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랭 드 보통은 워낙 유명한 작가이지만, 최근 몇년간 소설을 별로 즐기지 않다보니 작가의 책을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다. 다만, 사랑을 주제로 다룬다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떄문에 나에게 이 작가는 운명적 만남과 로맨스의 설레임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닐까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리고 그 선입견을 이 책을 읽고 아주 산산조각이 났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낭만적으로 만난 연인이 결혼을 하고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에서 말하는 낭만주의는 흔히 우리들이 알고 있는 로맨스의 해피엔딩이다.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내 영혼과 공명하는 소울메이트를 만나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누구나 꿈꾸는 모습이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낭만주의는 허황된 꿈에 불과하며, 우리는 철저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결혼이라는 제도를 준비해야 한다.

주인공 라비와 커스틴은 둘 다 어린시절 한 쪽 부모의 상실이라는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평범하고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어린시절 상처로 인한 마음의 병이 있다. 그런데 사랑에 빠진 이들은 그들이 보이는 병세를 연민의 감정으로 감싸안고 내가 완벽하게 상대를 이해하고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첫장은 이렇게 서로 비슷한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이 만나 어떠한 낭만주의적 연애관을 사랑을 키워가고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는지 보여준다.

두번째 장에서는 이들의 결혼생활이 생각한것처럼 완벽한 파트너와의 생활이 아님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나에게 그다지 큰 충격을 주지 못했다. 20-30년을 서로 다른 생활방식과 사고관을 가지고 살아온 타인이 만났기에 흔히 말하는 신혼기간 동안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떄문이다.

세번째 장부터가 특히 나의 흥미를 끌었는데, 바로 육아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이는 부부에게 큰 축복이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행복을 준다고 하니 아직 미혼의 나는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다. 그런데 행복과 함께하는 단점도 많다.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철저한 희생이 요구된다. 부모는 커리어와 꿈, 여유를 버리고 생활전반의 모든 것을 아이에게 투자하게 된다. 여기서 아이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부부는 서로에게 투자할 에너지가 전혀 없이 모든걸 소진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내가 최근에 가장 고민하고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지극히 나 자신을 사랑하는 현대의 청년이다. 아이를 적게 낳기 시작하면서 부모는 아이에게 많은 것을 충족해 주었고, 나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그렇기 떄문에 내 생활이 전혀 없어지는 아이 양육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특히 최근 아이를 낳은 지인으로부터 내 생활이 없다, 하루만 나 자신을 위해 온전한 시간을 쏟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는지라 더욱 이 부분이 고민된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희생이 필요할지 모르고, 그렇기에 아이를 갖는건은 큰 용기와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며 '엄마, 아빠'가 된 부부의 성욕에 대한 작가의 표현도 신기한 부분이었다.
엄마와 아빠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내가'가 아니라 '부모'라는 존재로 살아가며, 서로에게 성욕을 품고 표현하는데 일종의 거리낌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흔히 하는 가족끼리 스킨쉽하는거 아니야 라는 농담이 아무 의미없는 농담은 아니구나 싶었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라 충격적이었다.

네번째 장은 내가 가장 충격적이었던 "외도"가 주제였다. 남편인 라비는 어느새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다정함으로 아이를 키우리란 결심은 뜻과는 달리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정의 행복은 어느새 짐이 되었다. 부부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대화를 어느새 잃어버리고 서로가 더 많은 부담과 책임을 지고 있다며 싸우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젊은시절에 상상했던 커리어에 비해 형편없는 성과밖에 이루지 못했다며 의기소침해 있다. 이런 와중에 출장지에서 만난 젊은 여성에게 취하듯이 빠져들고 외도를 저지르고 만다.
가정을 부수고 구성원에게 너무 큰 상처를 남기는 것이 간통이기에 나는 이에 대해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작가의 표현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감을 북돋아주고, 현실의 어려움(경제적 문제 등)을 잊게 만드는 여성에게 빠져드는 라비의 심정이 공감가게 되어 너무 충격적이었다.
라비와 커스틴 가족의 모습은 평범한 우리네 가족의 일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가 외도에 빠질수 있다는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는 것이 첫번째 충격이었고, 당연하고 정상적이라 생각했던 가정의 모습이 사실은 상처를 숨기고 병든 모습이었다는 것이 두번째 충격이었다.
바로 이 외도의 장에서 저자가 거듭 주장하는 낭만주의에 대한 사람들이 착각과 사랑에 기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당연히 그 감정을 느끼면 자연스레 실행할 수 있는 것이 생각했는데, 우리는 그동안 너무도 낙관적인 착각 속에 빠져 살아왔다. 사랑의 열병이 주는 색안경을 쓰고 현실을 외면해왔던 것 같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절대 완벽하고 완전한 나의 영혼의 짝을 만나는 제도가 아님을 이해하고, 원만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깨닫고 '사랑하는 가족을 상대하는 방법'을 공부해야 한다. 또한 영원에 대한 생각도 버려야 한다. 우리네 삶은 노력하는 만큼 행복하거나 성공하는게 아니기에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상상해온 사랑에 대한 완벽함에 대해 기대를 포기할 수 있을때 비로소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속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사랑의 설렘과 낭만을 깨부수는 책이다. 그래서 읽고나서 조금 우울하기도 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이런 비관적인 이야기를 읽어야 하나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한번쯤 현실의 결혼생활에 대해 의식할 필요가 있기에 누구나 이 책을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