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스톨
와타야 리사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 ‘인스톨’을 읽고 - 오타야 리사 글, 김난주 옮김, 160쪽, 8500원, 북폴리오. 2006.
청소년의 심리가 잘 드러난 성장소설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17살 나이에 직접 쓴 글이란다.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도 17살이다. 방황과 혼돈의 시기에 놓인 나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고교졸업을 앞둔 고3으로 나온다. 곧 대학에 진학도 해야 하는 나이다. 그런데 고3인 도모코는 한 달 여간 무단 결석을 한다. 그리고 자기 방의 물건을 전부 쓰레기장에 내다버린다. 자기 존재를 찾기 위함이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란 물음 앞에 죽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렇지만 죽지는 않고 그저 쓰레기장 앞에서 누워보는 것이다. 그곳에서 초등생 가즈요시가 나타난다.
가즈요시는 무의미했던 도모코에게 새로운 도전을 부여해준다. 사실 그 가즈요시는 학교도 다니고 오후에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버는 일을 한다. 채팅이라는 것이다. 성상업에 종사하는 어떤 사람의 부탁을 받고 그 사람인척 문자로 채팅만 해주면 되는 것이다. 이제 고작 12살인 가즈요시가 어른 흉내를 내며 문자를 날린다. 그걸 본 도모코는 그건 아니다라고 머리로는 생각을 하면서도 가즈요시가 함께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하겠다고 말을 한다. 그래서 둘은 성산업채팅에 뛰어들어 근 한달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낸다.
아이가 학교를 가면 몰래 그 남자애 집으로 들어가서 오전 내내 채팅을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소년이 돌아오면 그제서야 넘기고 집으로 온다. 왜 어른들이 그 사실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다들 바쁜 부모들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무관심한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어느새 눈치를 챘는데도 그냥 놔두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만 너무 대놓고 따지지 않고 몰아세우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엄마들 같으면 그런 상황에서 어땠을까. 아마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린 아이가 어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돈을 벌겠다고 하고 있으니 (직접이든 문자로든 말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대성통곡을 하다못해 관리를 못한 부모로서의 죄를 탓하고 몇날며칠을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살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큰 충격일 수 있는 일인데 일본 엄마들은 감정을 극히 절제를 하는 것 같다. 아이가 물건을 전부 없앴는데도 텅 빈 방이 좋아서 빈 방에 누워 있다고 하거나(눈물은 흘리지만), 또 아들이 큰 누나와 함께 인터넷에 빠져 지내는 데도 차라리 함께 있는 것을 보니까 마음이 놓인다고 하는 새엄마나 마찬가지로 담담하다. 큰일이라도 난 듯이 떠벌리지 않고 혼내지도 않는다.
한달이 되고 소년은 큰 돈을 손에 쥔다. 그러면서 그 채팅도 종료가 되는데 그제서야 17살도 무언가 마음에 느끼는 것이 온다. 성산업에 뛰어들었던 애기엄마도 이제는 애기만 잘 돌보겠다고 한다. 다시 시작을 해도 늦지 않은 나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성이던 17살은 이제 현실로 돌아가 다시 살아볼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것이 17살 자리인 것이다. 잠깐 동안의 반란이었지만 그 것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되었다.
교복과 집의 굴레. 삶은 평범함 속에 존재 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그 무엇인가를 찾아나서 보았지만 사실은 누구나 평범함 속에 살고 있다는 진리를 만나게 된다. 너무 무겁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만은 않은 책이었다. 다 버렸다고 생각을 하고 스스로 절망에 이른 순간, 소년의 말은 환한 빛과도 같았다. 인스톨. 다시 인스톨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소년은 17살을 인스톨한 셈이다.
“인스톨이 뭔데?”
“프로그램 디스켓을 사용해서 컴퓨터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것예요. 그렇지만 나는 그냥 인스톨을 한 게 아니고 인스톨을 새로 했어요. 그러니까 리세팅을 한 거죠.” ( p.55쪽 )
문장이 대체로 짧다. 복잡하지 않다. 그래서 쉽게 읽힌다. 십대가 쓴 소설이라고 생각을 하니 더욱 그들의 고민이나 갈등이 가깝게 느껴진다. 답답한 일상으로의 일탈(탈출)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밖으로 뛰쳐나가 무슨 대범한 일을 저지르겠다는 것은 꼭 아니었다. 다만 벗어나고 싶었고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행히 일상으로 돌아온다. 현실과 이상의 팽팽한 대결 속에 이루어지는 마음의 방황이야말로 가장 큰 짐이고 무거운 숙제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더 이상 요상한 낭만을 쫓지는 않을 것 같다. 그만한데 있다가 돌아올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식상한 표현을 써서 안됐지만 분명히 그런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때로는 어른들도 참고 기다릴 줄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참견하고 끼어들어서 일을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이제는 혼자가 아니고 함께 가는 길을 택한 17살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 2007, s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