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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눈으로 ㅣ 이야기 보물창고 4
패트리샤 매클라클랜 지음, 신형건 옮김, 데버러 코건 레이 그림 / 보물창고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시각장애인을 할아버지로 둔 소년의 이야기다. 소년은 할아버지네 집을 좋아한다. 다른 친구네처럼 유리로 지은 집도 아니고 오래된 나무로 지은 집도 아닌데 좋아한다. 왜냐하면 할아버지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소년은 그런 할아버지에게 동정을 느끼거나 슬퍼하거나 도움을 주는 입장이 아니다. 오히려 할아버지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냄새를 맡는 법, 소리를 듣는 법, 첼로를 연주하는 법, 식사를 하는 법, 텔레비전, 책 읽기, 설거지, 산책하기 등 할아버지로부터 실로 할아버지만의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할아버지는 부지런하다. 그렇다고 생활이 불편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곳에서 평화로움을 만끽하며 살고 있다. 지저귀는 새들이며 꽃향기며 풀 향기조차도 할아버지는 아름답고 소중하게 볼 줄 아는 마음의 눈을 가졌다.
평소 소년은 그냥 지나치거나 놓쳐서 볼 수 없었던 작고 아름다운 세세한 부분들을 할아버지로부터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눈으로도 보지 못했던 것들을 눈을 감고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어둠 속에서도 볼 줄 아는 눈 말이다. 시각장애라는 어쩌면 견디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정말 평온하다. 오히려 그 생활에 익숙해져서 불편함이 없음을 보여준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법의 지혜를 알고 있는 분들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점토로 빚는다. 할머니가 평소 얼마나 인자하시고 부드럽고 따뜻한 분인가를 알 수 있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웃음 짓는 것 같다고 말하는 할아버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은 전혀 비참하지 않게 느껴진다. 슬프지도 않다. 좌절이나 부정적인 생각도 없다. 오히려 평화로운 분위기에 익숙한 생활이 드러날 뿐이다. 할아버지 접시는 시계 같다고 한 부분은 참 재밌다. 그러고 보면 문장들이 참 시적이다. 그래서 그럴까. 내용이 밝고 긍정적이다.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장애인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할아버지의 장애는 선천적이 아니라는 것과 할아버지 할머니 존 그렇게 세 명이 등장하는 책이라는 것도 의미 있다. 따뜻한 심성으로 그린 글이다.
반질반질한 계단의 나무 난간, 그것이 할아버지의 길이다. 손끝으로 느껴보기, 눈을 감고 냄새 구별하는 법, 할아버지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할아버지가 곰곰이 생각에 잠길 때마다 만져 반질반질해진 나뭇조각에 난 길이 바로 할아버지의 길이다. 그런 할아버지도 청솔모를 보지 못하거나 전등스위치를 잘 못 끌 때도 있다. 하지만 그랬다고 그것 때문에 절망하지는 않는다. 하루아침에 나지 않았을 할아버지의 길.
아름다운 세상 그 안으로 접어든 내면의 아픔은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다. 그 길이 나는 동안은 할아버지가 얼마나 인내하셨을까. 익숙한 길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마음으로 모든 걸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평온이 마음의 길이 되기까지 얼마나 긴긴 시간이었을까.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더불어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책이며 새 삶을 계획하고 꿈 꿀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세상을 달리 보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 2007, 무지개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