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국밥 보름달문고 13
김진완 글, 김시영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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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국밥'을 읽고  

제사상에 국밥 한 그릇 달랑 올려놓고 제를 지내게 된 사연을 담은 글이다. 육이오 전쟁이 터져서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져 생사조차 모르던 시절. 그 시절 이야기다.


아버지는 나가서 집에 안 계실 때 피난을 가야할 형편에 놓였다. 개성에서 진주까지 가야 한다. 할머니는 두 아이들을 데리고 기차로 가기로 했고 임신을 한 엄마는 어린 동생 을 데리고 짐차에 타고 가기로 했다. 그것도 어렵게 그렇게 각기 다른 차를 얻어 타고 가서 외가집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12살 먹은 두수는 기차를 가까스로 얻어 탔는데 가다가 갑자기 총을 쏴대는 비행기를 만나 피한다고 한 것이 그만 기차를 놓치고 할머니도 놓치고 만 것이다. 때는 추운 겨울. 논바닥에서 얼어 죽게 되었는데 할 수 없이 살기 위해 무섭지만 꾹 참고 동생이랑 함께 송장이 있는 짚 무더기 속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총을 든 부상당한 군인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측은하게 여긴다. 죽어갈 때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무도 없어서 그래서 우리를 보냈나 보다, 고 생각할 정도로 주인공은 여리고 마음도 풍부하다. 배가 고파 피난민들 사이에서 일을 하며 밥을 얻어먹는다. 그 때 마침 혼자서 꿀꿀이죽을 끓여 사람들에게 파는 아줌마를 만난다.


그 아줌마는 특히 동생에게 잘해준다. 죽은 딸로 여길 정도다. 마침 동생은 심하게 아픈 일이 생겼다. 그 때 꿀꿀이죽 아줌마가 정성껏 돌봐준다. 두수는 아줌마가 장사를 할 수 있게 땔나무를 해다 주고, 짬이 날 때는 탈영병인 대찬 형을 따라 미군들 빨래들 해주었다. 그렇게 조금씩 돈을 모았다. 그런데 꿀굴이죽 아줌마는 동생을 데리고 아예 도망갈 계획을 세운다. 그걸 눈치 챈 두수는 동생이 싫다는 데도 억지로 데리고 외가를 찾아나선다. 어렵게 어렵게 동생과 외가에 갔더니 할머니와 엄마가 계셨다. 이미 해산을 해 막내까지 있었다. 그곳에서도 두수는 학교를 다니며 구두도 닦고 돈벌이를 하였다. 그 때까지도 아버지는 안 오셨다. 엄마는 먹고 살기 위해서 재봉틀을 하나 어렵게 장만을 했지만 금방 도둑맞는다. 그러고는 엄마는 기운 없는 날을 보낸다. 그러다가 아버지한테서 편지가 왔다. 두수를 보내라는 말이었다. 일도 하고 학교도 다니게 하겠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아버지는 잘 계시다고 늘 편지에 써 있어서 그런 줄 알고 두수는 기대를 가지고 서울로 갔다.


그런데 아버지는 삐쩍 말라 있었고 허름한 옷에 낡은 지게를 지고 일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구두쇠로 소문이 나 있었고 식당에 가서는 늘 두부 한모로 끼니를 때운다는 거였다. 편지에는 그렇게 안 써있었는데 막상 아버지를 보고 실망을 한 두수. 당신은 두부 한 모인데  아들에게는 국밥 한 그릇을 시켜놓고 먹으라고 하실 때, 두수는 눈물만 뚝뚝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대목에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엉엉~.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났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이 그러리라 생각되었다. 집에 돈을 부치기 위해 자신은 못 먹고 못 입고 편안하게 못자는 아버지. 요즘 나온 기러기 아빠들도 그럴 것이다. 시대를 떠나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지극한 마음일 것이다. 흑흑. 두수는 보다 못해 할머니가 꼭 필요할 때 쓰라고 주신 돈으로 아버지를 위한 국밥 한 그릇을 더 시킨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국밥을 다 얻어먹는다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국밥이라고 하셨다. 목이 메는 장면이다. 두수는 금방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갈 것을 제안하며 즐거워한다. 전쟁에 나가 소식이 끊긴 사람이 하나둘이 아닌 시대였다. 나갔던 사람이 돌아오면 무엇보다 가족들이 좋아했다. 식구 한사람이라도 없으면 누구나 잠을 못 자던 시대다. 어디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이 한스럽게 살던 시대였다. 그 이야기들을 실감나게 묘사를 한 글이다. 지나면 잊혀질 이야기가 아니다.


두수는 참으로 기특한 아이다. 마음도 착하고 지혜롭고 감수성도 예민하고 하지만 주장도 강하다. 형편이 딱한 사람을 보면 가여워할 줄도 알고 동정할 줄도 안다. 엄마가 재봉틀을 맞고 그토록 애타게 찾아다니던 그 도둑을 비로소 만났을 때 얻어맞고도 끝까지 내놓으라고 했던 점은 아이가 참 뚝심 있어 보이고 끈기 있어 보였다. 발로 차이는데도 끝까지 버틴 점은 대단하다. 오이가 있다. 그리고 거기서 물러나지 않고 계속 끈질기게  찾아다녔다. 권총을 갖고 최후의 순간을 생각하며.  하지만 막상 그 도둑을 만났을 때 앞으로 나서지 못한 건 한 가정의 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두수는 얼마나 아버지를 기다렸나. 도둑은 없어지고 화목한 한 가정의 사랑스런 아버지만 보였기 때문에 도무지 나서서 재봉틀을 달라고 할 수 없었다. 그 도둑도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은 생각만 들었다.


두수는 또 마음씨가 비단결이다. 밥집을 하는 학교 친구 순임이네 집에 가서 물을 날러주기도 한다. 혼자 구두닦이도 나선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다. 꿀꿀이죽 아줌마네서 동생을 데리고 탈출을 할 때는 정말 가슴 조마조마 했다. 정말 그 아줌마한테 동생을 빼앗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물을 많이 먹여 소변을 보게 한 아이디어 한번 또 좋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갔던 두수는 참 상 줄 만하다. 탈영병 대찬형은 동네 처녀를 겁탈한 미군을 때려눕히고 고자로 만들어놓았다. 그 형이 대차게 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마도 두수가 자기 뜻을 굽히지 않고 힘차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대찬형의 도움도 있다. 아무튼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시절. 목숨이라도 내놓고 다부지게 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날들이었다. 두수는 서울에서 아버지와 함께 새 생활을 시작할 것이다. 점원으로 있으면서 공부도 하고 세상도 배우고 그리고 먼 훗날 훌륭한 사람이 되어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상에 국밥 한 그릇 따뜻하게 지어 올리는 것이다. 마음대로 드시지 못했던 눈물의 그 국밥을. 세상에서 가장 달고 맛있다고 하시던 그 국밥을, 한 많은 그 국밥을 아버지께 드렸던 것이다. 


벌써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전쟁의 참혹함, 전쟁의 무서움, 전쟁이 남긴 고아, 이산가족. 폐허....이런 것들을 잊지는 말아야 겠다. 책이 아니면 무엇을 통해 알 수 있을까. 벌써 세대가 바뀌고 전쟁의 아픔을 말해줄 사람들도 물러나 있다. 이 책을 읽는 나도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다. 나의 부모님 세대가 어린시절을 전쟁 속에서 겪어내셨다. 알리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가족의 힘이란 사회를 이끌어가는 힘도 된다. 그런 가족들이 전쟁 때문에 흩어지고 생사조차 모르고 산다면 그 아픔이 어떠랴. 의지조차 꺾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아픔 속에서도 당차게 일어선 것이 또 그 세대였으리라. 그랬기 때문에 지금 우리세대는 편하다. 못 먹고 못 입고 못자면서 일하고 또 일해서 일군 땀방울들...그 결실이 오늘날인 것이다. 감사해야 한다. 부모님세대들에게.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이 정말 아팠고 그래서 더욱 두수가 잘 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응원을 하며 읽었다. 감동의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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