 대립이 일상화된 오늘의 사회에서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 정의와 불의의 구도 속에서는 언제나 설명되지 않는 잔여가 남는다. 그 잔여를 지워버리려는 충동 대신, 그대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모호한 세계를 사는 인간에게 필요한 용기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확신 대신 조금 더 많은 물음표를 얻게 되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복잡한 시대를 통과하는 가장 이로운 태도일 것이다.

칼 융은 말했다.
“빛과 그림자를 모두 인정할 때 인간은 온전해진다.”

빛만으로는 형체가 드러나지 않고, 그림자만으로는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삶은 언제나 상반된 것들의 긴장 속에서 유지된다. 인간 또한 선이나 악으로 고정될 수 없는 존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느 한쪽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긴장을 자각하며 균형을 모색하는 일이다. 모호함을 지우지 않고 끌어안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불확실한 시대를 건너는 가장 단단한 방식일 것이다. 흑백의 세계를 벗어날 때 비로소 우리는 조금 더 넓은 인간성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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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증정 @chungrim.official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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