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하게 산다는 것 - 모멸의 시대를 건너는 인간다운 삶의 원칙
게랄드 휘터 지음, 박여명 옮김, 울리 하우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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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나는 책을 잘못 골랐던 것 같다.

뇌신경학자고 하고 소개글의 '당신의 죽음이 존엄하길 원한다면 먼저 삶이 존엄해야 하지 않겠는가'란 글만 보고 나는 존엄사에 대한 뇌과학적 최신 견해를 알려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이 책을 골랐는데 일단 '미리보기'를 어느정도 읽어보고 다음에는 서평을 골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존엄사에 대한 내용은 없다. 오히려 존엄하게 죽기에 앞서 우선 존엄하게 살아야한다는 것을 설파하는 책이고

과학적 내용이 아주 잠깐 나오기는 하지만 이미 잘 알려진 연구결과라면서 그다지 깊게 들어가지 않고 연구 출처도 밝히지 않는 점이 매우 아쉬웠다.

앞의 1장은 현대사회에서 갈수록 이익극대화와 최적화의 알고리즘에 의해 복잡해지고 타인과의 공존이 이 어려워지는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유일한 나침반이 되어 주는 것이 존엄이라고 한다. 2장에서는 이 존엄이라는 것의 언어적 (독일의 문법이 참 어렵다고 새삼 느낌;;) 역사적 사상적 유래에 대해 칸트 및 독일 헌법, UN헌장 등을 언급하며 다소 긴 서론으로 들어간 후 3장부터에서야 다소 뇌과학자다운 글들이 나온다.

3-5장에서는 뇌과학과 관련된 내용이 많아서 관심을 갖고 재미있게 읽었으며 밑줄도 많이 쳤다.

다만 연구 출처 등이 수록되지 않은 점이 많이 아쉬웠다. Jared Diamond의 Upheaval도 그렇고 요즘 reference 안 다는 게 트렌드인가? 도중에 집어넣은 사진들을 줄이고 reference를 넣는 편이 나았을 텐데..

가소성(Plasticity)를 가진 인간의 뇌는 학습능력이 가장 많이 진화하고 죽을 때까지 그 학습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 덕분에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하고 후세에도 그리고 수평적으로 공동체의 구성원에게도 이 지식을 전해줄 수 있다. 이렇게 전파된 견해와 지식은 구성원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고 가치관과 삭방식을 만들어 공존을 위한 기준이 된다. 즉 이렇게 끊임없이 학습이 가능하고 전파가 가능해진 인류의 뇌는 사회적 뇌인 것이다.

개체에 맞는 신체적 특성에 맞추어진 삶을 살아가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평생에 걸쳐 새로운 경험들을 토대로 뉴런이 연결되고 회로 패턴이 형성되며 지금까지의 발전과정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우리의 관념에 따라 만들어가는 법을 배웠다. 이렇게 세상에 적응하도록 고착되고 구조화된 우리 적응 방식이 옳지 않다고 판단될 때는 더 나은 방법을 위해 고민하고 실행하면서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글로벌 시대 속에서 환경파괴가 진행되며 우리는 살아갈 터전이 줄어들며 심지어 외계 행성까지 넘보고 있다. 어차피 인류가 갈만한 행성이 있다고 해도 그 행성 또한 지구처럼 황폐하게 만들어버릴 것이라면서 작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과 같은 가치관을 유지하며 지금처럼 살아갈 새로운 공간이 아니라,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이해다."라고 말한다.

그런 인간답게 만들어줄 만한 이해를 위해 각자의 신념이나 시각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작가는 '실패'와 '만남'을 추천한다. 지금까지의 인생관과 그에 따른 자아상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어야 여태껏 놓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각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각성을 위한 '실패'보다 더 효과적인 '만남'은 자신과 다른 낯선 신념을 마주하고 자아상과 세계관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것들을 확장시키며 상대적인 관점을 얻게 할 것이다.

이런 '만남'의 필수적인 사회 구성원에 대한 '관심'은 영장류의 사회적 학습의 특징이라고 작가가 지적한다. 다른 구성원의 행동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흥미롭게 여기며 이를 따라하는 것으로 공동체에 지식과 능력이 전파되는 공동체 조직의 능력이다.

이런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경험들은 소속감과 자율성이라는 인간의 두 가지 욕구를 충족시켜 공동체 안의 구성원들이 각자 고유한 의미를 지니고 각자 유익한 발견을 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런 개개인의 발전이 계속되면서 이 구성원을 하나로 묶어주는 연대감이 필요하기 때문에 구성원 모두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야한다. 새로운 발견이나 능력 뿐 아니라 유익하다고 인정받는 신념 또한 전파되는데 이 신념은 다시 개인의 유일무이함을 인식할 수 있게하는 정체성, 자율성을 강화할 수도 있고 구성원들 간의 연대감을 강화하는 이념으로 피드백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자율성의 본능이 너무 강하게 표출되며 인간의 이기심으로, 반대로 연대감을 바탕으로 사랑이나 이타주의 등의 관념이 생기기도 한다.

개인이 과거에 겪은 경험들이 이후 개인적/사회적 경험들을 통해 끊임없이 재현되며 그 과정에서 사용하지 않는 신경망들은 위축되고 자주 활성화되는 경험과 행동 패턴들은 갈수록 강화되며 신경망 패턴의 형태로 뇌 안에 구조적으로 저장된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인간의 뇌는 감정중추가 활성화되면서 혼란을 일으키는데 뇌활동이 일관된 상태에서 멀어지면 이를 안정시키도록 활성화된 신경망들은 더욱 확장되고 강화된다. 즉 삶의 중요한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발견한 해결책들을 기반으로 뇌가 구성된다. 이 과정에서 소속감과 자율성을 동시에 경험하면 경험할 수록 이런 욕구들이 뇌에 단단히 고정되며 자기 존엄성을 인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즉 존엄이라는 관념은 인간의 뇌의 조직과 기능방식에 근거를 두고 있는 인간에게만 있는 표상이며 분명하게 의식할 수 있는 성향이라고 자가는 정의한다.

현재의 우리가 왜 자신의 존엄과 타인의 존엄을 위한 삶과 공존에 무능한지에 대한 질문에도 작가는 생존의 문제라는 생물학적인 설명으로 대답한다. 생존의 위협에 항상 노출되며 우리는 해결책을 찾는데 그 해결책이 단기적 해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성공적 전략같아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오히려 악화시킨다.

여기서 작가는 재미있게 열역학 제2법칙을 언급한다. 에너지가 자연의 모든 현상에 고르게 분배된다는 열역학 제2법칙의 논리에 따라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내는 자기 조직화의 능력을 갖고 있어야한다. 엔트로피를 낮춰야 생존을 위한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고 자기 조직화를 잘 할 수록 생존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부 조직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소비되는 에너지의 양이 적을수록, 조직의 해체를 극복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우리 뇌도 내부조직 중 하나이고 가용 에너지의 양은 한정적이다. 시스템의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시스템은 무너지고 그 에너지는 다시 균일하게 자연계에 분산된다.

우리가 어떤 문제로 인해 갈등상황에 처하거나 새로운 것을 학습할 때 우리의 가만 있고 싶어하는 뇌는 이를 반기지 않고 에너지 소비량은 급격히 치솟는다. 이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는 인간의 몸에도 영향을 주어 지치게 만든다. 이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감정의 억압, 기분 전환, 분열, 부정 등 여러가지 전략을 사용한다. 뇌의 내부질서가 혼란스러워지면 뇌는 다시 에너지 소비를 평소대로 낮춰줄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고 이 해결책 중 하나가 '단순화' 작업이다. 우리 몸의 다양한 단일 행동과 반응을 조화롭게 조정하기 위해 상위의 패턴을 형성하고 자동화시키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사고방식' '태도'는 지난 삶을 통해 축적된 경험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특정 상황에 처할 때 매번 그에 적합한 행동패턴을 고민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일관된 행동으로 이끄는 go-to manual같은 '태도'를 가지는 게 에너지 소비가 적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과 태도 역시 뇌에 뿌리 내린 상위 행동 패턴에 따라 조정되고 형성된다. 이것은 유년기에 이루어진 '자아상'이고 한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결정하며 어떤 존재가 되길 원하는지, 어떠한 삶의 방향을 따라고 있는지, 어떤 가치를 토대로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한 개념이다. 이런 시스템들 간에 마찰이 없이 일관성 (consistency)을 유지하면 내적 질서를 위해 소비되는 에너지도 최소화할 수 있다.

행동의 지표가 되어주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자아상을 형성하여 복잡성을 줄이는 것이 우리 뇌의 본연의 능력이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동물의 폐쇄적 구조, 특화된 인지 능력, 타고난 행동 패턴을 갖지 않고 매우 개방된 체계이기 때문에 일관성이 무너지기 쉽다.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내부조직의 불일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의 뇌는 계속 진화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개방적이고 평생 학습할 수 있는 뇌가 발달했다. 불일치 상태에서 일관성을 되찾기 위해 중뇌에서 신경가소성을 가진 (neurotrophic) 화학물질들이 배출되어 일종의 거름처럼 신경세포 돌기의 성장을 돕고 문제해결을 위해 활성화된 뇌 영역에서 새로운 신경망 형성을 자극한다.

신념, 표상의 형성과정에서도 역시 복잡한 뉴런 연결 패턴의 형식으로 전두엽에 자리잡는데 이는 개인의 경험을 통해 저장되는 모든 것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만든다. 즉, 새로운 경험은 전두엽에 형성된 자아상 형태의 경험에 추가되고 연결되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만들어낸 내적 표상은 인격의 핵심이 되며 고유의 정체성으로 이어진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경험인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경험들을 통해 내적 표상을 만든다. 공존에서 오는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어떤 모습의 인간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찾기 위해 5장에서는 동물들과 달리 태어날 때부터 형성되지 않은 인간의 신경망 때문에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만 학습되는 사회화된 신경회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특정 상황이 자신의 기대와 일치하지 않는 불일치상황을 정상적인 상태와의 비교를 통해서만 인지하고 이 정상적인 상태에 대한 정보가 이미 신경망에 저장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즉 아기일 때부터 인간은 타인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무엇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 즉 존엄에 대한 내면의 기준을 갖고 있다는 것이라고 작가는 역설한다. 이것은 엄마의 자궁 속에서 뇌가 생성되는 과정부터 생긴다고 한다. 자궁 속에서부터 타인과의 관계라는 (태교에 대한 근거가 되는건가?) 경험 속에서 이런 내면의 기준에 대한 뇌의 연결패턴이 활성화되며 뿌리내리는데 이 때 반드시 해야할 경험이 소속감과 개인으로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자율성의 경험, 그리고 자신의 창의력에 대한 경험이라고 하며 이런 경험들을 주는 만남을 '사랑'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후 6장부터는 그래서 이런 지식들을 어떻게 교육적 사회적 방침에 적용할지 앞으로 존엄을 어떻게 되찾을지에 대한 방향에 대해 피력하는데 교육적/사회적인 정책으로 발전하기에는 다소 두리뭉실하기도 하고 너무 낙관적이다 못해 좀 단순하다는 게 아쉬웠다. 메시지는 좋지만 그 메시지를 담아내는 매체가 시작이 너무 거창한 데 비해 그 메시지를 잘 다듬지 못하고 아쉬움을 남긴 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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