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나는 발 딛는 세상을 넓혀갈수록 국경과 민족, 인종과 혈연 따위를 구분 짓고 가르는 게 다 쓸데없는 짓임을 절감하고 있다. 많은 지역에서 그건 도리어 분쟁의 씨앗이 되어왔다. 왜냐하면 그 구분 짓기는 제국주의자들이 식미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한 행정 편의용으로 혹은 분열 정책을 구사하며 이간질할 때나 쓰는 짓거리였고, 다수 인종들이 소수 인종을 차별할 때나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31쪽
그러나 몇 명이 죽었고, 무엇이 파괴되었고, 어디가 공격을 받았고 등의 나열식 '분쟁 르포'엔 정치도, 역사도, 그리고 분쟁도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무기 성능을 나열하고 침략군의 보도 자료를 받아 적는 기사에 전쟁의 만행을 까발릴 공간은 존재하기 어렵다. 공분 없이, 분석 없이, 가해 주체를 지목하지도 발음하지도 않은 채 전달되는 점령과 파괴의 현장은 그냥 스팩터클한 게임 장면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게 바로 주류 미디어의 이른바 분쟁 저널리즘이었고 사건 보도하듯 단순 깔끔하게 현장을 핥았던 게 바로 한국 언론의 분쟁 보도였다.-39쪽
"근본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극단주의가 문제다. 그들이 진정한 근본주의자들이 된다면 그런 폭력은 없을 것이며..."-143쪽
내가 만난 그들은 모두 깔끔했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이마에 8대2 가르마를 매끈하게 빗어 넘긴 예의바른 신사들. 혹은 머리가 조금 벗겨진 깔끔한 매무새에 상대를 휘어잡는 정중하고 유창한 말솜씨. 그것도 아니면 권위적인 풍채에 인도의 빛나는 문화를 가르치려 드는 중년. 직업은 변호사 아니면 의사. 하나 더 있다. 그들 다수는 "나는 아무개이고 브라만"이라며 '브라만 카스트'를 자신의 소개 항목에 넣었다. 내가 지금 묘사한 이들은 모두 힌두 극우주의 그룹의 지도부들이다.-159쪽
바로 어제, 신경질 부리는 인도군의 총질에 아들을 잃고 혹은 아내를 잃고 목 놓아 통곡하는 집을 찾아도 고통 나눌 방법을 몰라 쩔쩔매는 이 무기력한 손님에게 그들은 차와 비스킷을 대접했다. 이제 막 다독거려 옷장 깊이 쑤셔 넣은 아픔을 다시 들쑤시러 찾아온 이방인에게도 그들은 없는 동전까지 긁어모아 시골 구멍가게에서 몇 달은 묵었음직한 비스킷을 사와서는 차와 함께 내밀었다. 나는 가시방석 위에 앉아 푸석푸석하지만 돌덩이 같은 그 비스킷을 차로 삼키곤 했다.-194-195쪽
자유라고는 눈곱 정도밖에 없는 '절대왕정 통치' 사회 네팔과, 시민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한국 사회가 발포를 빼고 폭력적 진압 방식이 유사했다면 그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268쪽
인간이라는 게 아주 '작고 적은 것'만을 가지고도 얼마나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지를 내가 유목 생활 중 배웠다면, 나는 다시 인간이 얼마나 많이 가질 수 있고 또 가져야만 행복해 질 수 있는지를 '풍족한 사회' 한국에서 배웠다.-38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