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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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 세대의 극심한 고생담을 듣노라면 먼나라 딴세상이야기 같았다. 그리 넉넉하게 자라진 못했지만 밥을 굶어본적은 거의 없기에 하루종일 일해도 입에 풀칠하기 어려웠다는 말을 들어도 와닿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경험담보다 오히려 소설속의 묘사들이 더 와닿곤 한다. 조정래 선생의 소설들을 읽을때가 특히 그렇다. 주인공의 상황과 심정을 읽노라면 인물의 감정이 와닿으며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얼마전 중편을 개작해서 장편으로 출간된 소설 '황토'처럼 이책도 중편을 장편으로 개작한 것이다.


  먹고 살길을 찾아 어느정도의 희망도 품고 서울로 올라왔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더욱 모진 고생속으로 들어가는 복천영감.    
전형적인 순박한 시골 농부인 복천은 평생을 농부로 성실하게 살아왔으나 가난을 면치 못한다. 남의집 머슴살이에서 겨우 벗어나 자기땅을 가지고 농사를 지었으나, 평생고생만 하던 아내가 병에 걸리고 만다. 병수발로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아내도 살리지 못한 복천. 급기야 이웃집에서 빌린 소를 몰래 팔아 서울로 야반도주를 하게 된다. 


  평생 시골에서 순박하게 살아온 그에게 매정한 서울사람들과 복잡한 거리는 낯설기만 하다. 먹고살길도 막막하고 가진거라곤 소훔쳐 판돈밖에 없는 복천은 두 아이를 데리고 잘곳조차 마땅치 않는데, 길에서 우연히 만난 떡장수여인의 도움을 받아 판자촌에 집을 마련하고 장사도 시작한다. 그렇게 땅콩장사는 어이없는 사기로 날라가 버리고, 좌절할 여유도 없이 밑천적게드는 칼갈이를 시작하게 되지만 여전히 서울이 낯선 그는 모진 고생을 하게 되는데…….








  먹고 살기가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노숙자와 실업자는 널려있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다 착하고 착한사람이라고 다 가난한것은 아니지만 모질지 못하고 착하기만 한 사람은 아직도 사기를 당하고 모진 고생을 하는것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현대에도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남을 속이고 등치는 사람이 잘사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인정을 받고 착한사람은 약하고 어리석은 바보로 손가락질 받기도 한다. 바르게 세상을 살면 남에게 당하기 쉽고, 남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나도 모질게 살아야 하는것이다. 
 
  나또한 그리 착한 사람은 못되지만 남을 잘 믿는 편이라 크고 작은 사기를 여러번 당했다. 납품일을 하면서 늦은 나이에 장가도 못가고 기숙사 생활을 한다는 사람의 하소연을 듣고 포장만 번지르르한 썩은 굴비를 여러상자 사주기도 했고, 전화로 권유하는 콘도 회원권을 비싼 가격에 샀다가 쓰지도 못하게 된 경우도 생겼다. 지방에서 일을하면서 만난 친구에게 휴대전화 명의를 빌려줬다가 덤탱이 쓴일도 있으며 그 외에도 교묘하고 법에 걸리지 않거나 처벌하기 힘든 작은 사기를 당한적이 상당하게 있다. 그래서 나도 모질고 독하게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고 조금씩 그렇게 변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타인을 매정하게 대하는 것이 버릇이 되고 이득만 쫓게 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래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면 또 당하게 될테니까. 
내 가까운 피붙이도 남의 말만 밑고 턱없는 권리금을 주고 계약을 했다가 손해를 보았으나 제대로 고소고발도 하지 못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사기꾼은 오히려 뻔뻔스럽고 표독스럽게, 방귀뀐놈이 성내는 식으로 큰소리만 치는게 아닌가.


  요즘도 이렇게 정신차리지 않으면 당하는데 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되는 서울인심은 지독하기 짝이없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서로 해를 가하고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대로 없는 사람을 착취하는 것이다. 선생의 소설에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세세하고 절절하게 묘사되어있다. 


  원래 이런 소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다. 지지리 고생만 하는 이야기나 전쟁이야기 등은 그리 흥미를 끌만한 소재가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선생의 작품은 읽다보면 절로 몰입이 된다. 술술 읽히기도 하고 재미도 있다. 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늘 심각한 사회의 문제들만 거론하는 작가라는 편견을 가지고 선생의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이 상당하며 나또한 그랬다. 하지만 그것은 직접 소설을 읽게 되면 틀렸다는 것을 이내 알게된다. 원래 책이라곤 전혀 가까이 하지 않았으며, 읽게된 지금도 책읽는 속도가 느리고 약간의 난독증이 있으며, 집중력이 없으며 흥미없는 것은 결코 하기 싫어하는 나도 쉽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선생의 진가는 장편이나 단편보다 대하소설에 있다. 장편이 못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현대사 3부작의 재미가 좋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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