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만들기 - 성형외과의의 탄생
린지 피츠해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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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만들기』를 읽으며 나는 논픽션이 오히려 가장 극적인 서사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이 책은 허구보다 더 생생하고, 상상보다 더 참혹하며, 그래서 더욱 깊이 마음을 파고든다. 픽션은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이 책은 “실제로 그랬다”는 사실을 들려주기에 그 무게가 다르게 다가온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비극을 배경으로, 얼굴을 잃은 병사들과 그 얼굴을 되찾아주기 위해 일생을 바친 해럴드 길리스의 이야기는 잘 짜인 소설처럼 흘러가지만, 한 장면 한 장면이 실제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 큰 울림을 남긴다.

전쟁은 얼굴을 파괴했다. 포탄과 파편은 사람의 형체를 무너뜨렸고, 얼굴을 잃은 병사들은 사회 속에서 ‘자기 세계의 이방인’이 되었다. 팔다리를 잃은 이들이 영웅으로 불릴 때, 얼굴을 잃은 이들은 시선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 사회가 얼굴에 얼마나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드러낸다. 이 책은 성형 수술의 역사를 다루지만, 실은 ‘존엄의 복원’을 이야기한다. 먹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의 회복을 넘어, 다시 사회 속으로 돌아갈 수 있는 얼굴을 만들어주는 일. 그것은 허영이 아니라 생존이었고, 선택이 아니라 절박함이었다.

전쟁의 비극 속에서 펼쳐지는 이 감동의 서사는 단순하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여러 겹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전쟁이라는 극단적 파괴가 없었다면 현대 성형외과는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참혹한 상처는 외과 기술을 밀어붙였고, 외과 의사와 치과 의사, 화가와 조각가, 사진사가 협업하는 새로운 의료 체계를 탄생시켰다. 인간은 서로를 파괴하는 동시에,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그 파괴를 복원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과연, 지구 위에 피를 묻히지 않고 세워진 문명이 있을까. 우리가 오늘날 당연하게 사용하는 많은 기술이 전쟁과 극한의 생존 경쟁 속에서 발전했다는 사실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 책은 성형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하는 동시에, 인간의 얼굴과 존엄을 깊이 있게 성찰하게 한다. 얼굴은 누군가에게 보여질 수밖에 없는 정체성의 형상이며, 인간 심리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의 성형이 더 나은 미적 기준을 향한 선택이라면, 제1차 세계대전 속 길리스의 수술은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되찾는 일이었다. 하나는 경쟁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존재의 문제다. 그 차이를 인식하는 순간, ‘성형’이라는 단어가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동시에 우리는 깨닫게 된다. 얼굴은 단지 피부와 뼈의 구조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자아 인식이 응축된 입체적인 표면이라는 사실을.

참혹한 전쟁 속에서 성형술의 발전을 다루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어둡기만 하지는 않다. 그 속에는 언제나 희망과 연대, 의지와 사랑이 피어난다. 길리스는 병동에서 거울을 치우며 환자의 마음을 보호했고, 얼굴 재건의 의지를 북돋우며 재치 있는 농담을 건넬 줄 아는 따뜻한 인성의 소유자였다. 병사들이 길리스와 웃음 섞인 대화를 나누고 의지가 되어주는 장면은 뭉클하고 감동적이다.

파괴의 한복판에서도 인간은 복원을 시도하고, 절망 속에서도 존엄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감동일 것이다.

『얼굴 만들기』는 의학사의 한 전환점을 기록한 책이면서, 동시에 인간이라는 존재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이야기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지만, 또 서로를 살리기 위해 필사적이다. 전쟁은 파괴의 역사이지만, 그 속에서도 누군가는 얼굴을, 곧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세우려 했다. 논픽션이 이토록 서사적이고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증명한다. 우리가 오늘 누리는 기술은 과연 어떤 고통 위에 세워졌는가. 그 물음은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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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증정 @openbooks21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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