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머무는 마음 - 시가 피어나고 그림이 머무는 자리
나태주 지음, 나난 그림 / OTD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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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덧 오십대 중반을 살아가는 직장인이 되었다. 매일 아침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쏟아지는 업무와 메신저 알림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 세상은 숏폼처럼 숨 가쁘게 돌아가고, 그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소모되고 닳아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현실의 각박함 속에서 쓸쓸함이 문득 찾아들 때, 나태주 시인과 나난 작가의 시화집 <오래 머무는 마음>을 읽고 포근한 온기를 느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주변의 소음이 잦아들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하며 오래 머물렀다. 이 책은 빠른 소비 속에서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추어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정서적 여백'과 '치유적 힘'을 선물한다. 그 위로가 내 삶에 온전히 스며든 것은 책 속의 시어와 그림들이 눈으로 들어와 가슴에 내려 앉으면서 시작된다.

이 책은 인생의 각박함을 치유하는 단계적인 외침을 품고 있다.

'자기 긍정'에서는 나를 증명하려 애쓰던 피로감을 내려놓았다. ‘나도 분명 꽃인데 나만 그걸 몰랐던 거다 봄이다 이제 너도 꽃을 피워라.’ 성과와 숫자로 끊임없이 평가받던 직장 생활 속에서, 시인은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도 피어날 자격이 있는 소중한 꽃이라며 나를 긍정해주었다.

'사랑과 자가 치유'에서는 세상의 무게를 버텨내느라 서툴 수밖에 없었던 스스로를 보듬었다. ‘괜찮아 서툴러도 괜찮아  서툰 것이 인생이란다’ 완벽해야만 살아남는 조직 생활 속에서 이 문장은 긴장된 어깨를 내려놓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치유였다. ‘너를 안아주는 일은 결국 나를 안아주는 게 아닐까!’라는 [포옹]의 구절은 쉽게 만나고 쉽게 잊히는 관계에 지쳐있던 나에게 내면의 자생력을 길러주는 단단한 에너지가 되었다.

'성숙한 이별과 그리움'에 이르러서는 인생의 가을 길목에 선 중년의 마음이 담담하게 위로받았다.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지나온 50대이기에 삶의 유한함 앞에 쓸쓸해지곤 했다. 그러나 시인은 ‘끝내 이별을 할 때는 가볍게 가볍게  손을 흔들며 … 다만 사랑해서 좋았단다.’라며 지나간 상실을 원망하기보다 아름다운 온기로 승화시키는 품위를 가르쳐 주었다.

치유를 전하는 시어들은 자연의 온기를 품은 나난 작가의 다채로운 일러스트를 통해 시각적으로 완성된다. 그림 한 점에 눈길을 멈추고 시 한 구절을 읊조리며 참 오랜만에 제목 그대로 '오래 머무는 마음'을 경험했다.

디지털 세상의 빠른 속도감에 지쳐 정서적 갈증을 느끼는 직장인과 삶의 방향성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권하는 최고의 처방전이다. 존재 자체로 존귀함을 깨닫는 자기 긍정과 상처를 스스로 어루만지는 법을 배워, 다시 내일을 살아갈 따뜻한 치유와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리앤프리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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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왜 이런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 인생의 굴레마다 찾아온 뜻밖의 해답
우인 지음 / 서울문화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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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왜런지부처님께물었습니다#우인#서울문화사#리앤프리책카페#리앤프리서평단

 

겉으로 보기에 나는 언제나 덤덤한 사람이다. 평생을 규칙과 규율을 엄격하게 지키며 살아왔고, 감정을 섣불리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며 자라왔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두고 감정 표현이 무딘 사람, 혹은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나이가 들고 50대 중반이라는 인생의 변곡점에 서 있어도, 내면에서 휘몰아치는 불안과 미움, 후회 같은 감정들은 20대 시절과 다름없이 생생하고 아프다. 단지 책임이라는 무게와 완벽을 기하려는 습관 때문에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꾹꾹 눌러 담고 있을 뿐이다.

원칙을 지키며 완벽을 추구할수록 마음의 안을 파고드는 번뇌는 더욱 지독해진다. '그때 다르게 행동했어야 했다'는 과거에 대한 후회, '앞으로 내 자리는 안전할까' 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불쑥 고개를 들 때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법은 익혔지만, 정작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이 무거운 마음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몰라 홀로 괴로워한다. <사는 게 왜 이런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를 읽고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당신의 평화는 회사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라는 강렬한 한 마디를 던지며, 내 마음의 주권을 타인이나 환경에 넘겨주었던 지난날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책은 ‘더 단단해져라’, ‘마음 근육을 키워라’라며 무조건적인 강인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매달리던 완벽주의가 불안을 감추기 위한 집착이었다고 말해준다. 특히 나를 만만하게 만들지 않는 친절인 '방편'의 지혜를 다룬 대목에서 저자는 ‘전략이 부재한 자비는 상대방에게 자신을 아무렇게나 대해도 괜찮다는 그릇된 확신을 심어 줄 뿐입니다’라고 일러준다. 50대가 되어서도 직장이나 인간관계에서 겉으로는 덤덤한 척 속으로는 홀로 삭여왔던 친절이 결코 평온을 주지 못했던 이유를, 이 문장이 명쾌하게 답해준 것이다. 내 영역에 단호하게 선을 긋는 것이 무례를 막는 방어선이자 관계를 오래 지속하기 위한 진짜 예의였다.

또한 거문고 줄의 비유를 통한 '중도'의 조언처럼, 지나친 열정이나 엄격함 역시 상대에겐 배려가 아닌 통제나 귀를 찌르는 소음이 될 수 있다. ‘지나치지 않은 사랑이란 상대가 시행착오를 겪을 때 그 과정을 가로채지 않고 가만히 지켜봐 주는 태도’라는 말은, 중년이 된 내가 후배나 가족을 대할 때 가져야 할 거리감이 무엇인지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겉으로는 완벽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마음속에는 처리되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중년과 일상의 번뇌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이 책 읽기를 권한다. 스스로를 옥죄던 집착을 내려놓는 유연함을 배우고 내면의 독립성을 되찾음으로써, 비로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주체적이고 평온한 삶의 방식을 다시 세울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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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그렇게 흔들리며 살아갑니다
때지타로 지음 / 모티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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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스타트업의 품질관리(QC) 팀장으로 산다는 것은 매일 아침 단 0.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백색의 세계로 출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포를 배양하고 성분을 분석하는 나의 일터에서는 ‘타협’이나 ‘대충’이라는 단어가 설 자리는 없다. 기준 일탈(OOS) 하나가 기업의 존폐를 가르고 환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기에, 지난 수십 년간 내 몸에 밴 규칙은 언제나 ‘완벽’과 ‘철저’였다. 50대 중반인 현재도 여전히 나의 신경은 늘 팽팽하게 당겨진 현악기 같다.

유튜브 채널 때지타로의 저자가 펴낸 <모두가 그렇게 흔들리며 살아갑니다>를 읽기 시작했을 때, 솔직히 첫 장부터 거부감이 밀려왔다. ‘완벽주의를 극복하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며, 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를 얻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는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뜬구름 잡는 소리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평생을 모범생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으려 스스로를 채찍질해 온 나 같은 완벽주의자에게, 내면의 철저함을 허물어뜨리라는 말은 무책임한 방임이라고 생각했다.

책장을 넘기며 읽을수록 마음속 저항감은 점차 공감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완벽주의라는 잣대로 내 삶을 엄격하게 평가할수록, 도리어 사소한 실패 앞에서 밀려오는 무력감과 강박의 덫에 깊숙이 빠져들고 있었다는 완벽주의의 명확한 한계를 직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특유의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 완벽한 통제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지도 모른다. 기준을 완전히 충족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 주저하고,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도전 앞에 방어적으로 변해 가던 내 모습은 내 불완전함을 포용하지 못해 생긴 증상이었다. 나를 가로막은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선, 내 안의 빈틈을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로 삼아야 한다고 완벽주의라는 우상 뒤에 숨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있었다.

저자가 말한 ‘모방생’은 완벽한 정답이 없는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먼저 앞서간 이들의 유연함을 배우고 내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나만의 프로토콜을 유연하게 수정해가는 과정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내 직업식으로 바꾸어 말하자면, 그것은 무모한 모방이 아니라 ‘파일럿 테스트(Pilot Test)’ 같은 삶의 방식이며 벤치마킹이다. 본 실험에 들어가기 전,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가볍게 조건을 바꿔보며 실패의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하며 진짜 나를 찾아가는 주체적인 파일럿 테스트 말이다

이 책은 완벽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에 지쳐 마음의 무력감을 겪고 있는 직장인과 인생의 무게중심을 다시 잡고 싶은 이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스스로를 옭아매던 불안과 결핍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법을 배우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주체적인 삶의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이 리뷰는 리뷰의숲 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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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별, 서쪽의 불꽃 - 검 손잡이에 새겨진 단어
Dr. 보라짱 지음 / 보민출판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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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 년을 살아가다 보니 문득 내가 걸어온 길은 어땠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치열했던 젊은 날의 열정은 어느새 희끗해진 머리칼 사이로 숨어들었고, 남들보다 앞서가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기억들은 빛바랜 사진처럼 아련하다.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을 들여다보는 것을 오랜 취미로 삼아온 나에게, 시간은 늘 냉정하고 준엄한 심판관이었다. 그 거대한 연대기 속에서 평범한 개인의 삶이란 그저 한 줌의 모래알에 불과해 보였다. Dr.보라짱의 장편 소설 <동쪽의 별, 서쪽의 불꽃>은 역사라는 단단한 대지 위에 상상력이라는 숨결을 불어넣으며 나의 고정관념을 흔들어 놓았다.

이야기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마주했을 법한 유물, 바로 '경주 계림로 황금보검'에서 출발한다. 신라 무덤에서 출토되었으나 확연히 서역의 양식을 띠고 있는 이 이국적인 단검과, 페르시아 왕자의 동방 망명기를 담은 구전 서사시 <쿠쉬나메>가 더해지면서 소설은 1,500년 전 서역과 신라를 잇는 거대한 대서사로 태어난다. 이야기는 이슬람 세력의 침공으로 고국이 멸망하는 비극적 사건에서 촉발된다. 나라를 잃고 머나먼 신라로 망명해 온 페르시아의 왕자와 저마다의 결핍과 상처를 지닌 채 이방인을 맞이한 신라의 젊은 전사들이 이 대여정의 주인공들이다.

소설은 이들의 만남을 시작으로 촘촘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서역의 세공 기술과 신라의 정신이 결합하여 황금보검이 탄생하는 사건은 국경을 초월한 인물들의 운명적 연대이자 뜨거운 약속의 증표였다. 특히 검 손잡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1,500년간 아무도 읽지 못했다는 서역 문자의 ‘비밀스러운 한 단어’를 추적하는 미스터리 구조는 이야기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인물들은 사막의 거친 전쟁과 험난한 모험 속에서 다양한 사건들과 마주하며 두려움과 배신, 깊은 죄책감을 겪는다. 영웅적 승리에 집착하기보다 시련 속에서 상처 입은 인물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치유해 나가는 구원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된다.

인물들이 저마다 '돌아온 자리를 찾아가는 결말'의 순간이 감동적이다. 왕좌를 둘러싼 음모와 전쟁의 소용돌이가 지나간 뒤 인물들의 내면적 귀착지를 조명한다. 고국을 잃고 영원한 이방인으로 방황하던 페르시아의 왕자는 복수와 재건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을 품어준 신라 땅과 동료들의 신의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영혼의 고향을 발견한다. 신라의 전사들 역시 피비린내 나는 전장을 거치며 스스로의 나약함과 상처를 마주하지만, 단검에 새겨진 약속을 지켜내는 과정을 통해 파괴된 일상을 회복하고 본연의 자리를 되찾는다. 이들의 '돌아옴'은 단순한 공간적 복귀가 아니라, 깊은 방황 끝에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삶의 의미를 재확립하는 정신적 구원이다. 특히 가슴 깊이 남은 ‘늦게 출발한 사람도 결국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다’는 말은 청춘의 불꽃을 지나 은은한 황혼의 초입에 들어선 50대의 가슴을 뜨겁게 적셨다. 세상은 늘 빠른 것에만 가치를 부여하지만, 역사는 거대한 물줄기도 결국 수많은 굽이를 돌고 돌아서야 바다에 이른다는 것을 말해준다. 조금 늦었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끝내 자신만의 소중한 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격려는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이 서사는 나처럼 인생의 깊이를 관조하는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저마다의 사막을 건너며 방황하는 젊은 세대 모두에게 따스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역사 소설이라는 픽션의 창을 통해 딱딱한 유물 뒤에 숨겨진 인간의 뜨거운 숨결과 시대적 고뇌를 생생하게 배우며, 나아가 시공간을 초월한 인간적 이해와 공감, 그리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갈 단단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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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의 언어 - 소리, 몸짓, 냄새로 소통하며 진화해 온 생물들
롭 던 지음, 송근아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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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스타트업의 품질관리(QC) 팀장으로 매일 미생물의 생장과 사멸을 모니터링하고, 수의사로서 생명의 생로병사를 지켜봐 온 지도 삼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첨단 바이오 기술의 최전선에서 ‘생명을 통제하고 규격화’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 생태계에 저지른 오만과 파괴에 대한 깊은 부채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만난 진화생태학자 롭 던 교수의 <공생의 언어>는 내 안의 오랜 고민과 마주하게 한 거울이자,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나침반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자연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을까. 수의사로서 나는 동물의 눈빛, 몸짓, 그리고 미세한 체취 속에서 수많은 의미를 읽어내곤 했다. 그것은 인간의 정제된 문자나 말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정직한 ‘공생의 언어’였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는 스스로를 지구 생태계의 꼭대기에 안주시킨 채, 다른 생명체들의 신호를 해독하는 ‘수신기’를 꺼버렸다. 저자가 지적하듯 인류의 역사는 다른 종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과정이었으며, 그 대가는 참혹하다. 인간이 저지른 무분별한 개발과 기후 변화는 수많은 종을 멸종으로 몰아넣었고, 결국 인간 자신마저 생태계로부터 철저히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매일 무균실에서 완벽하게 통제된 미생물을 검사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인간이 만든 이 인공적인 격리가 지구라는 거대한 유기체를 얼마나 병들게 하고 있는지 절감한다.

저자는 미시적인 배꼽 속 세균부터 거시적인 숲의 생태계까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홀로 존재할 수 없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인간 역시 ‘다섯 개가 넘는 유전체를 지닌 괴물’이자, 수많은 공생체와 얽혀 있는 연결고리의 일부일 뿐이다. 과거 인류가 꿀벌잡이새의 소리를 알아듣고 함께 꿀을 채집했던 것처럼, 우리는 본래 자연과 긴밀한 ‘상리공생’의 관계를 맺으며 문화적 공생진화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현대 문명은 이 오래된 소통 수신기를 차단했고, 결국 생태적 고립을 자초했다. 책을 읽는 내내 품질관리 팀장으로서의 시선과 수의사로서의 시선이 교차했다. 생명을 지나치게 통제하려는 인간의 오만은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저자가 전하는 진정한 메시지는 단순한 자연 보호나 동정심에 기댄 연대가 아니다. 저자는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종의 웰빙’을 동등하게 고려해야만 인류도 생존할 수 있다는 경고와 대안을 제시한다. 종간의 새로운 협력 관계는 늘 기후가 급변하는 시기에 형성되었다. 다가오는 기후 위기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꺼버렸던 자연과의 소통 수신기를 다시 켜고, 다른 생명체들의 웰빙을 우리 자신의 생존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냄새로, 몸짓으로, 소리로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이 다가올 생태적 재앙 속에서 인류가 고립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 책은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에 부채감을 느끼는 현대인과 바이오·생명과학계 종사자들에게 깊은 성찰을 안기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독자들은 미생물부터 거대 생태계까지 이어지는 상리공생의 진화를 배우며, 인간 중심적 오만을 버리고 자연의 신호를 다시 감각하는 고귀한 연대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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