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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만 헤엄칠 수 있었다
고야나가 도코 지음, 이다인 옮김 / 허밍북스 / 2025년 12월
평점 :
소설 속의 소설 형식을 오랜만에 만난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비하인드 스토리처럼, 허구의 이야기 뒤에 실제는 어떤 모습일지 우리를 자극한다. 이 작품은 소설을 뚫고 나온 ‘실제’라는 이면이 어떤 진실을 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그 이야기 역시 다시 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허구가 지닌 미학을 드러낸다.
진실을 둘러싼 인물들의 대화와 추적은 현실과 소설을 오가며 미스터리하게 이어진다. 독자는 단서를 쫓듯 이야기의 틈을 더듬으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끝내 확신할 수 없는 상태로 소설을 따라가게 된다. 이 불확실함은 자연스럽게 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이야기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뻔한 스토리가 펼쳐질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 안에서 해피엔딩을 기대하고, 모든 것이 잘 짜인 듯 우연과 운명이 주인공을 보살피기를 바라며, 결국에는 눈부신 장면이 그려지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그렇게 기대하는 바를 이야기에서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은 소설처럼 짜임새 있지도, 매끄럽지도 않다.
현실이라는 ‘실제’는 이야기의 원형이 된다.
우리가 보거나 듣거나 느끼지 못한 것들을 완전히 벗어난 이야기를 써내기는 어렵고, 그것이 상상에 더 가까운 허구라 할지라도 결국 현실에서 가져온 진실이 스며들기 마련이다. 때로는 그 진실의 변형이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드라마틱해 이질감으로 느껴지더라도, 그 이야기에서 희망과 위안을 얻는 사람이 더 많다면 어떨까. 허구의 이야기들이 오랫동안 아름답게 쓰여온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와 가치가 있을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소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어 영화화를 앞둔 베스트 소설이다. 시한부 소녀와 그녀의 곁을 함께하는 소년이라는 진부하지만 아름다운 설정, 그리고 눈부신 문장들. 이 이야기의 실제 모티브가 된 주인공은 어느 날, 책 속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임을 알아차리고 이내 역겨움을 느낀다.
소설 속 실제 주인공을 만나고 싶었던 작가는 추적 끝에 그와 접점을 만들고, 작가와 주인공은 함께 소설 속 또 다른 주인공의 ‘실제 삶’을 따라가며 아름다움을 벗겨낸 진짜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진짜 이야기는 볼품없다.
이상과 다른 평범함은 삶의 나약함만을 드러내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기에는 초라하고 우울하다. 그들의 이야기는 과장과 포장을 입고 아름답고 눈부신 낮의 파도처럼 일렁였지만, 사실은 어둠 속에서만 이어졌고 눈부신 하늘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 소설의 제목인 『밤에만 헤엄칠 수 있었다』는, 소설 속 ‘소설’ 안에서 아름답게 재현된 두 주인공과 달리 실제의 그들은 결코 빛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들이었음을 암시한다. 낮의 바다는 언제나 타인의 시선과 규범, 기대와 판단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속에서 그들은 숨을 참고 바닥을 더듬듯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오직 어둠이 깔린 밤에만,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만 그들은 겨우 헤엄칠 수 있었다.
밤은 이들에게 선택할 수 있던 유일한 시간대였고, 말해질 수 없는 이야기들이 허락되는 최소한의 공간이었다.
숨을 죽인 채, 바닥이 차가운 줄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 움직임. 결코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자각 속에서도, 그들은 밤에 헤엄치기를 멈추지 않는다.
결국 현실의 끝에서 그들이 발견한 것은 후회나 미련, 자책과 상실이 아니라 회복과 삶의 지속이다. 현실의 틈에서 기어코 비집고 나오는 아름다움이 이 소설을 완전한 허구에서 구한다.
『밤에만 헤엄칠 수 있었다』는
낮의 서사가 지워버린 밤의 시간을 끝까지 데리고 와
이야기로서가 아니라 삶으로 독자 앞에 놓인다.
우리가 여전히 이야기를 기대해도 되는 이유를 증명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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