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까지 비밀이야
안세화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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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가지는 순간부터
그것을 가진 사람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 파울로 코엘료

여기, 산에서 조난당한 네 사람이 있다.
그들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각자의 비밀을 공유한다. 고백은 처음엔 가볍고 사소하게 시작된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까.

그리고 이내 한 사람의 고백이 그들을 지배한다.
“사람을 죽인 적이 있어요.”

뜻밖의 비밀을 공유한 그들은 죽음 앞에서 가까스로 구조된다. 소설은 구조 이후부터 숨 가쁜 속도로 전개된다. 비밀을 알아버린 이후의 선택들, 그리고 그 선택을 정당화하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따라 이야기는 브레이크 없이 질주한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 소설은 이야기 자체로 매우 재미있다. 쉼 없이 던져지는 질문과 선택의 연속 속에서 독자는 정신없이 빨려 들어간다. 마치 소설 속 등장인물처럼.

인물들은 모두 주변에 한 명쯤은 있을 법한 친구들처럼 익숙하다.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와 대화 방식, 배경과 사물들까지 모든 것이 평범하고 친숙하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살인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마치 오늘도 어딘가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을 법한 일상처럼 느껴진다. 그 자연스러움과 친숙함이 이야기에 친밀도를 더하는 구성이 돋보인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딱 한 번이었어.”
“어쩔 수 없잖아.”
“다 ㅇㅇ 때문이야.”

이 문장들은 소설 속 인물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선택은 비현실적인 공포가 아니라, 현실에서 충분히 가능한 판단의 연쇄로 전개된다. 그 점이 이 소설을 더욱 적나라하게 만든다.

선과 악의 경계는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두려움에 따라,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 앞에서 쉽게 흔들린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읽는 내내 독자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이 상황에 놓였다면, 나는 과연 달랐을까.
끝까지 옳은 선택이란 무엇일까.
‘현명한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한 발 물러서는 것이 맞을까.

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은 과연 어디까지 유효할까.

이 소설이 잔인한 이유는, 그 질문에 어떤 답을 내리든
그 선택이 꽤나 그럴듯하게 보인다는 데 있다.
모두가 나름의 논리를 갖고 있고, 모두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웃음을 유발한다.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불합리한데도 우리는 웃게 된다.
그리고 이내, 농담처럼 씁쓸한 미소를 남긴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계산이 빨라졌고,
언제부터 이렇게 침착하게 악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을까.

책을 덮은 뒤에도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무덤까지 비밀이야》는 묻힌 무덤처럼, 감춰진 비밀처럼
명확한 결말을 제시하는 소설이 아니다.
대신 독자의 손에 불편한 거울을 쥐여준다.

우리 역시 익숙한 얼굴로
아주 자연스럽게,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선과 악을 넘나들고 있다는 사실을 비추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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