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식과 속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들

한정희와 나 - 2017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이기호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1월

이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나는 단편소설집을 굉장히 어려워한다. 주제나 소재가 명확한 논픽션과 다르게 내가 주제를 해석해야 하고, 장편소설과 다르게 호흡이 짧아 아직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찾지 못했는데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렇기에 짧은 시간안에 강렬한 인상과 여운을 남기는게 단편소설의 매력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은 17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 및 후보작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사실 각종 문학상에는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이 문학상이 어떤 작품들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이 책의 작품들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사회문제가 담겨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수상작 「한정희와 나」는 타인에 대한 인간의 환대가 과연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거짓 혹은 가면인지 생각해볼 기회가 되는 이야기이다. 어린시절 경제적 어려움으로 부모님이 아닌 사람들 밑에서 친딸처럼 보살핌을 받고 자라던 아내가 그분들의 손녀를 데리고와 돌보자고 이야기한다. 글의 화자인 남편은 그렇게 정희를 데려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정희는 어린 동생들의 호기심에도 웃으며 대하고, 주인공에게도 살갑게 대하며 사춘기 딸아이를 가진 아빠의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분명히 주인공은 이렇게 정희와의 생활을 기쁘게 받아들었다. 그러나 정희가 사회적문제를 일으킨 순간, 그의 입에서는 그동안과 다른 말이 튀어나오고 만다.

"너 정말 나쁜 아이구나, 어린게 염치도 없이..."

주인공은 분명 타인인 정희를 환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화를 낼 때 튀어나온 말은 정희라는 객식구를 맡게 된 불만과 짜증이었다.

우리는 주로 가까운 사람은 편하고 떨어질 수 없는 사이(혹은 떨어질 수 없다고 착각하는 사이)에는 조금 함부로 대하기도 하면서 나와 상관없는 제3자에게는 친절과 미소를 내보인다. 나 또한 마찬가지인데, 가끔 이런 내가 가면을 쓰고 행동한다는 생각을 하곤한다.
과연 인간은 타인을 절대적으로 이해하고 기뻐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일까?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건 「손톱」이라는 작품이었다. 어린시절 엄마의 도망, 성인이 된 후에는 언니의 도망으로 혼자 빚더미를 껴안게 된 주인공은 수입 지출을 계산하며 근근히 살아간다. 이번에 이직하면서 조금 더 오른 월급으로 저축을 더 할 수 있을거라 희망에 부풀었지만, 이내 곧 치솟을 보증금과 끝나지 않을 대출이자에 절망한다. 아등바등 살아가면서 어느샌가 스스로의 정신마저 온전하게 보전하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은 취업난과 치솟는 부동산값에 삶의 기본적인 욕구들마저 포기해버린 우리 세대들괴 많이 닮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우리사회와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좋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는 책이다.

(이 리뷰는 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