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역사'를 읽고
최금진 시인의 첫시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인터넷에서 보고 얼른 알라딘에서 시집을 샀다. 어제 왔다. 그리고 반가운 마음으로 시를 읽기 시작했다. 으레 그렇듯이 내 안에 시심이 충만해지길 원하면서 그리하여 나도 시 한편을 건지기를 바라면서. 인터넷 블로그를 다니다가 건진 김 시인의 시를 보면 사회의 아픔이 진하게 묻어있는 시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시인의 시를 쓰는 색깔임에 틀림이 없었다. 막상 시집 속의 시들을 하나 하나 읽어가기 시작하면서 와, 이건 정말 시인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구나,를 느꼈다.
처음 읽어가는 동안 무슨 시에서 그토록 무섬증이 이는지 섬뜩함에 기분이 으스스해지고, 밤길에(을) 홀로 걷는 기분이랄까, 그런 기분에 묘한 정적까지 감도는 이상한 시들이었다. 공기를 차갑고 싸늘하게 만들었다. 괜히 한번 주위를 돌아보게 만드는 기묘한 느낌이 드는 시들이었다. 그래서 몇편 읽다가 그만 읽을까도 생각했다. 오싹한 마음에. 하지만 끝까지 읽어봐야 하지 않나 싶어서 놓지 않고 읽어내려갔다. 시인은 무슨 분노나 억눌림 화남 그런것들을 피맺히는 아픔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무섭도록. 그래서 마음이 답답해지고 우울해지고 어두워졌다. 그런데 그것들이 환상이나 꿈이 아니라는 데 있다. 우리가 처한 사회를 말해주는 것들이었다. 이 현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 내가 사는 세상이 그렇다는 말이다.
시인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그렸다.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 그래서 더 가슴이 먹먹해진다. 처절한 아픔 미칠 것만 같은 상황 속에서 나오는 웃음은 잔인하리만치 고통스런 행위이다. 그래서 한층 분위기는 기괴해지기도 한다. 참을 수 없어 터뜨릴 수밖에 없는 것들이 시가 된 것 같다. 시인은 처절한 상황을 만날 때마다 그것이 시로 폭발을 하였던 것 같다. 악쓰게 뭔가가? 받쳐서 나오는 시. 직설적이기도 하고 원색적이기도 한 말들. 삶의 풍경들이 잘 그려져 있고 그것이 더 리얼리티하다. 잘 버무려 세운, 말의 탑을 쌓은 것 같은 시들.
아름답고 서정적이고 감상적이고 우아하고 마음을 다스려주는 시들이 아직까지 내가 읽어온 시들이라면 그래서 마음을 다독여주고 부드럽게 순화를 시켜주었다면 이 시들은 그렇지만은 않다. 차분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벌떡벌떡 숨을 몰아쉬게 만든다. 세상에 대하여 분노를 하게 만든다. 이 세상을 다시 휘저어 보게 만든다. 지금 이 세계가 그 정도였다고 인정하게 된다. 어둡고 냄새나고 폭력적이고 가해하는 이 사회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래서 이 시들은 결코 얌전하지 않다. 들끓는 심장 소리가 들린다. 거친 야성의 소리가 느껴진다. 그야말로 불편하게 한다.
시인이 이런 시를 쓰는동안 본인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쓰면서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속에 그런 많은 어두운 생각들로 가득한 마음은 어떤 마음일지 짐작이 다 가지 않지만 고통과 방황, 쓰라림으로 일그러진 세상을 노래했구나를 생각했다. 읽는 사람도 힘든데 쓰는 사람이야 오죽하랴. 시인은 민감하다. 세상에 대해 고독하리만큼 예민하고 처절하도록 민감하다. 그래서 더 아프다. 이런 예민한 마음으로 세상을 날카롭게 바라보고 요리를 하듯 시를 써내는 것은 또한 시인의 몫이니, 그러한 밝은 총기를 계속 유지하시기를 바란다. 세상을 향한 목청으로 가득한 시는 이 사회에 약이 될터이다. 시인만의 빛깔로 빚어낸, 시인의 세상읽기는 참 독특하고도 참신하였다.
*2007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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