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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V의 투숙객 ㅣ 그늘 단편선 1
양지윤 지음 / 그늘 / 2025년 11월
평점 :
오래 여운이 남는 글이 있다. 그런 글은 단단한 서사를 품고 있어, 소설 속 인물들이 말을 걸어온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임에도 나는 그들과 마주 앉아 긴 대화를 나눈 듯한 기분이 든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늘 슬픔이 내재되어 있고, 그 슬픔의 출처는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기약 없는 것이다.
양지윤의 단편집 『호텔 V의 투숙객』에는 세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각 단편은 서로 다른 상황과 관계를 다루지만,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닮아 있다. 유약하고 무르며, 정처 없이 거리를 걷는 외로운 사람들. 그들은 모두 무언가를 찾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능동적인 ‘찾음’이라기보다, 그 자리에 머문 채 도착하기를 바라는 ‘기다림’에 가깝다.
그들은 마치 끈이 끊어진 연처럼 갈 곳을 잃은 채 처연히 존재한다. 외로움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면, 그 해답 역시 함께 도착했을 것이다. 그러나 삶에는 끝내 설명되지 않는 간극들이 있고, 그 틈은 늘 우리의 미소 뒤에 숨어 있다가 불쑥 외로움을 내민다.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는 이유는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는 소설 속 문장처럼, 설명되지 않는 상실은 포기도 선택도 허락하지 않은 채 삶을 붙잡는다.
양지윤의 소설은 ‘기대’로 출발한다. 소설의 시작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서사적 요소로 우리의 주의를 단숨에 소설로 옮겨온다. 그리고 내내 기다리는 무엇을 내어주지 않은 채 줄다리기를 하다, 영영 가지지 못할 것들 앞에서 홀연히 사라지듯 마무리된다.
그녀의 소설과 인물을 대변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플롯 자체다. 그리고 그 기다림과 허무가 어쩐지 우리의 삶과도 꼭 닮아, 내내 마음 한구석에 잔상처럼 남는다.
그녀의 문장은 과장된 비유 없이도 아름답다. 단정한 문장들 사이에서, 한 단락이 끝날 때마다 우리의 가슴을 툭 치고 들어오는 사유의 덩어리는 생각의 끈을 따라 깊게 파고든다.
책을 덮고 나서도 자리를 물리기가 어려웠다. 글 앞에 계속 머물고 싶어진다. 잘 알지 못해 쉽사리 친해질 수 없는 누군가의 표정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다시 마주친다면 말이라도 걸어보고, 고요히 곁을 내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이것은 같은 세계를 통과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연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저녁 내내 이 소설을 붙들고 앉아 그들을 떠올렸다. 어떠한 위로도 필요로 하지 않지만, 누군가를 끝내 기다리고 있는 인물들을. 사실은 아주 작은 기대 하나만으로도 완전해질 수 있었을 그들을.
이 소설은 삶이 그 자체로 우리가 모두 한때는 머물렀다 떠나는 투숙객이었음을, 그리고 지금도 내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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