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자책]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김보통 / 문학동네 / 2017년 9월
평점 :

괜찮은 책이 있나 여러 블로그들을 탐방하던 중 우연히 알게된
작가이다. 이 사람의 책이 생각보다 괜찮다라는 한 블로거의 후기를 보고 집어들었는데 나 또한 생각보다 좋았던
책이다.
<p.12 "대기업에 가야해" 아버지가 말했다..."그래야 사람처럼 살 수
있어">
저자는 '보통'의 우리네 가정과 비슷하다. 저자가 아주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도 직장에 소속된 회사원이었으나 내가 기억하는 부분에서는 이미 회사를 그만두고 여러 가게를 운영하며 근근히 생활을 이어가는
형편이었다. 거듭되는 사업실패와 빈곤속에서 아버지는 저자에게 언제나 대기업을 가야한다고 이야기한다. 마치 대기업만 가면 모든 불행이 끝나고
행복해지기라도 한다는 듯이.
<p.29 한번은 저녁 6시에 시작한 회의가 밤12시에 끝났다. 장장 여섯시간에 걸친
회의중에 내 옆자리에 앉은 과장은 고개를 돌린 채 울었다. 과장이나 농담이 아니다. 뭔가를 끄적이는 척하고 있던 다이어리 위로 눈물이 떨어지고,
그것을 손으로 쓰윽 닦아내는 것을 내가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이해되지 않는 비효율적인 야근과 죽도록 마셔야 하는 회식,
언제나 벌겋게 충혈된 눈과 좋지못한 안색, 그리고 암투병 이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복귀하여 축하술파티를 하는 차장까지. '보통'은 납득하지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토록 꿈꿔왔던 대기업 직원으로의 삶은 난간 너머를 바라보며 이쯤에서 떨어지면 한방에 죽겠지라는 생각을 희망으로 삼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표를 던졌다. 그렇게 그는 도망쳤다.
내가 이전 직장을 다니면서 동료들과 항상 했던 이야기가
있다. "그만두고 싶다"
여기서
그만두는 것은 단순히 직장이 아니라 인생이었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심했었는데 나는 오히려 그 불행에 함몰되어 도망칠 생각조차 못했었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질 경우의 경제적 타격이 두려웠다. 그러나 저자는 우선 도망쳤다. 나는 그의 그런 행동력이
놀라웠다.
퇴사를 하면
많은 이들이 밟는 수순대로 그 또한 여행을 떠났다. 다른 책이라면 여행에서 큰 깨달음을 얻고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지 않다. 그는
여행에서 그저 시간만 흘려보냈다. 한국에 돌아온 뒤로도 여러가지를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점점 초조해하는 그의 심정을 읽어나가면서 그에게
크게 공감하게 된다. 세상에 특출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은 보통처럼 계획없는 퇴사 후 방황하고 초조해할 것이다.
<p.180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지고 싶어한다. 하지만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비해,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대체로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궁금해하고
이렇게하면 행복해진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중략)... 다들 뭔가 있을거라는 기대감에 네스호 주변을 서성이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조급해진 마음에 누군가 저기 어렴풋이 뭐시기가 그 행복이라는 괴물같은데 하는 착각에 빠져 그만 그림자를 향해 행복이다하고 외친다. 그러자 모두가
저마다 비슷한 심정으로 각기 다른것을 향해 외친다. 행복이다!>
저자는 초조하고 방황하던 시간을 통해 행복에 대해
고찰해본다. 그리고 아직은 불행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불행했던 과거 직장생활에서 벗어나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표을 낸
그에게 주위에 많은 이들이 이제 그가 불행해질 것이라고, 그러니 늦기전에 돌아가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큰 성공이나 행복을 갈망하는게
아니다. 매일 누리는 하루하루가 불행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 대학가서 이름있는 대기업에 입사하는게 인생의
성공이라 믿고 자식들을 가르쳐온 부모님 밑에서 막상 사회에 진출하고보니 내 행복이 없음을 깨닫고 퇴사한 보통은 우리가 겪는 심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자화상이다. 그가직접 격어보았기에 으리와 같은 심정을 공유할 수 있고, 그것이 이 책이 가진 커다란 매력이다. 그는 만화가 겸 수필가라고
하는데 이 책을 보고나니 그의 만화는 어떨지 궁금해졌다.
필명 "김보통" 보통의 우리네 삶을
담은 그의 에세이는 나와 같은 직장인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