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다시 여름, 한정판 리커버)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산문집으로, 저자는 박준 시인이라고 한다. 나는 그의 책을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어 저자에 대한 기본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책을 접하게 되었다. 본래 시인이기 때문일까? 분명히 산문집임에도 불구하고, 함축척인 의미가 담긴 것 같은 문장이나 예쁜 표현들이 등장한다. 때문에 마치 시를 읽는듯한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짧은 산문들을 모아놓은 것인데, 전체를 포괄하는 주제는 없는듯하지만, 유독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다.

p.29 그렇게 울다가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난 아침, 부은 눈과 여전히 아픈 마음과 입맛은 없지만 그래도 무엇을 좀 먹어야지 하면서 입안으로 욱여넣는 밥. 그 다뜻한 밥 한 숟가락을 그들에게 먹여주고 싶다.

나는 아직 주변에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거의 접하지 못하였다. 가족중에는 조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할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릴적에 돌아가셔서 장례식 때 기억이 흐릿하고, 작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그래도 지병없이 장수를 하셔서 아무래도 비통한 장례식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내가 가까운 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맞게 되었을 때 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p.47 어떤 일을 바라거나 무엇을 빌지 않아도 더없이 좋았던 시절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날들이 다 지나자 다시는 아무것도 빌지 않게 해달라고 스스로에게 빌어야 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문장은 처음에 한 번 읽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산문이라는 이건 '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는 평소 시를 전혀 읽지않기 때문에 함축적 표현을 쉽게 이해하지 못해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짧은 문장이니 이해가 될 때까지 여러번 읽어보았는데, 어느순간 팟 하고 떠오르는 의미가 있었다. 이제 나도 성인이 된지 10년이나 지났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과거를 떠올리는 경우도 많아졌다. 특히나 학창시절을 유독 떠올리게 되는데, 지금과는 달리 얽메이는 것 없이 자유롭게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던 어릴 때에 대한 아쉬움이 갈수록 커졌다. 이런 최근 심정을 떠올리면서 이 문장을 다시 읽었더니, 글을 곱씹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러번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기분이 드는 문장이었다. 이런 맛에 사람들이 시를 읽는구나 싶었다.

p.106 여자는 뇌졸중 후유증을 앓고 있는 듯 보였다. 몸의 절반은 봄 같았고 남은 절반을 겨울 같았다.

시인이 쓴 책이라 그럴까? 위 문장처럼 나는 상상도 못한 묘사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뇌졸중 후유중으로 반신이 마비된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세상에...! 이런게 감성인가? 나는 다분히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글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감성적이고 함축적인 문장을 싫어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렇게 직접 맞딱드리니 내 생각과는 달리 가슴이 촉촉히 적셔지는 느낌이 아주 좋았다.

p.111 누구인가를 만나고 사랑하다보면 우리는 그 사람을 알게된다. 하지만 그 사람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엇인가 모르는 구석이 생긴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의 세계 속에서 자라는 상대가 점점 울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신선함, 예측하지 못한 돌발상황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적응하기 위해 새롭게 에너지를 소비해야해 금방 지치기 때문이다. 특히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기는 것을 싫어하는데, "나의 세계 속에서 자라는 상대가 점점 울창해지고 있다"는 표현을 읽고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특히 마음의 문을 여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상대가 나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의 말처럼 내 안에 상대의 영역이 자연스레 점점 울창해지는 것으로 생각하면 좀 더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p.141 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날 아버지는 평소 잘 들어오지 않는 내 방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나에게 시험을 치르지 말라고 했다. 내일 시험을 보면 대학에 갈 것이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을 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을 공산이 큰데 얼핏 생각하면 그렇게 사는 것이 정상인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너무 불행하고 고된 일이라고 했다. 더욱이 가족이 생기면 그 불행이 개인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번져나가므로 여기에서 그 불행의 끈을 자르자고 했다...노동과 삶에 지친 날이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에서 설핏 가난을 느낄 때면 나는 그떄 아버지의 말을 생각한다.

요즘 비혼주의자와 딩크족 부부를 주변에서 손쉽게 만날 수 있다. 청년들이 결혼을 안하거나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뉴스기사도 연신 쏟아지고 있다. 저자의 아버지가 한 말은 너무 적나라해서 차마 겉으로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했던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싶다. 나 또한 결혼적령기의 나이가 되면서 결혼과 자녀에 대한 고민이 많다. 우리 집은 지극히 평범한 서민가정으로 부모님은 자식 뒷바라지만 하다가 노후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우리 남매가 부모님 노후 및 내 가정을 꾸리고도 충분한 경제적 여유가 되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라고 답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과연 나와 같은 짐을 같이 지고 갈 배우자를 찾을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러한 배우자를 만나도 부부의 여유로운 행복을 위해 자녀를 포기하는 것이 낫지 않을지 고민이 계속된다. 참 씁쓸하지만 절대 거짓말이라고 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마음 아팠다.


p.93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대상은 '그 누군가'가 아니라 사랑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 문장에 반대되는 의견이 마구 떠올랐다. 내가 하는 사랑이 가짜란 건가? 사랑은 당연히 이타적인것 아닌가? 내 자신이 아닌 타인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 하지? 그런데 곱씹어 생각해보니 저자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랑받는 연인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화장도 좀 더 꼼꼼하게 하고, 옷도 신경써서 입게되고, 긍정적이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노력하면서 사랑받는 연인으로 거듭나는 내 자신이 더욱 좋아진다. 저자는 사랑의 이타적인 모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되는게 "사랑"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시적인 느낌의 표현들로 인해 나에게는 쉽게 읽히지 않아 어려다고 생각했던 책이다. 그런데 읽을수록 감성적인 표현들과 내가 놓치고 있었던 삶의 모습들을 저자가 잘 잡아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친구들보다는 사회에 조금 지친 성인을 위한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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