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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열국지 1 - 신화에서 역사로
이수광 지음 / 대산출판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삼국지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통털어 읽은 책이 삼국지 밖에 없을 정도로 편식의 독서를 했다. 이젠 삼국지를 다시 읽으면 모든 장면을 다 알기 때문에 재미가 현저하게 떨어지므로 읽지 않는다. 삼국지와 비스무리한 스타일이면서도 더 많은 등장인물, 유명한 고사, 권모술수, 세력다툼이 그야말로 난무하는 열국지를 읽으려고 맘먹었으나 초반의 지루함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던 군대시절이후 거의 10년만에 다시 열국지에 도전하게 되었다.
열국지는 한학자이기도한 김구용 선생의 동주 열국지부터 최이산, 유재주등의 많은 저자들이- 삼국지에 비하면 택도 없지만 - 번역을 해놓았기에 어떤것을 선택할까 고민해야 했다. 군시절 잡았던 판은 김구용판이었는데 나름 흥미도 있었지만 당시엔 책읽기 자체를 멀리했던 터라 금방 포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헛갈려서 누가 누군지 모르는 지경에 이으렀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슨 공은 이렇게 많으며 왕은 더럽게 많고 나라또한 수두룩하니 골이 아파왔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나마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아는 양반들이 꽤 생겼기에 훨 수월해졌음을 느낀다.
사실 김구용판을 보고 싶었다. 김구용판 삼국지를 재미있게 봤기 때문이다. 그의 한학자로서의 명성도 한몫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다른 삼국지들보다 선호도가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세손가락에 꼽히는 삼국지기 때문이다. 박종화, 황석영다음으로 김구용을 꼽는다. 이문열, 본삼국지(연변출신작가 이름은 기억이 안남)등도 읽어보았지만 결코 추천하고 싶지 않다. 요즘 본 삼국지를 많이 추천하는데 원전에는 충실할지 모르나 소설적 구성으로는 가히 개판이라고 할수 있을 정도다. 너무나 상세한 설명을 구구 절절히 다 해놓았기에 그런 친절함이 역으로 거슬림을 갖게 한다.

하지만 결국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이수광의 열국지다. 춘추전국시대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가 개정하면서 열국지로 스리슬쩍 바꾼 이수광판을 선택한 이유는? 가격이 싸서. 김구용판에 비해 거의 반값수준이 아니던가? 특가에 놀라 충동구매해서 선택한 것이라. 그리고 이수광의 책, 조선의 미스터리 뭐시기 하는 책도 괜찮게 읽었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아무리 싸더라도 멋도 모르는 양반의 책을 무턱대고 구입할리는 없다. 예전엔 그런적도 있지만 뭐.
중국사람들의 구라는 하여간 알아줘야 한다. 중국 천지창조신화는 그 어떤 신화보다도 황당하다. 태초에 암흑이 있었는데 혼돈한 것중의 밝고 맑은 것은 위로 올라가서 하늘이 되고 어둡고 흐린건 가라앉아 땅이 되었는데, 그사이에서 튀어나온 반고라는 양반은 1만 8천년동안 키가 자라 하늘과 땅을 갈라놓고 뒈지면서 시체의 여러부분이 퍼져나가 산이되고 들이 되고 해가 되고 달이되었다는 대 구라를 풀어놓는다. 대륙시리즈의 시초가 아닐까 의심되는 이 구라는 다른 구라, 삼황오제의 구라로 이어지는데 참 재미없는 부분이다.
태평성대를 가져왔다는 훌륭한 임금의 대명사, 두고두고 거론되어온 요순임금시대를 지나 하나라 은나라를 거쳐 드뎌 강태공이 등장하고 주무왕이 주나라를 만들기에 이른다. 요순임금은 꾸며낸 가상속의 인물, 유토피아같이 이상적인 존재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기에 주나라에 이르러서야 조금씩 재미있어진다. 여러 제후들이 주나라를 황실로 두지만 개무시 하면서 지들끼리 피터지게 싸우는것이 열국지의 구성이 아닌가. 그 안에서 공자 맹자 관중 손자등등등 유명한 인물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게 되는 것이고.
김구용선생이 완역한 풍몽룡의 열국지에는 진나라의 진문공이 등장하는 장면부터 시작하게 된다는데 이때부터 흥미진진하면서 복잡하다.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애비애미형제친족할것없이 쳐죽이고 또 죽이는 연쇄가 일어나는데, 역시 살아남는 것은 운좋은 놈이나 정세와 명분을 어느정도 파악하고 뛰어난 모사를 둘줄 아는 놈이 오래 살아남아 이름을 남기게 된다. 초반의 3분의 1정도의 지루한 부분을 넘어 후반부로 가면 참 재미있다. 등장인물들이 헛갈려서 앞페이지를 계속 뒤적거리게 되는 불편함만 제외한다면. 2권부터는 드뎌 그 유명한 관중이 등장하게 되니 상당히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