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기 소년 창비아동문고 232
유은실 지음, 정성화 그림 / 창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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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기 소년’을 읽고

이 책은 유은실 작가의 단편동화집이다. 한 작품 한 작품이 참 색다른 빛깔이다. 모두 9작품이 만만치 않은 비중으로 들어있다.

 

첫째 소재 면에서 볼 때 아, 이렇게도 쓸 수가 있구나 싶은 글들이 많았다. 백석의 시를 소재로 삼은 ‘내 이름은 백석’,만국기의 이름을 줄줄이 외우는 소년을 내세운 ‘만국기 소년’, 천원을 가지고 아껴 쓰는 ‘맘대로 천원’, 두 할머니들의 부침개 사건을 다룬 ‘선아의 쟁반’, 특이하게 이모부의 전화수다 문제를 소재로 삼은 ‘어떤 이모부’, 손님맞이를 위해 청소하는 이야기를 다룬 ‘손님’, 짝이었던 친구를 소재로 다룬 ‘보리방구 조수택’, 상장 받던 날에 대한 글인 ‘상장’,  엄마가 없는 날 동생과 치매인 할머니를 돌보던 일을 쓴 ‘엄마 없는 날’ 등이 그것이다. 모두 생활 속에서 얻어진 글감들 같다. 그래서 이야기가 친밀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무슨 일일까 호기심이 생기고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둘째 구성 면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과정이 다 다르다. 대체적으로 나로 시작되는 작품이 거의 다다. 선아의 쟁반만 빼고 모두 나로 시작되는 작품이다. 그래서 읽기가 편하다. 대부분 자연스럽게 시간적인 순차에 의해 전개된 글들이지만, ‘만국기 소년’은 수업 시간에 소년이 만국기를 외우고 있는 동안 나는 그 소년의 기억( 어떻게 알게 되었나)을 떠올리는 일을 한다. 그 과정이 감칠 맛나게 읽혀진다. 전혀 느슨한 감이 없이 읽히는 힘이 있다. 잘 만들어진 플롯 탓이리라. 쉴 틈이 없다.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사건 하나를 가지고 탄탄하게 끈질기도록 엮어나간다. ‘손님’이나 ‘상장’이 그렇다. 한 가지 일을 섬세하게 역어나가는 힘이 바로 이 작가의 매력인 것 같다.  

 

셋째 작품 속에서 웃음이 묻어나온다. 백석의 시를 가지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하는 장면들이 재밌다. 슬프도록 국기를 외우는 소년의 모습이 그렇다. 안 쓰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쓰게 된 천원으로 산 떡볶이가 맵고 맛없지만 억지로 먹어야 했던 모습, 두 할머니의 부질없는 경쟁심 때문에 부침개가 담긴 쟁반을 들고 오르락내리락 해야 했던 선아의 모습, 습관처럼 전화해서 수다 아닌 쓸 데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이모부의 모습, 그리고 그 이모부를 피하는 가족들의 모습, 손님이 온다기에 청소를 하면서 신나는 상상을 하는 아이의 모습, 조수택의 모습을 묘사한 장면들, 상장이 끝내 흙탕물에 못쓰게 된 일 등. 읽다가 보면 웃지 않을 수 없는 대목들이 나온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참 안된 슬픈 웃음들이다. 어른들 사이에서 배어나오는 웃음, 즉, 현실은 절대로 즐겁지 않은데 그것이 웃음처럼 흘러나오는 것이다. 우스꽝스럽게. 아마 그것도 작가의 특별한 기술인 것 같다.    


넷째 삶(생활)의 어떤 진한 애정이 느껴진다.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은 그렇게 행복해보이지는 않는다. 잘사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기 보다는 어둡고 슬픈 아이들의 모습을 더 많이 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그대로 그리지는 않았다. 작가는 그것을 섬세한 관찰로 심리묘사를 일궈냈다. 아이들의 자잘한 곳까지 세세히 들여다본 것 같은 작가의 눈은 그것을 그대로 작품 곳곳에 배치하여 동심을 표현해 냈다. 치밀하게 갈등을 그려냈고 그것을 묘사해냈다. 그러고 보니 생활 속 진심이 잘 드러난 심리묘사 위주의 단편들인 것 같다. 


다섯째 찡한 감동이 있다. 재미있지만  읽다가 보면 애잔하게 다가오는 그 무엇이 있다. 안타까워서 오는 감동도 있다. 특히, 만국기 소년에 나오는 아버지가 그랬고 그 아버지가 얻어다 준 옷을 아무것도 모른 채 입고 학교에 온 아이가 안쓰럽다. 책이 없어서 그 만국기 책만 달달 읽었을 아이를 생각하니 또 안쓰러워진다. 거기다가 선생님의 질문이란 황당할 수밖에. 조수택도 그런 아이다. 손등이 터지고 누런 내복이 보이는 그 아이, 측은한 아이. 그 아이가 건네준 신문을 기어코 난로 속에 넣을 수밖에 없었던 착한 아이였던? 여자애의 마음이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누구를 이해하고 누구를 위로해야 할까. 천 원 한 장도 마음 놓고 못쓰는 아이. 어린 동생이랑 애기 같은 할머니를 돌봐야 하는 아이도 가슴을 치는 뭔가가 있다.

이렇게 이야기들은 재미있지만 한 편으론 생각하게 만든다. 읽는 내내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나의 경험들이 살아나서 공감을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작가만의 빛깔이 드러나는 동화집이다.


< 2007, s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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