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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의 본질 - 누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가?
그레이엄 앨리슨.필립 젤리코 지음, 김태현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이렇게 두꺼운 책은 출퇴근길에 들고 다니고 읽기에는 너무 무거워서 고민했는데 다행히 전자책, 그것도 전자책 서평이벤트에 당첨되는 감사한 일이! 게다가 분량과 난이도를 걱정해서 출판사측에서 온 세심한 문자까지.. "이 책의 엣센스이자 다른 사회과학서와 차별화되는 내용은 홀수장이지만 다소 어렵게 느껴지시는 분은 짝수장을 먼저 읽고 홀수장을 읽거나 짝수장만 읽으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러나 출판사의 우려와 달리 홀짝은 물론이고 '들어가며' '서문' '결론'은 물론이고 '옮긴이의 말'과 '주석'까지 꼼꼼하게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고 정사회학 분야나 세계사와 시사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도 이해하기 편하게 원 저자들도 번역자도 아주 배려를 많이 한 책 같았다.
출판사의 설명대로 이 책은 홀수장에서는 개념모델의 이론, 짝수장은 그 이론을 설명하고 이론의 뼈대에 살을 붙이기 위해 쿠바 미사일 위기의 실례에 적용하는 것이다. 즉 영화 라쇼몽처럼 한 가지 사건을 세가지 관점에서 보는데 그 관점이란 합리적 행위자, 조직행태, 정부정치의 3가지 개념모델의 렌즈를 통해 보는 것이다. 각 홀수장의 끝에서는 각 개념모델 렌즈의 패러다임, 즉 렌즈를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분석의 기본단위, 조직개념) 어떤 방법으로 사용하는지 (지배적 추론패턴), 어떤 경우 사용하는지와 어떻게 렌즈의 효용성을 입증할 수 있는지 (일반적/구체적 명제, 증거) 정리해준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첫번째 합리적 행위자 모델의 패러다임 부분은 아주 간략한데 비해 두번째와 세번째 모델의 패러다임은 좀 장황하다. 이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만큼 첫번째 모델이 갖고 있는 명확한 간소함 때문이다.
합리적 행위자 모델은 우리가 국제정치 이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일본은 이렇고 미국은 저렇고 중국은 어떻게 하려고 하는 거야'라고 이야기하듯 한 나라가 하나의 목표나 성향, 관점을 가진 개인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은 국가나 정부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요소들을 분석자만 편할 대로 뭉뚱그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명료함과 간편함 때문에 정치학 뿐만 아니라 많은 사회과학 분야에서 가장 오랫동안 각광받던 분석법이었다. 1970년대에 앨리슨은 이런 모델에 반문을 제기하면서 조직행태와 정부정치 모델이란 다른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이 모델들은 서문에서 저자 앨리슨이 식사메뉴를 결정하는 일상적인 예로도 잘 설명했지만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가 예를 든 뇌의 지시와 근육의 움직임이 따로 노는 것으로 두번째 조직행태 모델을, 뇌가 하나의 인격이 아닌 다중인격으로 나뉘어져 서로 부딪히고 싸우는 것으로 세번째 정부정치 모델을 묘사했는데 이는 더 자세히 그리고 아주 생생하게 짝수장의 쿠바 미사일 위기를 통해 설명되었다. 짝수장은 무슨 정치스릴러나 재난영화의 장면들처럼 현장감이 느껴지고 때로는 정말 소름이 끼칠만큼 박진감이 넘쳤다. 두번째 모델을 설명할 때 아폴로 13 영화를 언급하고 라쇼몽의 다원적 구조를 책 전체에 활용할 뿐 아니라 Trollope's ploy를 영화 라쇼몽의 한 장면과 유사하다고 설명한 걸 보면 이 작가도 영화를 꽤나 본 듯하다. 그런 시나리오같은 서술을 통해 비일상적이고 이론적으로 복잡해서 피부에 와닿기 힘든 정치학의 이론을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해서 괜히 정치학과 학생들의 추천교재가 아닌 듯하다.
문제는 그동안의 관행을 깨는 파격적이고 자기반성적 개념들을 제시한만큼 그에 대한 비판도 그동안 많았는데 개정판에서는 이에 대한 최신 연구들과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쿠바 사태의 최신 자료들을 덧붙이긴 했지만 그런 비판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반박이나 해명을 안 한 것이 좀 아쉽긴 했다.
두번째 조직행태 모델같은 경우. 제한적 합리성이 인간의 한계에서 오는 거라면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 외에 (그리고 그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오히려 더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는 위험도 있음) 정책에 어떻게 반영해야 하나?하는 질문이 뒤따른다. 합리적 행위자 모델에 대한 반성과 조직과 절차에 대한 보완 및 개선점을 제안하고 그 정책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자료수집의 양도 어마어마하고 방식도 복잡한 단점과 정책을 개발하고 선택하는 정책형성에서는 덜 적합한 것이 약점일 것이다. 또한 쿠바 미사일 위기를 설명한 4장과 6장에서 어떤 요소들은 조직행태모델와 정부정치모델 중 어느 곳에 속하는 것일지 헷갈리거나 중첩되는 부분도 있어서 패러다임이 모호하다는 약점도 있었다.
세번째 정부정치 (government politics) 모델은 옮긴이가 지적했듯이 원래 초판에서는 관료정치 (bureaucratic politics) 모델이라고 했고 앨리슨의 개념모델 중 가장 중요하게 대두되었고 새롭게 주목받은 모델이다. 이는 두번째 모델과 마찬가지로 조사하고 수집할 변수의 정보 양이 방대하고 복잡하고 그 정보의 성격상 불완전하거나 왜곡될 수 있는 단점도 있다. 그리고 이 모델도 조직행태모델과 중첩하고 마찬가지로 개념과 명제에서 모호한 부분들이 있다. 또한 정부정치 중 너무 행정부의 측면만 강조되고 다른 정부 기관과 조직에 대해 좀 소홀하게 다루었다는 감이 없지 않았다. 만약 미국같은 정부시스템이 아니라 다른 정부시스템(예: 의원내각제)에서도 이런 개념모델이 동등하게 적용될지도 좀더 연구해봐야할 문제같다. 그리고 두번째와 세번째 모델에서 만약 이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what if ... then 시나리오들의 열거는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키기는 하지만 중요한 요소들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는 과학적으로 충분한 이론이 되지 못한다. 어떤 변수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를 도출하는지 논리적 가설들을 세우고 이에 맞는 연역적 실험연구를 설계하여 더 실증적인 과학체계로 발전하지 않으면 이 개념모델은 아직 ex post facto로만 설명적 도구로 남아버릴 수 있다.
이처럼 고전적 합리적 행위자 모델로도 사실을 보기에는 부족하지만 두번째 세번째 모델들만으로도 부족하다. 망원경에서 보지 못한 근본적 사실의 이면을 현미경으로 보는 것으로 앨리슨은 비유했는데 현미경의 렌즈으로 전체적 그림을 얻기 위해 단편적이 아닌 수백개의 상을 관찰하고 종합해서 분석하지 않으면 결국 코끼리 꼬리나 발만 쓰다듬는 맹인모상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즉 더 어려워도 더 복합적인 관점으로 봐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하지만 영화 라쇼몽에서도 논란이 되었듯이 과연 다원적 관점을 다 보고 종합적인 평가를 낸 객관적 제3자인 분석가는 그렇게 객관적일 수 있을까? 라쇼몽의 나뭇꾼처럼 앨리슨은 완벽히 객관적이지도 종합적이지도 못하다. 아까 말했듯이 두번째 세번째 개념모델에서 정보는 왜곡되거나 불충분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앨리슨 자체도 미국인의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소련의 입장이나 자세한 정황에 대해 개정판에서도 아직 밝혀지지 않아 추측에 불과한 분석에 그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 모든 모델을 적용해도 진실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불완전하다는 몽매주의적 비관에 빠질 위험도 있다. 하지만 불완전함과 모호함 복잡함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 접목하고 더 다양한 유형의 국가와 조직, 그리고 사례들을 통해 더 이론을 정제할 필요가 있다.
냉전이 종식된 50년이 지난 지금도 쿠바 미사일 위기는 생생하고 이 책은 여전히 고전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유는 다모클레스의 검이 아직도 우리 머리 위에서 더 육중한 압력으로 매달려 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북한 문제만이 아니다. 국가형태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조직 간의 국제분쟁, 그리고 양극화에서 벗어나 예측이 더 힘들어진 국제사회 및 정보 유통의 혁신적 변화들이 국제정치 문제를 더 복잡하고 다양하게 해서 지금이야말로 다원적인 시야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고전을 또 새롭게 읽히게 하고 과거에만 국한되지 않고 현재와 미래로까지 확장할 방향을 가리켜주기 위한 향후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p.s. 이건 특별히 전자책에 대한 코멘트로 덧붙이는데
전자책의 휴대성 덕분에 이 책을 일주일 안에 완독할 수 있었지만
각주가 워낙 좋고 참고문헌들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각주의 링크가 되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그리고 세 개념모델을 표로 정리한 것이 전자책에서는 한 페이지에 들어오지 않아서 보기가 좀 어렵다는 점 외에는 아직 영어로는 전자책 형태로 안 나와있는데 한글로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 출판사측에 감사하다.
투우사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줄지어 서있고 거대한 광장에 군중들이 발 딛을 틈 없이 꽉 찼네. 하지만 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 그는 바로 황소와 싸우는 이라네.
대통령님이 묶은 ‘전쟁의 매듭‘ 양끝을 잡아당기지 말아야 합니다. 더 세게 잡아당길수록 매듭이 더 단단하게 묶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단단하게 묶여서 묶은 사람조차 풀 힘이 모자라 매듭을 잘라야만 할 순간이 올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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