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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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영화제작을 꿈꾸는 사람이며, 프랑스인 남편을 만나 태평양의 보라보라섬에서 살던 사람이다(현재는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것 같다) 보라보라섬은 프랑스령에 속하는 태평양의 섬으로 굉장히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섬은 동시에 심심하기 그지 없는 곳이기도 하다. 소비생활을 할 수 있는 가게라고는 마트밖에 없을 정도고 수시로 정전이 되기도 한다. 이런 보라보라섬에서 생활하며 저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p.34 상대적으로 제한된 소비생활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더 풍요롭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아이러니를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소비할수록 우리는 더 결핍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보라보라섬에는 가게가 많지 않다고 한다. 또한 이웃중에는 부유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허름한 집에서 소박한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소비할수록 결핍되는 것 같다는 저자의 글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나는 매달 가계부를 쓰고 있다. 대략 4년정도 가계부를 쓰고 매달 정산을 하면서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다. 바로 소비를 하지 않는 달에는 충격적일 정도로 소비를 하지 않고, 소비를 하는 달에는 충격적일 정도로 과소비를 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소비를 할수록 결핍되고, 이 결핍을 메꾸려고 더 소비하게 된다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무소유를 실천하면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던데, 무소유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보라보라섬과 같이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자연의 압도적인 경관에 취해살면 무소유를 실천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p.81 왜 상대방을 위로할 때 영어로 'I'm sorry'라고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미안했다. 그가 생일마다 어딘가 소심해지고, 더 서툴게 굴었을 때 속마음을 정확하게 읽어줬어야 했는데>




이들부부는 원래 연애시절부터 기념일을 크게 챙기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 당시 남자친구가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등 각종 기념일에 대해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고, 저자는 그런 남자친구를 보고 '그래, 이 나이에 굳이 유난떨 것 없지'라는 생각으로 같이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하고 보라보라 섬에서 지내면서 이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고 서로를 몰랐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기념일 챙기는 것을 좋아한다는 저자의 고백에, 남편은 어린시절 어려운 가정사정으로 생일을 챙겨본 적이 없다는 고백을 한다. 이 고백을 듣고 저자는 기념일에 남편이 심드렁한 것이 아니라 어색해하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솔직한 대화를 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는 심각한 착각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솔직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다.




<p.140 마트 밖으로 나와서도 한참을 멍해 있었다. 빨갛게 익은 고추들을 또다시 쳐다봤다. '이 사람들 뭐지? 여기는 정말 천국이었던가?' 가슴이 마구 뛰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이 천국이 아님을 증명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떄마다 이날을 생각했다. 이유 없이 상처를 입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건 없는 호의를 베푸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아무래도 삶의 균형이 맞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자가 보라보라섬에 자리잡은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녀는 낯선 언어, 화폐단위 때문에 마트에 갈때마다 헤메고 고생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마트 직원이나 이웃들이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고 이는 저자의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녀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도 따뜻한 손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었다고 한다. 


성인이 되면서 사람에게 많은 실망을 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상처받기도 했다. 그런데 분명 나를 행복하게 하는 좋은 관계도 있었다. 나 또한 저자처럼 인간관계로 힘들때 나를 위로했던 좋은 인연들에 대해 떠올려보면 어떨까?




<p.121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이상은 없다" 영화를 만다는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말에 딴지를 건자는 건 아니지만 내 생각에 영화를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은,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결코 영화를 만들려 하지 않고 관객으로 남는 것이다... p.123 "이 나이에? 바로 들어가도 졸업하면 서른일곱이야." "학교 안가면 뭐 서른일곱이 안돼?" 뭐지, 뭔가 이상한데 설득이 되는 이 논리는>




저자는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를 공부했고,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재능의 한계에 부딪쳐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싫어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생각이었다. 나 또한 좋아하는 일이 있고, 어릴때는 그 일을 하고 싶다고 꿈꾸었으나 현실적인 문제로 꿈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영화 쪽 일 제안이 들어와도, 영화를 더 배우고 싶어도 계속 망설이게 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이 이야기한다. 재능이 문제가 아니라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문제라고, 40대에라도 잘 쓰려면 지금이라도 노력해야 한다고 말이다. 


남편의 충고를 읽고 나 또한 뜨끔했다. 현재의 안락한 생활을 핑계로 꿈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모두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후회가 되었다. 안해도 서른일곱이 될텐데 노력한 뒤 서른일곱을 맞이하는게 낫지 않느냐는 그의 말을 꼭 기억해두어야겠다.




<p.57 하지만 각각의 일들을 지나오는 동안 우리가 조금씩 성장해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무리 작은 일도, 무의미한 일도 그래서 모두 의미가 있다... p.118 어디든 더하기만 있거나, 빼기만 있는 곳은 없을 거다. 그건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안다. 늘 까먹으니 문제지>




나이를 먹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 중 하나가 바로 '어떤 경험이든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는 것이다. 어릴때는 내 경험이 쓸모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때문에 초조했다. 남들은 나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는데 나는 뒤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아 불안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다양한 일을 겪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경험이 의외의 상황에서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제는 조급함을 버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 준코가 말했다. "살아보니까 보물 지도 자체가 사실은 보물이더라." 난 지금까지 그렇게나 꼭 맞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책을 읽는 초반에는 괜히 이 책을 골랐나? 라는 후회를 했었다. 뻔한 이야기 같았고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저자의 삶이 부러워서 질투가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 중반부부터는 눈물을 글썽이며 읽었다. 그녀가 보라보라 섬에서 생활하고 글을 써나가면서 생각이 깊어지고, 그 과정을 읽어가면서 책에 푹 빠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삶은 특이한 듯 하면서 평범하다. 보라보라섬에서 생활한다는 점에서 독특하지만, 결국 현대사회의 다양한 시스템에서 벗어남으로써 심심하기까지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저자들이 찾아낸 삶의 깨달음은 마치 바닷물에 마모되어 둥글게 빛나는 조약돌 같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 간만에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감동을 주는 에세이를 만나 기쁜 시간이었다.




(이 리뷰는 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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