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는 날 - 존엄사의 최전선에서, 문화인류학자의 기록
애니타 해닉 지음, 신소희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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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남는 문장
"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우리 사회가 죽음을 끈질기게 부정한다는 점이다. 죽음을 적으로 여기면 죽음에 패배할 수밖에 없다."

현대 의학은 우리의 수명을 100세까지 연장시켰다. 하지만 이런 생명 연장은 수명과 건강수명 사이의 틈을 더 벌려놓았다. 아프게도 '연명'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환자들에게 생명연장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닐 수도 있다.

의료의 목적은 '생명 연장'일까 '고통의 완화'일까. 둘 다 포함이 되는 상황에선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양자 택일로 가는 상황이 오면 사람마다 가치관에 따라 대립하게 된다. 그래서 존엄사를 돕는 의료 행위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1997년 오리건주에서 미국 최초로 조력 사망을 합법화했다. 조건은 까다롭다. 시한부로 여명이 6개월 내로 남았다는 의사의 진단이 필요하고, 정신이 온전하여 스스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며, 스스로 치사 약물을 섭취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마저도 동의하는 의사가 많지 않다.

저자 애니타 해닉은 문화인류 학자로 이 조력사망과 관련된 환자, 환자의 가족, 의사, 호스피스 간호사, 자원봉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현장에서 취재하며 존엄사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한다.

저자가 현장에서 생생하게 기록한 조력 사망의 순간들을 읽다 보면, 때론 내가 본인이 되기도 하고, 가족이 되기도 하며 계속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경험한 적 없어도 남의 이야기가 같지 않았다.

'나라면 스스로 삶을 중단하고자 하는 선택을 할까'
'내 가족이 조력 사망을 원한다면 나는 동의할 수 있을까'

얼마 전에 봤던 <아무르> 영화가 떠올랐다. 남편은 평생 함께 했던 아내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결정을 한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도 일부러 식사를 거부하고 "인생이 너무 길다" 말하는 그녀의 마음을 읽은 것이다. 그가 죽은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꽃잎으로 정성스레 그녀의 주변을 에두르는 모습은 분명 사랑이었다.

책의 추천사에 언급한 것처럼 조력 사망은 조만간 대두될 사회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되고, 죽음의 자기 결정권에 대해 우리 사회도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좋겠다.


*출판사 수오서재로부터 도서만 제공 받아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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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젠슨 황, 생각하는 기계
스티븐 위트 지음, 백우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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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남는 문장
"내 주변의 회로들은 초당 1,000경 번의 계산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 시스템은 우리 모두를 죽이거나,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젠슨의 칩 위에서 일어날 것이다."

젠슨 황의 첫 번째 공식 자서전
젠슨 황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 300여명을 인터뷰하며 엔비디아와 젠슨 황의 성장 스토리를 담았다. 500페이지 정도로 제법 분량이 있지만 스티븐 위트의 필력 덕에 가독성이 꽤 좋다.

젠슨 황은 요새 유행하는 말처럼 '보법이 다른' 인물이다.
어렸을 때부터 학업 성적이 월등히 좋았고, 20대에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였다. LSI에서 초고속 승진을 하며 승승장구하던 젠슨 황을 눈여겨 보던 크리스와 커티스의 제안으로 1993년에 엔비디아를 창업한다.

첫 출시작 NV1의 성공으로 직원 수도 늘리며 순항하는 듯 했으나 렌더링 문제가 발생하며 회사의 존폐 위기까지 몰린다. 이 상황에서 젠슨 황은 관습을 깨고 기지를 발휘하는데, 시제품 제작을 생략하고 에뮬레이터를 이용하여 디지털 설계대로 대량 생산에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비용과 시간을 단축한 덕분에 적시에 제품을 공급하고 대박이 난다.

엔비디아의 지포스가 워낙 독보적이라 안정적으로 성장해왔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업 앤 다운이 굉장히 심했었다. 그리고 놀라운 건 젠슨 황은 AI에 생각보다 일찍 눈을 뜬 것이다.

AI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일생 일대의 기회라고 여긴 젠슨황은 그 전부터 이미 충분히 워커홀릭이었지만 취미까지 포기하며 일에 매달린다. 그 결과가 지금의 AI 혁명 중심의 엔비디아이다.

"AI 분야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엔비디아는 유일한 무기상이다."

✅️ 젠슨 황에 대해..

사실 이 책은 젠슨 황의 자서전이지만 젠슨 황보다는 엔비디아의 성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젠슨 황의 인간적인 면모보다는 엔비디아의 수장으로서의 모습이 더 드러난다.

비전가이자 세계적인 엔지니어, 거기에 주 6일 12시간 일해온 워커홀릭. 이런 젠슨 황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인재를 끌어들이는 능력이었다. 엔비디아의 놀라운 성과는 훌륭한 엔지니어들이 돈이 아닌 성취를 위해 함께 달려온 덕분이다. (물론 그들은 돈도 많이 벌었다)

회사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 엔지니어들이 엔비디아의 비전과 함께 하고 싶게 만드는 능력이야 말로 엔비디아를 지탱해 온 힘이라 생각한다.

✅️ AI의 발전 속도, 정말 괜찮을까

책의 마지막에는 AI의 인간을 뛰어 넘는 연산 능력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다. 젠슨 황은 이 질문을 셀 수 없이 받아온 탓인지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이고,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세계 최고 컴퓨터 공학자 3명은 현재의 AI 수준에 대해서 우려를 하고 있다. Chat GPT의 오픈AI에서 이 문제로 내분이 일어났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영화들로 학습된 탓인지 우리가 특이점 이전에 이를 막을 수 있을 지 우려가 된다. AI의 두뇌라 할 수 있는 엔비디아 칩의 연산 능력은 그만큼 압도적이다.


*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도서만 제공 받아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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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처럼 생각하기 - 불확실성의 시대를 읽어내는 경제학
에드 콘웨이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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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남는 문장
"결국 경제학이란 인간의 의사 결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그 배경이 꼭 금전적인 맥락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물질의 세계>로 유명한 작가이자 경제 전문 기자인 에드 콘웨이의 경제 개념서이다. 경제학은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어렵다. 그래서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 책들이 시중에 많고, 그 중 몇 권을 읽어 봤는데 이 책은 그런 책들 중에서도 가독성이 굉장히 뛰어난 편이다.

이 책은 50개의 키워드로 나눠 각각의 키워드마다 독립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키워드 형식의 구성은 각각의 개념을 이해하기는 좋으나, 전체적인 경제 시스템이 돌아가는 방식과 흐름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저자는 기자 출신 답게 50개의 키워드를 다양한 실제 사례와 연결하여 개념뿐만 아니라 맥락까지 설명한다. 가령 '채권시장'에서 채권의 기본 개념은 물론이고, 채권의 종류, 그리고 채권시장에서 단기 채권과 중장기 채권의 이자가 의미하는 바까지 간결하게 설명한다.

이 책의 또 한 가지 매력 포인트. 장마다 마지막에 키워드와 관련된 명문들을 소개하는데 꽂히는 문장들이 많았다.

✅️ 책 속의 문장들

*자본주의의 내재된 악은 축복을 불평등하게 나누는 것이고, 사회주의에 내재된 선은 불행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다.
- 윈스턴 처칠

*여태껏 돈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람은 돈을 더 많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어 한다. 돈은 빈 독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 만든다. - 벤저밍 프랭클린

"파티가 한창 무르익으려 할 때, 펀치볼을 치우는 것이 연준의 역할이다." - 윌리엄 맥체스니

"은행은 날씨가 맑을 때 우산을 빌려줬다가 비가 오기 시작하면 뺏어간다." - 마크 트웨인

"자유보다 평등을 우선하는 사회는 두 가지 모두 얻지 못한다. 평등보다 자유를 우선하는 사회는 높은 수준의 두 가지를 모두 얻을 것이다." - 밀턴 프리드먼

이 책이 처음 출간된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최근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화두가 된 '보호 무역'에 대해 마치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 예언하듯 깊은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반복하는 것이라는 볼테르의 유명한 말처럼 벌어질 일은 벌어질 것이다. 경제는 앞으로도 호황과 침체 사이를 반복할 것이고, 우리는 지나치게 낙관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 책은 그러기 위해 좋은 초석이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제공 받아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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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 - 대량학살자의 밝혀지지 않은 삶
베티나 슈탕네트 지음, 이동기.이재규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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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남는 문장
"나는 기쁘게 무덤으로 들어갈 거야. 왜냐하면 그곳에는 이미 600만 명의 유대인이 묻혀 있기 때문이지."

아이히만, 그는 진정 시대가 평범한 사람을 악마로 둔갑시킨 것일까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종전 후 신분을 숨기고 아르헨티나로 도주한다. 이 곳에서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예명으로 살다가 덜미가 잡히고, 예루살렘으로 납치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악마같은 행적과 달리 재판장에서 한없이 초라해보이는 모습. 거기에 자신은 그저 복종의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는 일관된 그의 말과 행동을 본 한나 아렌트는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창안한다.

악의 평범성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무사고'. 그러니깐 끔찍한 '악행'도 '악의'가 아닌 '무능'의 결과고, 유대인 학살을 주도적으로 실천한 아이히만 조차 그저 나치에 복종하고 도덕적 가치 판단 없이 순응한 인물이라는 해석이다.

이 책의 저자 베티나 슈탕네트는 한나 아렌트가 지나치게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으며 적어도 아이히만에게는 '악의 평범성'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의 '비범함'을 증명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문헌들을 모으고 유실된 녹취까지 복원하며 그의 삶을 재구성한다. (무려 인용에 대한 주만 100페이지가 넘는다.)

아이히만은 얼마 전 읽은 <불통, 독단, 야망> 이라는 책에서 '초단절형 인간'이라 정의한 인간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야망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교활함을 가지고 있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으며, 나르시즘에 사이코패스 기질을 가지고 있다.

교활하고 주도면밀한 성격으로 나치 정권에서 빠르게 인정받고 종전 이후엔 신분을 감추고 도주하는데까지 성공했으나, 명성에 집착하는 나르시즘 때문에 결국 꼬리가 밟히고 만다.

유명한 사선 인터뷰에서 아이히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제일 먼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나는 절대 십자가에 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대다수의 나치 당원들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대로 '생각하기의 무능' 상태에서 악행에 가담했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에서 아이히만을 보고 '악의 평범성'이란 결론에 도달했다면, '악의 평범성'을 창안한건 아렌트가 아닌 아이히만일수도 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은 이 모든 것을 계획할 수 있었던 '비범한 악인'이기 때문이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 밑으로 들어가버린 아이히만, 그리고 독일 정부를 다시 악의 영역 안으로 되돌려 진정한 반성을 도모하고자 하는 학자의 집념이 빛나는 책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균형을 위해 이 책도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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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3 - 가볍게 친해지는 서양 현대미술 방구석 미술관 3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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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남는 문장
"예술가의 리얼리티는 예술가가 자신의 시대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반영한다."

교양미술 분야에서 가장 많이 사랑 받는 베스트셀러라 할 수 있는
<방구석 미술관>의 신작이 나왔다. 이번 <방구석 미술관 3>에서는 서양 현대 미술가들을 소개한다.

이 책의 서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피카소 이후의 현대 미술은 다가가기가 어렵다. 미술가와 평론가의 그들만의 리그처럼 되버린 느낌이랄까. 유명한데 왜 유명한지 대중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개인적으로 호안 미로 전시를 보고 아무 감흥이 없었던 아픈 기억도 있다.

그런 면에서 대중들이 어려워하는 미술을 친절하게 풀어주는 <방구석 미술관>이 가장 필요했던 게 서양 현대 미술이 아닐까. 이번 책에서 소개하는 예술가들의 라인업부터 기대를 만든다.

피트 몬드리안
살바도르 달리
알베르토 자코메티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

개인적으로 피트 몬드리안,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의 화풍이 완성되는 과정과 어떻게 그들이 인정 받는 작가가 될 수 있었는 지가 너무 궁금했었기 때문에 더 반가웠다.

10명이 넘는 화가를 소개했던 전작과 달리 6명의 화가의 삶을 보다 밀도 있게 조명한 이번 책은 역시나 기대만큼 재밌다. 예술가들의 비범한 삶과 예술 세계를 나근나근한 구어체로 흥미롭게 전달하며 어려웠던 현대 미술을 보다 친숙하게 만들어 준다.

<서양 미술사>에서 곰브리치는 현대미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각형 두 개만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만드는 제작자가 성모를 그렸던 과거의 화가보다 더 큰 고민을 했다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보기엔 쉽고 단순해 보이는 작품 속에 우리가 모르는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 가령 몬드리안의 작품 변천사를 보면 자연주의 구상화, 그 후엔 뭉크와 마티스의 영향을 받은 표현주의, 그 다음엔 피카소와 브라크의 영향을 받은 입체주의를 거쳐 간다. 조형주의에 오기까지 변화들을 보면 그가 미에 대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알 수 있다.

현대 미술에 느꼈던 벽이 완전히 허물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균열은 간 느낌이랄까. 이 책을 읽은 후에도 나는 여전히 피카소 이전의 미술을 더 사랑하지만 현대 미술에도 내적 친밀감이 생긴 것 같다.


*출판사 블랙피쉬로 부터 도서만 제공받아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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