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하다 - 이기적이어서 행복한 프랑스 소확행 인문학 관찰 에세이
조승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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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이라고 하면 내가 떠올리는 이미지를 한마다로 표현하자면 바로 '시니컬'이다. 실제로 프랑스 사람을 접해본 적은 없지만, tv를 통해 보는 프랑스,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접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모습에 시니컬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프랑스를 너무도 좋아하는 조승연 작가가 쓴 프랑스인에 대한 에세이이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직접 겪은 프랑스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여전히 친구로 지내고 있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에서 그가 생각하는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차이점이 담긴 짧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프랑스와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많은 점에서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바로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점"일 것이다. 

P.7 최소한 내가 만난 프랑스인은 절대로 다른 사람이 자기 인생을 '성공했다'느니 '실패했다'느니 하는 정의를 내리도록 허용하지 않는, '나는 나'라는 극도의 이기주의자였다. 그야말로 시크했다. 이에 비해 한국인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스스로 남과 비교함으로써 자신이 불행하다고 말한다.

내가 좋아하던 TV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비정상회담'에도 프랑스인 출연자가 나온다. 어떠한 주제에 대해 내세운 주장에 대해 다른 패널들이 비난하거나 놀릴 경우, 프랑스 패널은 '핏'하고 한 번 비웃음을 날린 후 'SO WHAT?!' 이라며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곤 했다. 타인의 의견이 어떠하던 내 생각은 이렇다! 라며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태도가 내 기억에 깊숙히 남아있다. 나를 비롯해 많은 한국인은 참 눈치를 많이 본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내 주의력이 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향해 있는 것이며, 내가 원하는 말이나 행동을 참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프랑스는 프랑스이고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지'라고 이야기한다면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타인이 함부로 나를 평가하지도 않았으면 좋겠고, 내 생각을 폄하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특히 직위와 나이가 높은 사람이 직위가 낮은 사람이나 어린사람의 의견을 묵살하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해왔는데, 프랑스 사람들의 이기적일 정도의 높은 자기애를 보면서 내가 나를 아끼지 않으면 누가 나를 아끼지? 나도 나일뿐이야! 라고 외치고 싶었다.

P.47 이들은 사랑이건 분노건 슬픔이건 자기의 감정을 억제하고 애써 웃어 보이는 것이 남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가 스마일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생각한다. 막내라는 회사에서의 위치가 상사의 말에 "NO"라고 이야기하지 못하고 기분이 상해도 그것을 티내지 못하고 항상 웃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나에게 무리한 심부름을 시킨 적이 있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졌던 모양인데, 내 얼굴을 보고 선생님이 대뜸 "너 표정이 싹 굳는다?! 그런식이면 사회생활 못하고 도퇴될 걸? 됐다, 너한테 안 시킬테니 가라!" 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뒤로 나는 기분 나쁜 표정을 짓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후 처음 취업한 회사의 팀장은 언제나 자신의 기분을 살피고 기분이 안 좋을 경우 알아서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부하직원의 역할 중 하나라고 이야기하곤 했으며, 눈치빠르게 그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는 나와 동료들을 쓸모없는 사람 취급하곤 했다. 
그래서 이 문장이 너무 와닿으면서 슬퍼졌다. 나는 어느샌가 내 감정을 억제하는게 어쩔 수 없는 성인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이 정도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도 세상에 있구나라는 깨달임이 내 가슴을 두드렸다.

P.49 프랑스인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우리와 다르게 바라본다. 이는 메멘토 모리 전통과 관계가 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살아 있을 때만 감정을 느낀다. 태어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고 죽은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는 제한된 시간이라면, 그것도 단 70~80년만 주어졌다면 슬픔, 절망, 우울같은 고통스러운 감정도 행복, 사랑 같은 감정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 된다.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면 다른 사람 앞에서 감출 이유가 없다. 이것이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잊지 않고 사는 프랑스인의 인생관이다.

흔히 '한 번 뿐인 인생, 원없이 살아야지' 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막상 그 말을 들어도 나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미래를 너무 생각하지 않고 현재를 모두 불태우는 무모한 가치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승연 작가가 풀어낸 말은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결국 같은 이야기이지만, 태어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죽은 후에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오직 살아있는 지금만 감정을 느낀다는 말이 그제야 한번 뿐인 인생이란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해주었다. 나는 지극히 보수적이고 안정지향적인 성격이다. 때문에 요즘 많이 회자되는 욜로인생과는 정반대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데 이렇게 참고 억제하며 사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 이유를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 것 같다. 나는 단순히 미래를 위한 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대비한다는 핑계로 현재의 '감정'을 모두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보수적이고 안정지향적인 내 성향은 타고난 것이라 크게 뒤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의 내 감정만큼은 충실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조금은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P.75 세상의 거의 모든 언어에는 색깔을 표현하는 단어는 많지만 맛을 직접 표현하는 단어는 부족하다...그래서 맛을 묘사하려면 비유법을 동원해야 한다. 이때 대부분 시적 묘사가 동원된다. 프랑스 아이들은 이 수업을 통해서 오이의 맛을 '마치 시골의 숲 공기를 이빨로 굴리는 것 같다'라든지, 토마토의 맛을 '태양과 대지의 맛을 믹서기에 갈아 넣은 것 같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 한마디로 설명되지 않는 냄새, 맛 등에 대한 감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 역시 요리를 통해서 배우는 프랑스 감성 교육의 장점일 것이다.

흔히 프랑스 하면 맛있는 요리가 떠오른다. 그런데 조승연 작가를 통해 프랑스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는 자연친화적인 건강한 재료를 사용하여 전통의 요리법을 살린 요리를 사랑하며, 어릴때부터 부모와 학교로부터 맛을 즐기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고 한다. 나는 평소에 '돈 벌어서 뭐에 쓰겠어! 적어도 먹는데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내가 맛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점을 굉장히 아쉬워하곤 했다. 유행하는 먹방 방송들을 보면 단순히 많이 먹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맛을 느끼고 표현하며 더욱 맛있는 조리법을 찾아내곤 한다. 나는 맛있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맛있는지 그 맛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한번은 유명 먹방 방송인처럼 맛표현을 해보려고 시도해보았는데 너무 어려웠다. 도대체 신선하다, 아삭하다, 쫄낏하다와 같이 1차원 적인 표현 이외에 비유적인 표현은 어떻게 생각하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인 '맛'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즐기는 법을 배우는 프랑스 교육방식이 너무도 부러웠다.

P.151 나는 그 아이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른의 테이블에 끼려면 어른의 말을 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교육방식이 굉장히 엄격하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다. 그것이 단순히 예의범절을 엄격하게 가르친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을 통해 프랑스 육아관을 접하고 많은 충격을 받았다. 작가 조승연이 한번은 프랑스 친구의 집에 초대받아, 마찬가지로 초대받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고 한다. 초대한 사람에게는 어린 자녀가 한 명 있었는데, 어른들 주의를 맴돌며 심심함을 참지 못한 아이가 한 행동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프랑스에서 부모는 어린 자녀가 어른들이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때 절대 떼쓰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때문에 심심함을 이기지 못한 아이는 어른들 사이에 뛰어든다. 마치 어른처럼 행동하면서! 
우리나라였다면 아이가 엄마에게 놀아다라며 메달리고 떼썻을 것이고, 부모는 그러한 아이의 행동에 양해를 구하며 놀아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아이가 의젓하게 어른들 사이에 앉아 정중히 자신을 소개하고 그들과 같은 주제로 대화하고자 노력한다. 조승연이 한국인임을 알고 초등학교 저학년의 아이가 아침신문에서 본 북한의 핵개발 문제에 대한 남한 사람의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그에 조승연은 아이가 그 질문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른들과 함께하기 위해 어른의 수준에 맞추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내가 만약 부모가 된다면, 어른의 관대함에 기대어 어리광부리는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적절할까 라는 고민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답을 이 책에서 찾은 것 같다.

P.163 어린아이에게도 이성 간의 사랑이나 이성을 사로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바람둥이 뱅상만이 아니었다. 그때그때 주어진 삶을 즐기는 것을 중요시하는 프랑스인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성에 관한 이야기도 거침없이 나눈다. 이성에게 호감을 얻는 방법은 대부분의 부모가 조기교육을 한다. 로렐린 역시 딸이 13살부터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자 딸과 함게 첫 하이힐과 미니스커트를 고르러 갔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을 볼때면 그들의 로맨틱함은 하나의 문화겠지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메멘토 모리 개념을 통해 프랑스인에게 사랑이 단순한 로맨스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죽음에 대해 어린시절부터 기탄없이 토론하며, 때문에 현재의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프랑스인들은 사랑하는 법을 어린시절부터 부모가 가르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는 어린아이들의 연애에 대해 '어린애들이 뭘 알겠어'라고 폄하하곤 한다. 그러나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것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풋풋한 사랑은 오직 어린시절의 사랑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흘러가버린 인생은 돌아오지 않고, 감정을 느끼는 것은 죽은 후가 아닌 바로 지금이다. 그렇기에 감정에 충실한 그들의 모습이 더욱 현명해 보였다.

책을 읽으며 프랑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이 더 강해진 부분도 있고,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한 나라에 대해 짧은 책 한 권으로 모두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프랑스에서 느낀 점들을 정리한 이 책은 우리에게 한번쯤 현재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기회를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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