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거꾸로 흐르는 강 : 한나와 천 년의 새
장 클로드 무를르바 / 문학세계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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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1권은
소년이 성장해가며 소녀를 구하러 가는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지만
소녀를 구출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소년 토멕이 소녀 한나를 따라가는 것 외에는 비슷하고
수수께끼를 내는 마녀와 맞부딪힐 때 외에는
마리나 향수마을 사람들과 선장 등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런지
그다지 긴장되는 부분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좀 느린 페이스로 흘러나갔다.

하지만 2권은 1권에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한나의 이야기,
그것도 막연히 한나를 따라가는 토멕보다 더 적극적으로 뚜렷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소녀의 이야기여서
보통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여성상을 뒤집는 이야기여서 재미있었다.

게다가 많은 이야기들이 뭔가 그림동화나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다
특히 결혼하고 애까지 낳았던 일생이 다시 신기루처럼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과
아기 때부터 저주에 걸려서 마녀나 괴물에게 성인이 되기 전에 납치되는 공주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에서 많이 봤을 법한 테마다.

하지만 더 흥미로웠던 것은 작가가 토멕의 이야기에 비해
한나의 이야기에서는 한나의 입을 빌려서 그런지
아라비안 나이트의 셰헤라자드의 구전동화처럼 여러 이야기가 이어 흘러가는데
정작 이 책은 말의 귀중함과 동시에 침묵의 귀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가 사막에서 만난 사람들이
물이 없어서 되도록 물 뿐만 아니라 말도 아끼는 것을 보고
한나도 차츰 수다쟁이에서 말을 아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받고서 그들과 헤어질 때
그녀는 달리 줄 것이 없지만
이것만은 아직 다른 누구에게도 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이름을 선물로 알려준다.

우리가 너무 많은 물질에 둘러싸여서 그것의 소중함을 잘 모르듯이
현대 문명의 우리들은 수많은 미디어와 말과 글에 둘러 싸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짜 뉴스에도 현혹되고 집중력도 관심도 떨어진다.
갈수록 익명이나 지나친 노출에 둘러 싸여 자신의 신분의 가치도 떨어지는 현대인의 모습은
남발하는 말과 이름에 파묻혀서 정작 중요한 개성과 관심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그래서 이 이야기의 처음과 끝에서도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테니 아주 자알 집중해서 들으라고 경고한다.

‘이야기를 끝내고 나면 난 입을 닫고 다시는 이 이야기에 대해서 입도 뻥끗 안 할 거야.‘ - p. 10

‘이상한 일이다. 난 이 아저씨들의 침묵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편안해진다. 사실 알고 보면 말할 일이 생각보다 많지도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참, 너무나 당연한 사실도 하나 알아냈는데, 말을 많이 하면 목이 마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물이 부족하다. 침마저도 귀하다. 여기서는 모든 게 귀하다.‘ - p.72

‘이제는 약속 한 대로 입을 닫을 거야. 마지막을 위해 남겨 둔 이 말만 끝나면 말이지. 수다스러운 내가 고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내가 사막에서 배운 말, 그것은 바로 침묵이야.‘ - p. 189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은
말없이 떠나버린 한나의 자유로운 방황과 모험을
응원해주는 그녀의 양부모님들의 편지다.

‘그분들은 이렇게 썼어. 내가 아무 말 없이 떠난 것에 대해 원망하지 않는다고. 내가 그분들의 소유물은 아니라고. 단지 얼마 동안 그분들의 예쁜 새장에서 데리고 있었던 것뿐이라고. 하지만 언젠가는 새장 밖으로 날아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 p. 187

한나의 친아빠는 한나가 너무 이뻐서 뭐든지 다 사주려고 새시장에서 너무나도 비싼 새를 한나에게 선물해주려다가 아내도 떠나고 빈털털이가 되고 결국 과로하다 한나를 홀로 두고 가버렸다. 사랑도 과유불급이다.
반면 새장 밖으로 날아갈 거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그녀의 양부모와
선물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 이름, 편지, 그리고 추억 등 짐처럼 실고 갈수 있는 물건이 아닌 것을 알고 있는 한나는
자유롭고 용기 있게 세상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간다.

갈수록 출산율이 줄어서 그런가
우리나라에서 특히 이 소비문화와 과보호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이 책은 어쩌면 아이에게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깨달음을 줄 수 있는 동화일 것 같다.
소중한 것은 손에 쥔 것이 아니고 가장 귀 기울일 이야기는 침묵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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