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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하루 시 같은 순간
박종민 지음 / SISO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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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시한 하루 시같은 순간, 박종민

 

이책은 하나의 새로운 장르로 인정받고 있는 '디카시' 대상 작품으로 일상의 순간을 폭착해서 그 사진과 위트있는 글이 잘 어울러진 작품이다.

디카시라는 걸 나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는데 찾아보니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영상(사진)과 문자를 함께 표현한 시를 말한다. 기존의 시의 범주를 확장하여 영상과 문자를 하나의 창작물로 결합한 멀티 언어 예술이다. | 외국어 표기 | ─詩(한자) | 디지털카메라(디카)와 시(詩)의 줄임말로,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사진)과 문자를 함께 표현한 시"라고 하더라

우선 사진이 우리네 삶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진들이라 편안하고

시의 내용도 유머러스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적고 있어 쉽게 읽힌다.

그 시선이 사물이 될 수도 있고 동물이 될 수도 있고 바람이나 자연풍경이 될 수도 있는데 그래서 더 재밌게 읽혔다.

20대인 조카에게 선물해도 좋고, 50대인 선배에게 선물에도 좋을 꺼 같은 느낌

연령에따라 받는 사람 지금 기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힐꺼 같은 선물 같은 책이다.

 

공감

 

광화문

 

그때 만난 찻집

그때 만난 그대

이제는 알았지만

그때는 몰랐던 시간

 

> 직장이 종로인 나는 광화문에 대한 추억도 참 많은데

지금은 여러가지 이유로 함께하지 못하는 지인, 후배,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거나 찻잔을 함께 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홍제천

저마다의 길

가야할 길 달라도

일상은 예술

 

> 예전에 어느 드라마에서 홍제천 길 작품 앞에서 우연이 다시 옛여인이

만나는 장면을 본적 있는데, 그냥 밋밋한 길이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참 아름다운 곳이

되었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저마다 가야 할 길은 다르지만 한번쯤 여유를 갖고

작품을 감상해도 너무 좋은 시간이 될 꺼 같다.

 

바위섬

머리가 복잡한데

고민거리를 자꾸 올려주면

내 고민은 어쩌란 말인가

 

언제 다시

설레는 가슴

후비고 지나가는

그리움 한 덩이

고래 등에 올라타고

큰 바다 건너갔던 기억은 꿈이었던가

 

찰나의 순간

화살이 시위를 벗어나려는 순간

포수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내가 그대를 담으려는 순간

세상은 잠시 숨을 멈췄다

 

> 우리는 사진을 찍을때 숨을 멈춘다

멋진 풍경이나 인물을 더 멋지게 담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생각났다.

 

도시의 기둥

이보게

설마 우릴 베어버리진 않겠지?

염려말게

우리까지 사라지면 다 무너지는 거야

머리가 있으면 그런 미친 짓을 하겠나

 

행진

다시 출발선

발걸음 경쾌하게

가슴 쫙 펴고

 

내 집도 여기

누가 객이고

누가 주인인가요

어차피 한생

 

가족

오늘은 학교 안가니?

오늘은 출근 안하세요?

바람에 흔들거리며

밀린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한낮에 가족이 다 모였다

 

천붕

골이 깊은데

어찌 슬픔이 작을까

비가 쏟아지던 날

참고 있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한 사내가 목놓아 울고 있었다.

 

> 이런 멋스러운 궁을 보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정말 오백년 동안 꿋굿하게 본척도 있는 척도 들은 척도 안했을꺼 같은

너무 멋진 모습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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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일 - 동물권 에세이
박소영 지음 / 무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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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 에세이 '살리는 일'은 단순히 캣맘의 삶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다양한 시선으로 평소 관심 있었던 채식, 장애인, 영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인용한 부분도 있어서 더욱 재밌게 읽혔다. 결국, 작가님이 하고 싶은 말은 '내가 해야한다'는 것', '누군가 하겠지','돌보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하겠지'같은 건 통하지 않으니, 무언가 해보고 싶어도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이 늦고 만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것 같다.

서평을 위해 도서를 읽다보니 정말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다는게 좋다. 사실 그동안 내가 피하고 싶던 불편했던 주제들은 안봤었는데, 이 책은 작가님의 시선을 통해 나도 평소에 느꼈던 부분이 많아서 공감할 수 있었고,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석수에게 이렇게나 다양한 표정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구조를 하고 나서야 알았다.

팍팍한 길 위에 삶에 적응하기 위해 무언가는

삼키고 무언가는 숨기고 살아갈 것이다.

지금도 곳곳에 그런 고양이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또 다른 석수에게 손 내밀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내게 중요한 것은 오직 내 시선이다.

타투를 하든 다른 무엇을 하든 선택의 중심에는

내가 있다. 타투를 결심하며 자유로움을 느낀 이유다

좋아하는 것을 몸에 그리고, 언제고 들려다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감의 원천이 된다.

생각해보면 여행은 그런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를 내맡기는 것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내 의지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에 책임을 지는 것

검증된 코스를 안전하게 밟는 일보다

내 배회가 가치 있는 건 여행이

본래 그런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거듭할 수록 무섭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낯선 생물체에 느끼는 혐오감임이 분명해졌다

그렇게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개나

고양이를, 누군가는 새를 '무서워하겠지'

생각하니 아득해졌다.

한번은 선배와 식사 자리에서 채식 이야기를

꺼냈다가 2시간가량 '인류가 육식해야 하는 이유'

에 대해 들어야 했다. 대화의 종착지는

"나 같은 사람을 설득하려면 네가 공부를

더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선배에게

채식을 권하지도, 내게 동의해달라 말하지도

않았지만 비채식인을 설득해야 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 너무나 공감갔던 이야기, 내가 지금 채식주의를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비건에

긍정적으로 생각함을 피력했다가 어떤이를 설득해본 적이 있었다. 서로 기분만

상하고 난 그사람의 육식을 이해했는데 왜 채식인을 이해받아야 하는지 몰라 답답했었다.

비건이어서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 항의하면

그것이 고스란히 비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으로 돌아오는 사회. 사람들이 나쁜 인식을

가지지 않도록 비건이 알아서 조심하고 몸

사려야하는 사회. 이 사회에서 비건은

명백한 약자였다.

영화에 힘입어 나는 또 한 번 다른 내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머물지 않고 흘러가보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그런 기준으로

타인을 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본다

과거가 어떠했든, 그의 현재를 볼 수 있기를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얻는 것을

아름다움이라 부를 수도 없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그 아름다움과 수천 수만 마리

토끼의 목숨을 바꿀 수는 없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아름다움이 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어진다

우리 다수는 비인간 동물의 비참한 삶을

애써 외면하거나 그 고통을 축소한다.

2시간 가량 공연을 보고 나면, 그 2시간 동안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겪어본 자의 태도가

된다. 지저분하던 머릿속은 말끔히 정리되고

불필요한 욕심도 사라진다. 음악이 그려내는

광대한 우주에서 나는 그저 하나의 점에

불과함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 공연을 볼때 마다 내가 느꼈던 느낌이라 공감이 되었다.

모든 욕심이 사라지고 우주의 아주 작은 점 같은 존재가 되는 느낌

신영복 선생의 말씀처럼

"입장의 동일함"이 전제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타인의 처지를 100%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해한다고

말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그들을 발화하게 하게 하고

그 목소리를 존중하는 일일 것이다.

동물이 등장하는 비유에 '좋은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싫은것

미운것,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동물에 빗대고

거기에 분노를 쏟아 넣으며 살아왔다.

나는 동물들을 좁은 우리에서 못지않게

낡은 비유와 날 선 언어에서도 해방시키고

싶다. 모두가 조금씩 노력한다면 생각보다

쉬울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도 고양이와 새,

곤충은 그 자리에 남는다는 것을.

머무르고 지키는 것은 늘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몫이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인간이 땅의 주인임을

자처한다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이글은 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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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로 산다는 것 - 워킹푸어의 시대, 우리가 짓고 싶은 세계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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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공'에 '올인' 하는 사회의 문제점들은 뭘까요?
가장 널리 알려지고 많이 토론되는 문제는 '열공' 밑에 깔려 있는
단선적 신분 상승 열망입니다. 단순히 '재미있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통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죽도록 '노오오력'하는 것이죠. 이렇게 낮고 높은 서열이 한국에서는 완벽하게단선적입니다.

​코로나 19로 학교들이 물을 닫아 전국의 아이들이 워킹맘들의 24시간 일감이 되었었죠. 그렇다고 해서 그 워킹맘들의 직장일은 누가 여주었나요?사실 양성 평등 정책 차원에서 당연히 워킹맘의 업무를 줄여주었어야 하지만 그렇게 해준 직장이 있었나요? 불문가지(不問可知) 일입니다.
국가와 자본에게 새로운 '병역 대상자와 노동자'들이 필요하다면 육아 노동을 둘러싼 '조건'부터 본질적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 너무나 공감이 되서 아팠던 이야기, 육아 노동에 둘러싼 조건이 본질적으로 달라져야하는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어서

노르웨이에서는 누군가와 같이 산 다는 것이 '부담'이라면 한국에서는 '사치'입니다. 신자유주의의 폭풍노도 속에서 '가정'은 점차 침몰하고 있습니다. 수만 년의 인류역사에서 최초로 '혼자'가 기본인 새로운 세대가 탄생했습니다. 그렇게 개개인의 인간적 접촉면이 줄어드는 만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려의 사회', '따뜻한 사회' 입니다.

서울대 총장이나 장관을 지낸 사람이 비싼 병원에서 비싼 치료 받다가 유명을 달리하게 되면 분명히 '전-', '-장'의 별세라고, 훨씬 더 자세하게 보도되죠. 무슨 무슨 '대'를 나오지 않은 노동자라면 백 번 태어났다 다시 죽어도 공론의 장에서 '별세' 할 수도 '서거'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저 '사망'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언어란 '급'들의 사회현실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 현장 근로자들 사망했을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애도 한다고 생각했는데 서거나 별세라는 언어가 '급'을 나눠서 살아 가고 있다는 건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해서 한번 더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저는 우선적으로 이름 없이 죽어가는 중생, 삶에서 평등을 누리지
못한 이들이 제발 죽어서라도 평등하게 애도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름 없이 살다가 이름 없이 죽어간 사람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쓰고 싶습니다.

노르웨이 같은 경우에는 20년 동안 살면서도 단 한번도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뚱뚱하다' 소리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부부나 애인 또는 절친한 관계가 아니라면 이런말을 하는 것은 '체형에 의한 차별'로 여겨지고 절대 용납되지 않습니다. 이건 법률이 아닌 암묵지, 즉 사회적 통념입니다.

부하에게 반말투로 명령을 내리고는 부하가 당연히(?) 머리를 약간
숙이고, "네,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할 것을 예상하는 상사를 보면,
'이러면 절대 안된 다는 것이 언제쯤 통념이 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언제까지 이게 당연한 일이 되야할까, 내가 상사가 된다면 달라질수 있을까

제가 원하는 세상은 영어가 오로지 본연의 기능, 예컨대 학자들의
국제 소통 등에만 쓰이고, 언어의 다양성의 존중받는 세상입니다.

제가 만난 20대들 중에는 국내에서 공무원이 되거나, 외국에서 정규직이 되는 삶을 꿈꾸는 이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국내 대기업 정규직은 '과로'와 '서열' 속에서 '복종'을 전제로 하는 만큼 덜 선호되는 것 같습니다.

-> 과로와 스트레스로 몸이 상하고, 서열과 복종속에서 살았던 마음이 상했던 지난 직장생활이 떠올라서 후배들이 안타깝고, 내 젊은 날이 안쓰러웠다.

우리나라 교육의 아주 큰 폐단은 세계사와 한국사를 따로 가르친 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대개 선택 과목인 세계사는 선택을 받은 경우도 많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고졸자나 대졸자는 '광무개혁'이나 '한일합병' 내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산업화, 민주화'를 어렴풋이는
알아도 세계사적 맥락에서의 의미는 전혀 모릅니다.
(중략)
결국 '대한민국 사람'은 학교 과정만 착실히 밟으면 오로지 대한민국의 통치자와 '지식인' 들이 서술해준 '대한민국만의 과거'를 아는
인간이 됩니다.

미국 시카고의 코로나19 사망자 가운데 70퍼센트가 흑인이라는 점에서 확인되듯,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기존의 종족적, 인종적 불평 등을 재확인시키고 더욱 키웠습니다. 미국에서 코로나19로 수입을 잃고 '식량의 위기', 즉 굶을 위험에 빠진쪽은 주로 20~30대 비백인 자영업자나 긱 경제(플랫폼 경제) 종사자였습니다. 평소 어려웠던 사람들이 이제는 아예 기아 직전으로 몰린 것입니다.

각국 내에 무서운 '사회적 격차'도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내부자,즉 중산층 이상의 구성원이나 공공 부문 및 대기업 종사자들은 그저 '불편함' 정도를 느끼는 반면, 외부자, 즉 중소기업 노동자나 불안 노동자 또는 자영업자 등은 그야말로 생존의 위기를 겪습니다.

-> 사회적 격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진 않았지만, 주변인은 거의 모두 자영업자라 그 손실과 차별에서 느끼는 아픔은 남의 일 같지 않다.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현재의 기후 참사를 분석한 그는 아주 재미있는 지적을 남겼습니다. "기후 위기는, 사실 부유한 나라들의 자본가들에게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바다의 수면이 오른다 해도, 살인적인 폭염이 잦아진다 해도 그들과 그 가족이야 어짜피 거기에 노출될 리가 없습니다."
(중략)
한마디로, 기후 참극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주요 특징인 엄청난 지역적 불평 등을 심화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그러다가 지구 전체가 언젠가 인간이 살 수 없는 황무지가 되겠지만, 대자본의 계획은 이렇게 멀리 미치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지구가 황무지가 된다해도 그들 자신들만큼은 인위적인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 하는 듯 합니다.

기후 참극은 미국 자본에 '문제'라기보다 차라리 '기회'로 보이고, 신냉전은 성장 동력으로 보입니다. 이는 어떤 '단절'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합법칙적인 '지속'에 가깝습니다. 단 우리 지구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과연 인간과 지구를 파괴하면서 작동되는 이런 시스템이 우리에게 맞는 것인지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봐야겠지만요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리뷰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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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일 - 재수 x 오은 그림 시집
재수.오은 지음 / 창비교육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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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장을 열자마자 감성이 느껴지는 예전 만화책 같은 느낌의 그림과 시와 글이 마음을 사로 잡는다. 시가 그림을 만나 이야기가 되고 여기서 온기가 느껴진다. 내 학창시절 그림으로 반갑고, 그 내용이 아프면서도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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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라니, 쉼표지 - 세상에서 나로 살기 위해 고민하는 너에게
박선경 지음 / 드림디자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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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을 빌려 ‘나이 많은 언니의 노파심, 해봐서 하는 소리‘를 정말 솔직하고 한편으론 따뜻하게 담아낸 내용이다. 잔소리 대신 다독임으로 호통 대신 이해로 그 마음이 전해지는 또 다른 의미의 힐링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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