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란 말 따위 - 딸을 빼앗긴 엄마의 마약 카르텔 추적기
아잠 아흐메드 지음, 정해영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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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이룬 국가는 드물다. 많은 국가는 식민지 시절 수백 년간 약탈당했고, 언어·종교·민족이 뒤섞인 땅에 외세가 국경을 그어 불평등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사회학자 월러스틴은 말한다.
“국가의 안정성은 그 국가가 출발한 순간의 구조를 거의 그대로 반영한다.”

멕시코는 미국이라는 거대 시장과 맞닿아 있어 국제 마약 카르텔의 중심지가 되었고, 사헬·중동·아프가니스탄 역시 지리적 조건 때문에 폭력과 전쟁이 반복된다. 지리적 위치는 번영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어떤 곳은 국제 질서의 영원한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세계는 중심국과 주변국으로 구성된 글로벌 자본주의 체계로 움직인다.
중심국은 고부가가치 산업을 독점하고 주변국은 원자재·저임금 노동에 의존한다. 카르텔은 이 구조적 빈틈에서 나타난다.
멕시코의 카르텔은 단순 범죄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부산물이며,
돈의 흐름을 장악한 집단에게는 국가를 대체하는 새로운 폭력이 생긴다.

정권이 불안정한 국가에서는 정치가 생존 게임이 되고, 권력자는 반대파 제거에 몰두하며, 경찰과 군대는 시민보다 정권을 우선한다. 멕시코에서는 국가와 시민의 신뢰가 붕괴했고, 그 틈을 카르텔이 채웠다.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는 전체주의와 전쟁을 겪은 삶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간다. 전쟁은 늘 그렇다.”

전쟁과 카르텔, 국가 폭력은 역사와 구조적 누적이 만들어낸 결과지만, 정작 그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은 그 원인을 이해할 시간도, 여지도, 위치도 갖지 못한다.
삶이 무너지는 순간에 “왜?”라고 질문할 여유는 없다.

극도의 공포 속에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침묵하고,
상황을 이해하거나 슬퍼할 여력조차 사라진다.
이 무력함이 오늘날 세계에 드리운 가장 어두운 그림자다.
이해하지 못한 채, 설명조차 듣지 못한 채 삶과 관계와 의미가 무너져 내린다. 그 배경에는 결국 세계의 무관심도 자리한다.

『두려움이란 말 따위』의 저자 아잠 아흐메드는
4년 동안 인터뷰와 자료를 수집하며
2010년대 멕시코 산페르난도의 학살을 추적했다.
그 기록들 사이에서 카르텔에 납치된 딸의 행방을 찾기 위해 자신의 삶을 걸고 싸웠던 어머니 미리암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한 어머니의 사투를 넘어,
멕시코를 잠식한 구조적 비극을 묻고,
‘왜?’라는 질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인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폭력과 무력함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
그들의 목소리 덕분에 이 책은 단순한 비극의 서사가 아니라
‘질문하는 인간의 힘’에 대한 이야기로 남는다.

카르텔이 지배하고 경찰이 부패한 땅에서 사람들은 포기할 수 있는 온갖 이유를 가지고 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누구도 믿을 수 없으며, 질문하는 순간 생존은 위협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암과 아잠 아흐메드는 두려움 앞에서 침묵을 거부하고 끝까지 ‘왜’를 추적했다. 그들이 보여준 용기는 두려움 앞에 다시 서는 인간성을 돌아보게 한다.

『두려움이란 말 따위』가 특별한 이유는
단지 멕시코의 비극을 고발하는 데서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거대한 구조적 폭력을 설명하면서도, 그 안에서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힘은 결국 시민의 질문과 연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리암처럼 질문을 던지고 끊임없이 행동한 개인의 용기는 결국 지역사회와 탐사 언론을 움직였고, 멕시코 정부의 은폐를 드러내고, 카르텔과 경찰의 공조 구조를 폭로했다.
이 책이 보여주는 건, 거대한 구조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무력감 속에서도 그 구조를 뒤흔드는 작은 균열이 어디에서든 시작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세계를 뒤덮는 폭력과 불평등은 결코 먼 나라의 일이 아니며, 어떤 사회에서든 시스템은 방치하면 시민 위에 군림한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거대한 구조를 단숨에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고 기록하고 연대하는 작은 행동들이
어떻게 현실을 바꿀 수 있는지를 잊지 않는 것이다.

『두려움이란 말 따위』는
폭력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묻는 책이자, 그 질문이 현실을 조금씩 움직여온 실제 사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비극을 말하지만 비관적이지 않고,
희망을 말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오늘 우리에게 반드시 읽혀야 하는 의미 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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