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더링 하이츠 을유세계문학전집 38
에밀리 브론테 지음, 유명숙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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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더링 하이츠(이하 『폭풍의 언덕』)은 흔히 격정적인 사랑 이야기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짜 힘은 사랑 그 자체보다,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들을 한 세계 안에 공존시키는 데 있다. 사랑과 파괴, 낭만과 현실, 계급 질서와 원초적 충동, 시대적 도덕과 개인의 욕망. 이 상반된 힘들에서 오는 긴장은 소설 전체를 떠받치는 거대한 정서로 응축된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은 숭고하면서도 잔혹하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기 자신을 향해 있다. 상대를 사랑한다기보다 상대 안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는 집착에 가깝다. 그래서 그 감정은 소유와 복수로 변질된다. 이상을 꿈꾸는 낭만은 곧바로 냉혹한 현실로 추락한다. 이 작품이 어떤 로맨스보다도 낭만적이면서 동시에 어떤 사실주의 소설보다도 잔인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랑은 구원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인물들을 더 깊은 파멸로 밀어 넣는다.

이 불편함은 읽는 내내 지속된다. 비극으로 시작해 비극으로 끝날 것을 예감하면서도, 우리는 어째서인지 전혀 없을 것 같은 희망을 완전히 놓지 못한다. 황량하고 차가운 언덕의 풍경처럼 처연한 감정이 폭풍처럼 몰아치는데도, 비통함보다는 묘한 안타까움이 오래 남는다. 이 같은 사랑이라면 피하고 싶다며 몸서리를 치다가도, 그 격정 앞에 삶을 내던지는 순간만큼은 기이한 황홀함마저 감돈다. 멈추고 싶지만 멈출 수 없는 서사의 힘이 여기에서 발생한다. 불편함과 매혹이 동시에 작동하는 독특한 독서 경험이다.

(실제로 읽다 보면 진절머리가 나는 대목도 적지 않다.)

출신이 불분명한 히스클리프는 사회 질서의 바깥에서 안으로 밀려든 인물이다. 그는 억압받는 타자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폭력을 행사하는 존재로 변모한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는 뒤바뀌고, 개인의 광기와 사회적 구조는 서로를 자극하며 증폭된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낭만적 격정과 사회적 리얼리즘을 자연스럽게 겹쳐 놓는다. 이러한 설정은 이 작품의 가장 근원적인 아이러니이자 동시에 그것을 떠받치는 구조를 형성한다. 사랑은 개인적 감정에 머물지 않고 계급적 분노와 결합하며, 더욱 파괴적인 힘으로 변한다.

형식 역시 이 대립을 반영한다. 액자 구조와 복수의 화자를 통해 사건은 단일한 진실로 고정되지 않는다. 특히 제3자의 입장에서 서술을 이어가는 딘 부인의 시선조차 완전히 공정하거나 투명하지 않다. 누구도 절대적인 판단자가 될 수 없으며, 모든 진술은 누군가의 해석일 뿐이다. 이 모호함은 독자에게 도덕적 판단을 떠넘긴다. 작가는 그저 뒤틀린 영혼들과 응축된 욕망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둔다.

그래서 이 작품은 쉽게 아름답다고 말하기 어렵다. 격정은 넘치지만 성찰은 충분히 따라오지 못하고, 삶은 신경질적으로 소진되어 간다. 짧은 생애와 속절없는 죽음이 이어지고, 남겨진 이들 또한 완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마지막을 화해와 재생의 가능성으로 읽을 여지도 있지만, 내게는 그조차 선뜻 개연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끝까지 남는 것은 해소되지 않은 긴장과 잔여 감정이다. 감동보다는 소진, 위로보다는 불편함이 더 오래 지속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19세기 영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에밀리 브론테는 빅토리아 사회가 요구하던 도덕적 질서와 교훈적 서사의 관습을 과감히 벗어났다. 사랑을 이상화하지 않았으며, 정제되지 않은 욕망과 계급적 분노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또한 진실을 하나로 고정하지 않는 서술 방식을 통해 이후 심리소설과 모더니즘 서사의 선구적 가능성을 예고했다.

오늘날의 독자에게 이 작품은 감정의 과잉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1847년의 독자에게 그것은 인간을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드러낸 위험한 소설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어두운 충동을 외면하지 않은 용기. 그것이 『폭풍의 언덕』을 지금까지 살아남게 한 힘이다.

이 소설의 위대함은 대립되는 것들이 한 작품 안에서 동시에 숨 쉬도록 내버려 둔 데 있다. 그리고 그 불편한 공존이야말로 인간의 진실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소진되면서도 끝내 책장을 덮지 못한다. 불편함 속에서, 오히려 더 또렷하게 인간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Tip. 복잡하게 얽힌 두 가문의 가계도를 먼저 살펴보면 인물 관계가 또렷해져 읽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워더링하이츠 #고전문학 #폭풍의언덕 #에밀리브론테 #서평

*이 서평은 구매한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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