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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좀 빼고 삽시다 - 아픔을 끌어안고 사는 우리들에게
명진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에는 단순히 "명진 지음"으로 표기되어서 저자가 스님이라는 것을 몰랐다. 내가 아는 스님이라곤 법륜스님과 혜민스님뿐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스님의 등장에 호기심이 들었다. 제목을 보고 '노력하지 말고 지금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라는 뜻인가?'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니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책이었다. 이 책은 명신스님의 자전적 에세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어린시절부터 어떻게 불가에 귀의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한 사람의 일생이 담겨있다. 제목과 달리 명진스님은 참으로 치열한 인생을 살아오셨다.
어린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새어머니와 갈등을 겪고, 성인이 되어 해군으로 입대한 동생의 죽음을 겪어야했고(심지어 해군에 입대할 것을 권한 것이 명진스님이었던지라 더욱 그의 충격이 컸을 것이다), 동생의 죽음 이후에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똑같이 인간으로 태어나 나는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하는지, 나라는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인지, 이러한 의문에 답을 찾고자 스님이 되기로 결심하였고, 그 후에도 단순히 절에 머물려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기다린 것이 아니라 직접 깨달음을 찾기위해 도를 깨우친 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공부를 했다. 그 뒤로 광주민주화 운동의 진상을 알게 된 뒤 불교의 사회참여에도 고민하고 변화를 이끌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였던 그의 삶을 보고 있자면 그저 흘러가는대로 평범하게 살아온 나의 삶을 돌아보며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듯 치열한 삶을 살면서 명진스님이 얻은 깨달음을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p.55 복을 구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복은 누군가에게 빌어서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과란 것이 얼마나 무서울 정도로 분명한지...복을 짓고 좋은 일 하는 것은 남이 하는게 아니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인과응보, 권선징악이 세상의 당연한 진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크면서 세상은 꼭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이 이루어지는 곳이 아닌 불공평한 곳이라는 염세적인 생각에 빠졌었다. 그런데 요즘은 다시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여전히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오히려 떵떵거리는 속상한 일이 벌어지는 세상이지만, 적어도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인과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타인을 흉보는 것은 결국 나에게 돌아오고, 내가 게으름을 피운 일도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적어도 '내 인생'에서는 '나 자신'에게는 인과응보와 권선정악이 이루어지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내 잘못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도록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p.171 옆으로 가야 되는데 왜 시선은 아래를 향합니까. 시선이 아래로 가니까 정신은 그쪽으로 가면서 몸의 밸런스가 깨져 넘어지는 겁니다. 경사가 높은가 낮은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어차피 넘어질 거며 아래를 내려다봐도 넘어질 테고 안내려다봐도 넘어질 테니 아래쪽은 아예 신경을 끄고 스님이 가려고 하는 쪽만 집중해서 바라보세요>
나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호기심도 많다. 그래서 어릴때부터 이것도 배웠다가 저것도 배웠다가, 이것도 해봤다가 저것도 해봤다가 많은 일을 경험해 보았다. 그런데 워낙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다 보니 어느 것 하나 진득하니 결말을 본 일이 없다. 어떤 일이든 알기는 알는데 진짜 마스터한 일은 없다는 것은 나의 콤플렉스 중 하나이다. 차라리 하나를 진득하게 붙잡고 있었더라면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능력을 경쟁력으로 갖출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읽고 내가 왜 한 가지를 오래 붙잡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길을 가면서 내가 가는 길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앞사람도 쳐다보고 내 위치가 어디쯤인지 가늠해보고 뒤도 다시 살펴보고, 옆 길은 무엇인지 바라보았다. 이것이 내가 한 가지를 끝까지 유지할 수 없었던 이유가 아닐까? 이제는 어떤 일이든 그저 묵묵히 내가 가는 길만 살펴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p.307 마음에서 힘을 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 모른다. 그 알 수 없는 물음 속으로 끝없이 몰입하다 보면 자연히 힘이 빠진다. '안다'라는 생각이 모두 비워지면 내가 정말 '모른다'는 생각만 오롯이 남게 된다.>
책에게 나에게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수행의 과정을 등산을 하는 것과 비유한 부분이었다. 명진스님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과정이 정상까지 도달하기 위해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산을 절반정도 오른 사람들이 목표인 정상이 아니라 뒤를 돌아보는 것에 있다고 한다. 뒤를 돌아보니 꽤나 높아진 산의 높이가 보이고, 저 멀리 풍경이 한 눈에 들여다 보인다. 그러면 사람들이 내가 깨달았구나 착각에 빠지게 된다. 책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위해 몇 년간 독서에 집중했던 나는 조금씩 자만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아직 산 중턱에 불과할 뿐 목표를 향해 더욱 정진해야 한다는 꾸짖음이었다.
스님이 말하는 '힘 주고 사는 사람들'이란 수행 도중 안다는 교만에 빠진 사람들을 일컫는 것이 아닐까? 말로는 간단하지만 그 무엇보다 여러운 자세, "스스로가 모른다고 인정하고 편견없이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바로 힘 빼고 사는 방법으로 스님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목과는 달리 너무 치열한 인생을 살았던 스님의 일생을 읽으며 처음에는 '내가 기대한 내용은 이게 아닌데'라는 불만을 가졌었다. 그러나 책의 결말이 다가올수록 교만한 스스로를 반성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이 리뷰는 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