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달려라, 아비’를 읽고  - 창비, 김애란 소설집, 2005, 9500,


그냥 누군가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아비라는 말이 좀 구식인 것 같아서 사 읽기를 꺼려했는데 며칠 전 구입을 했고 어제 읽게 되었다. 사실 그동안 동화류의 책을 읽느라 소설류의 책은 느긋하게 많이 못 읽었다. 오랜만에 그것도 한국작가의 책을 읽으니까 느낌이 또 새롭다.


장편도 아니고 이 책은 단편집이었다. 아홉 작품이 실린. 무심코 읽었는데 읽고 보니 문예지에 이미 발표된 것들을 모은 책이었다. 2003년도부터 2005년도 사이에 발표된 것들이었다. 작가는 여자였다. 그냥 사진만 보고 읽기 시작하였다. 읽으면서 아, 문장력이 꽤 좋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호, 이것 봐라! 이런 작은 느낌들이 연이어 터졌다. 감탄사들이.


이야기가 재밌고 가끔은 보통 쓰기 어려운 낱말을 서슴없이 쓰는 걸 보고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솔직 과감하게 남이 잘 못 쓰는 단어를 쓰는 용기를 보면 감출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읽으면서 작가 얼굴을 들여다보곤 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몇 년생인 줄을 발견했다. 1980년생. 앙? 80년생? 내가 잘못 보았나? 난 벌써 나와 몇 살 차이인가를 손가락으로 따져보고 있다. 꽤 많다. 얼굴로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80년생일 줄은 몰랐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면 좋은 작품을 쓰는 데는 나이가 별 상관이 없는 것도 같다. 젊으니까 더 치열해질 수 있고 자기 안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인 여유가 있으며 세상도 제약 없이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무튼 작품은 작품으로서만 보고 싶다.


이 책의 장점은 첫째 시적인 문장 즉, 독특하고 기발한 문체에 있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게다가 유머까지 있어서 웃긴 부분이 많다. 소설은 좀 그래야 하지 않나 싶다. 그것은 또 낭만적인 설레임까지 ( 덤으로 ) 때때로 선사해준다. 문장 속에는 풋풋한 무엇이 있다. 그 속에서 향기가 났다.


둘째로 감동이 있다. 현대 사회의 단면들 이를테면 단절 소외됨 가난 버려짐 고독 쓸쓸함 그런 것들을 보여주면서도 슬프지 않고 절망적이지 않은 냄새를 풍긴다. 인간의 아픔을 얘기하면서도 그것이 직접적이지 않고 우회적이다. 한 차원 승화된 상태라고나 할까. 이미 초월한 상태 그것이다. 여기서 ‘나’는 그런 존재이다. 가장 아픈 사람이면서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셋째, 또 이 책에는 아버지가 유독 많이 등장한다. 산달이 가까운 아내를 버려두고 나가버린 아버지, 떠돌다가 갑자기 나타났다 홀연히 또 사라지는 아버지, 공원에서 자식을 버리고 간 아버지, 엄마를 잃은 아버지 등. 여러모로 이 시대의 우울한 아버지들의 자화상이 나온다. 아버지란 존재는 존재하면서 부재인 동시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서 가장 흔한 이름이면서 가장 또 살기 힘든 이름은 아버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에 나오는 아버지는 문학적이라 멋있었다.


넷째.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을 콩닥일 때(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 많았다. 무엇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읽다가 보면 설레고 기대가 되고 자꾸만 감성을 자극받게 된다. 아마도 그것은 문체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작가의 커다란 장점일 것이다. ( 사실 나는 이런 류의 문체를 좋아한다. )


다섯째 이 책에는 사회에 첫발을 들여놓은 초년생의 희망 같은 밝음이 있다. 사회(시대)라는 것이 굉장히 멀고도 험한 길이지만 이 글을 읽다보면 전반적으로 흐르는 핑크빛?이 연두빛?이 건조하지 않고 도전하려는 상큼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앗, 느낌이란 비슷한 걸까. 표지 그림을 보고 놀랐다.) 아마도 그것은 이를테면 신입사원의 굽힐 줄 모르는 힘과도 같은 맥락의 것이리라. 


여섯째 특히 ‘나는 편의점에 간다’와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는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하였다. 나도 종종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는 사람은 특별한 것 같지만 파는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인 특별할 것이 없는 대상이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인. 어쩌면 매일 보아도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현시대적 시스템인 것이다. 기계음이나 읽을 바코드적인 삶. 게다가 세상은 얼마나 복잡한가. 단순해진 것 같으면서도 복잡한 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정신은 더욱 복잡하여 잠을 못 이룰 정도다. 따로인 것 같으면서도 도저히 분리될 수 없는 현대인의 이면. 혼자 산다고 결코 생각이 단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곱째. 상상력이다. 상상력에는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잘 버무려진 글이 되고 세밀한 묘사를 통해 읽는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작가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글로 표현해 낼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은가. 아무튼 뭔가는 남과 다른 참신하고 발랄한 느낌의 글 그래서 더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 2007,무지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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