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는 히르벨이었다 일공일삼 13
페터 헤르틀링 지음, 고영아 옮김, 에바 무겐트할러 그림 / 비룡소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독일의 작가 페터 헤르틀링이 쓴 “그 아이는 히르벨이었다”를 읽었다. 이책은 초등학생용으로 나왔다.

히르벨이라는 아이는 엄마에게 버림받고 시에서 운영하는 아동보호소에 있는 아홉 살 난 남자 아이다. 히르벨이 태어날 때 의사가 집게로 머리를 잘못 건드려서 두통이 심하고 머리에 이상이 생겼다는 진단이 나오자 엄마는 키우기를 꺼려하였다. 그래서  위탁가정에 맡겨졌는데 히르벨이 이웃사람들을 너무 괴롭혀서  아동보호소로 보내졌다.

 

히르벨이 아홉 살인데 여섯 살 정도의 깡마른 몸에 헝클어진 금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싸움을 하면 다른 아이들에게 지지 않는다.  태어났을  때부터 두통에 시달리고 가끔 발작을 일으키며 말을 더듬고 표현을 잘 못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지 않고 늘 혼자 보내는 아이다. 남이 잘 시간에 장롱 속에 들어가서 노래를 부른다거나 시끄럽게 해서 남을 괴롭힌다. 그리고 장난을 너무 심하게 친다. 그래서 다들 히르벨을 싫어하고 아예 무관심하거나 내버려 둔다.  히르벨이 잘 하는 것은 노래를 부른다는 것인데 부르는 동안에는 말을 더듬지 않는다. 그리고 목소리가 무척 아름답기 때문에 다들 감탄을 할 정도다. 

 

히르벨이 못하는 건 많다. 그러나 알고 보면 히르벨은 바보도 아니고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다. 히르벨은 아동보호소에서 살아가는 법을 잘 알고 있다. 가끔씩 의사선생님이나 심리학자들이 검사를 하러 그림을 갖고 오면 히르벨은 이미 그들이 좋아할 만한 답을 외워 보여 준다.  그리고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을 피할 줄도 알고 골려주기도 한다. 관리하는 아저씨 쇼펜슈테혀씨가 아이들에게 무섭게 대하고 은근히 히르벨을 싫어하자 히르벨은 닭에게 최면을 걸기도 하고 통로에 끈을 묶어놓기도 하며 두들겨 맞았을 때도 연극으로 오히려 아저씨를 골탕 먹인다. 그리고 여자애들이  보호소를 빠져나가는 일이 생겼을 때 에디트라는 여자애의 거짓말 때문에 히르벨이 누명을 쓰게 되었다. 그 때 히르벨은 누명을 벗고 에디트가 한 짓이라는 걸 밝히기 위해 다른 여자아이들과 친해지고 그 아이들로부터 정보를 얻어 선생님께 알려준 적도 있다. 히르벨은 매맞고 혼나는 걸 싫어한다. 그러나 보니 꾀를 쓰기도 하고 머리를 써서 그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배운다.

 

히르벨은 늘 두통이 심하기 때문에 한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거나 집중하기가 어렵다. 배우기가 힘든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머리 나쁜 척도 한다. 히르벨은 머리가 항상 아프기 때문에 금방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보호소에서 도망을 친다. 죽기전에 해도 보고 사자도 보고 달도 보고 싶었다. 아마 히르벨은 보호소에 갇혀 있는한 그런 것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나보다. 결국 히르벨은 주민의 신고로 경찰에 잡혔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다.

 

보호소에 있을 때 원장선생님이나 마이어 선생님은 히르벨을 무척 귀여워해 주시고 이뻐해 주셨다. 무슨 신고가 들어오면 먼저 히르벨의 의견을 들어보고 의사를 존중해 준다. 히르벨은 이유가 있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어른의 말은 듣고 미워하거나 때리거나 욕하지 않는다. 잘못을 해도 부드럽게 감싸 안아준다. 또 히르벨이 갖고 있는 재능을 인정해 주고 키워주기 위해 애도 쓴다. 선생님들은 자상함과 부드러운 말씨 참을성 등이 아이들을 위한 필요한 조건인 것 같다. 히르벨에겐 친구가 없었다. 게오르그가 전부였다. 히르벨이 무섭게 행동하거나 거칠게 하니까 다른 애들은 가까이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히르벨은 참 불쌍하다. 자기를 버린 엄마를 그래도 가장 사랑한다고 하는 걸 보면. 그 애 엄마는 뚱뚱한 몸매에 진한 화장을 하고  요란한 의상으로 가끔 먹을 걸 사온다.

 

부모가 있는데도 갈 곳이 없어 버려진 아이, 도망치고 방황하고 쫓겨다니고 ...그런 아이들의 정신 건강이 올바르기를 바란다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자기세계에 갇혀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모습을 보면 가엾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어리광을 피우며 티 없이 자랄 나이에 자기방어를 하려고 잔머리 굴려가면서 상황을 이겨내려는 아이들의 모습이 가슴 아프다. 아마도 그런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자유롭고 싶었을 것이다. 금방 죽을 것 같은 자신의 모습에서 절박한 어떤 심정이 되었으리라. 양떼들의 뛰노는 모습과 지는 붉은 해의 모습, 밤에 떠 있는 달처럼 살고 싶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현실에서는 이루기 어려운 어떤 삶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고흐가 자살하려고 했던 것처럼...

날개에서 날아보자고 한 것처럼...

내부에서 끌어 오르는 무언가를 주체하지 못하고 억제하지 못해서 돌발행동을 일으키는 것 같다.

어린이는 마땅히 사랑으로 돌봐야 한다. 어디가 좀 모자라다고 해서 버림을 받기에는 너무 나이가 어리다. 그들이 받을 상처와 고통을 헤아려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