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배심원 스토리콜렉터 72
스티브 캐버나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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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직 사기꾼이었던 변호사 에디 플린에게 거대 법률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루디 카프가 다가와 이 도시에서 가장 큰 형사재판의 차석 변호인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한다. 루디가 1년째 맡은 일은 스타로 떠오른 배우 로버트 솔로몬, 일명 바비가 결혼한 지 갓 두 달이 된 배우 아내 아리엘라 블룸과 경호 책임자 칼 토저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유명한 사건이었다. 검찰은 바비가 부부의 침대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두 사람을 목격하고 화가 나서 그들을 죽였을 거라고 주장했다.

바비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결백을 말했지만 증거들은 모두 그를 범인이라 가리키고 있었다. 사건을 거절하려고 했던 에디는 바비를 만난 이후 그가 정말 죄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를 변호하게 된다.

 

한편, 진짜 범인 조슈아 케인은 바비의 재판이 시작되기 전, 자신이 신분을 훔친 사람이 배심원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손을 쓴다.

 

 

 

 

 

 

사기꾼이라는 특이한 전직을 가진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법정 스릴러 소설은 범인이 누구인지 일단 밝혀놓고 시작했다. 케인은 형사 법원 앞에서 몇 주 동안 노숙자로 지내다가 배심원단 후보를 입수했고, 그중 한 사람을 골라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게 그와 똑같이 외모를 바꾸고 목소리나 말투 등을 익혀 그 사람 행세를 했다. 그는 남을 흉내 내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케인이 왜 배심원이 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지, 그리고 사람들을 왜 죽이고 다니는 건지는 후반으로 가면서 밝혀졌다.

 

모든 언론의 주목을 받는 바비의 사건에 에디가 발을 담그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아내 크리스틴, 딸 에이미와 떨어져 사는 이유는 아마도 이전에 그가 맡은 사건으로 인해 가족들이 위험해 처했던 적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에디가 가족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등장할 때마다 마이클 로보텀의 "조 올로클린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했다.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여러 번 위험에 빠졌었기에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주인공들의 모습이었다.

"에디 플린 시리즈"의 세 번째 소설이지만, 국내에는 첫 출판된 작가의 작품이라 앞선 두 편의 내용을 알 수는 없었다. 이전 시리즈에서 에디와 사이가 안 좋았던 것으로 보이는 전직 FBI 요원이자 현직 사설 조사원으로 일하는 하퍼가 등장해 에디에게 큰 도움을 줬고, 루디 법률회사의 배심원 컨설턴트로 고용된 아널드 노보셀릭 역시 에디와 좋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바비를 위해 협력하게 된다.

 

처음엔 바비의 결백을 도무지 밝힐 수 없었지만 칼 토저의 입에서 나온, 나비 모양으로 접힌 1달러로 인해 해결의 실마리를 쥐게 된다. 거기서부터 풀어가는 연쇄살인의 비밀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고 케인이 진짜 머리가 좋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머리를 써서 빠져나가고 그의 일을 돕는 사람도 있어서 행운은 언제나 그의 편인 것 같았지만, 정의는 언제나 이기기 마련이었다.

물론 소설이 끝날 때까지 몇 번이나 상황이 뒤집혀서 뒤통수를 적어도 세 번 이상 맞아서 계속 감탄을 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이 딱 어울리던 소설이었다.

 

케인은 몇 번이나 언급되던 유명한 소설에 등장한 설정이 살인의 이유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불행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증오하는 마음이 생길 수는 있었지만, 그게 살인을 정당화시켜주는 건 아니었고 그걸 본인이 판단할 권리도 없었다. 다른 스릴러 시리즈에서도 비슷하게 등장한 자기 논리에 흠뻑 빠진 미친 사이코패스였다.

 

법정 장면에서는 검사 아트 프라이어와 에디가 주도권을 잡으려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게 흥미로웠고, 후반으로 가면서는 윤곽이 드러난 진짜 범인을 밝혀내려고 하던 에디와 도망치기 위해 계획을 짜던 케인의 두뇌 싸움이 스릴 있었다.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준 소설이라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500페이지 가량 되는 소설인데 후다닥 읽어버렸을 만큼 재미있었다. 에디 플린 시리즈의 이전 책들도 출판해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뭔가를 두려워하며 자랐다. 귀신, 벽장 속 괴물, 침대 밑에 숨어 있는 악마. 부모들은 그건 단지 너의 상상이라고 말한다. 악마는 없단다. 괴물은 없단다.
하지만 있다.
(……중략)
여기에 즐거움을 위해 살인을 한 사람이 있었다. 게임이었다. 그건 사람이 아니었다. 괴물이었다. - P348.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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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나는 나일 때 가장 편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투에고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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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어피치, 튜브에 이어 무지&콘의 에세이가 나왔다. 콘은 어떻게 등장할지 궁금했는데 무지와 짝꿍인가 보다.

캐릭터 소개를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건 무지가 단무지였다는 거다! 맙소사, 토끼옷 입은 단무지라니!!! 최근 가장 충격적인 사실이다.

 

 

 

 

 

다 잘될 거라고 말하진 않을게

 

 

토요일이 두근두근한 이유는 로또 때문! 이번에도 안 될지라도 로또 추첨 번호가 나오기 전까지는 꿈을 꿀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그러다 당첨되면 대박인 거고.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 5000분의 1이라는데, 책에는 반반이라고 쓰여 있다. 되거나 안 되거나. 정확한 말이다.

 

초반에 로또 얘기가 나오고 몇 페이지 뒤에는 행운의 네잎클로버가 그려져 있어서 괜스레 만지작거렸다. 운이 상승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나만 고르는 건 어렵다는 내용에 왜 만화 고기가 그려져 있는지. 뭘 먹고 싶은지 하나만 고르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라는 걸 말하려는 걸까.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뷔페에 가야 하는 나 같은 사람 많겠지?

음식에 관한 선택이 아니더라도 하나만 고르라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때로는 마음대로 고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으니까. 마음이 여러 개인 만큼 여러 개 고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스페인어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뜻의 케세라세라(que sera sera).

미래는 알 수 없어서 불안하고 어찌할 줄 모르겠을 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이 순간이 그저 지나가길 기다린다.

케세라세라, 왠지 마법처럼 느껴지는 주문이다.

 

 

좋았던 감정을 담아두는 캔이라니.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분이 별로일 때 행복했을 때의 기분을 꺼내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좋았던 기분뿐만 아니라 두근거렸던 기억, 행복한 기억도 담아두면 정말 좋겠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사랑이든 일이든, 아니면 무심코 넘겨버렸을 어떤 기회든.

타이밍을 알아볼 눈이 정말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단 한 번뿐일 타이밍을 알아본다면 많은 게 달라져 있겠지.

 

 

 

 

 

불안은 토끼옷에 달린 꼬리 같아

 

나에 대해 어떻게 기억할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기분이 좋거나 혹은 나쁠 때 만난 사람, 축 처져있는 나를 만난 사람 등 각자 다르게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어떻게 기억하든 그 모든 사람은 나고, 그런 모든 나를 기억하는 것도 바로 나다.

 

안 읽어봤지만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미움받을 용기>. 다들 미움받을 용기를 내려고 할 때 그냥 미워하기보다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좋았다.

 

 

누군가에게서 고민을 듣게 되면 괜히 미안해진다는 말에 공감이 됐다. 해결 방법을 알려주고 싶지만 나도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모를 때 그냥 들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 "고민"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괴로워하고 번민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답을 찾는 게 아닌 상대의 고민을 들어주겠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뜻인 것 같다.

 

 

 

 

 

나는 나일 때 가장 편해

 

어릴 때 내가 한 명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던 부분에서 웃음이 났다. 어릴 때만이 아닌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으니까. 즐겁고 신나는 일은 내가 하고 어려운 일은 다른 내가 한다는 것! 상상만 해도 즐겁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으니 손톱, 발톱 먹은 쥐에 대한 동화가 생각나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진심을 말하지 않는다. 진심이라고 하고선 진짜 마음은 꽁꽁 숨기고 있으니까. 웃음 뒤에 다른 마음, 친절함 뒤에 가식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모두가 진심을 말하는 세상이라면 정말 끔찍하다.

그걸 알고도 살아가는 것, 그래서 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뒷부분에 부끄러운 마음이 얼굴에 드러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는 게 생각났다. 싫은 사람을 대할 때나 안 좋은 기분은 얼굴에 특히 잘 드러나서 무표정으로 일관하려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주변에서는 다 알아챘지만.

하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게 되는 것 같다.

 

 

모두에게 있을 기억 보관함에 대한 표현이 너무 딱 들어맞았다. 4단 서랍장처럼 비밀의 보안 정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어떤 사람에게 몇 번째 서랍까지 오픈할지 결정하는 것. 밝히기 어려워 꽁꽁 숨기려고 하는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왠지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 같다.

 

 

 

 

 

나의 외로움까지 사랑할래

 

 

복잡한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할 단어는 정말 없는 것 같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혹은 기분 나쁜 상황은 하나의 감정일 때도 있지만 여러 감정이 섞어 복잡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마치 "웃기다"와 "슬프다"의 합성어인 "웃프다"처럼.

다른 감정도 이런 합성어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사람마다는 각자의 보폭이 있다. 느리게 걸으며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빠른 걸음으로 목적지만을 향해 가는 사람이 있다. 인생의 동반자 혹은 친구, 가족 모두 각자의 걸음으로 자신이 목표한 곳을 향해 간다.

보폭이 달라도 서로의 속도를 이해해주고 때로는 기다릴 줄 아는 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옳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묵묵히 바라봐 주고 응원해주는 것 또한 큰 힘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별은 이별. 이 별에서 한때 알고 지내던 사람.

엄청 슬픈 말인데 이 와중에 한글의 위대함에 먼저 감탄했다.

 

사랑의 끝을 말하는 슬픈 감정보다는 한결같이 지속되는 감정이 언제까지나 이어지길 바라는 건 욕심인가.

 

 

 

 

 

혼자라서 좋고, 함께라서 더 좋은

 

 

그러고 보니 "웃음"과 "울음"이 받침 한 글자 차이인 줄 이제서야 깨달았다. 하나뿐인 차이인데 두 단어의 거리는 천지차이. 웃음과 울음의 각 감정은 그렇게 서로 닿을 수없이 멀기만 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너무나 당연한 걸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만큼 성격도 제각각이라 그럴 수 있지만, 당연한 건 당연한 거니까 그걸 지키지 않으면 왠지 싫은 사람 쪽으로 분류하게 된다.

특히 약속을 안 지키는 거, 정말이지 너무너무 싫다! 거짓말도, 험담도. 그냥 모두 다 공감이 되는 것들뿐이네.

 

서로 다른 점이나 싸울 때도 있는 관계에 대해 말하지만, 결국 "우리"라는 것이 상대와 나를 묶어준다.

 

 

 

 

 

 

토끼옷을 입은 단무지 무지와 악어를 닮은 정체불명의 콘의 재미있는 에세이였다.

무지무지 행운이 넘치길, 무지무지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다는 무지의 말이 무지무지 좋았다.(하지만 아직까지 충격인 단무지...)

 

언제나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는, 위로가 되어주는 카카오프렌즈 에세이였다.

 

 

 

* 이 리뷰는 아르테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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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생거 사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3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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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캐서린은 자신을 예뻐하는 이웃 앨런 부부가 요양차 떠난 바스에 동행한다. 바스에 도착해서 치장을 하고 앨런 부인을 따라 무도회장에 가지만 아는 사람이 없어서 누구도 캐서린에게 춤을 청하지 않았다. 다른 날 무도회장에서 그곳 주인에게 소개를 받은 헨리 틸니 씨와 대화를 나누며 가까워지고 그에게 호감이 생긴다.

 

얼마 뒤, 캐서린은 바스에 온 큰오빠 제임스를 우연히 마주쳐 오빠의 친구 존 소프와 그의 여동생 이저벨라를 알게 된다. 이저벨라와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된 캐서린은 더없이 행복하지만, 지난번 무도회장에서 만난 틸니 씨를 이후로 볼 수 없어서 아쉬워한다. 그러다 오빠와 함께 간 무도회장에서 틸니 씨를 다시 만나 기뻐하고, 그의 여동생 엘리너 틸니 양을 알게 되어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인 오스틴 사후에 출간된 소설이라지만, 그녀가 20대 때 쓴 거의 초기작이라는 <노생거 사원>을 읽었다. 제인 오스틴이 젊었을 때 쓴 소설이라 그런지 혼기 꽉 찬 20대 아가씨가 주인공인 다른 소설과는 다르게 이제 막 숙녀가 된 10대 캐서린이 주인공이었다.

 

부유한 목사 집안의 딸로 태어난 캐서린에 대해 어릴 적에 그녀를 봤더라면 타고난 여주인공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거라는 말이 첫 문장이었다. 평범보다 조금 밑돌지만, 10대가 되어 조금 아가씨 티가 나기 시작하면서 때로는 예쁘다고까지 할 수 있다던 표현이 왠지 웃겼다. 주인공을 미화시키지 않는 객관적인 시선이 재미있었다.

 

가끔은 예쁘게 봐줄 수 있는 캐서린이 바스에 가서 헨리를 만나 호감을 가지고, 이저벨라의 오빠 존은 캐서린에게, 캐서린의 오빠 제임스는 이저벨라에게 관심을 보이는 부분까지는 대체로 작가의 이전 소설과 비슷한 흐름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시대에 젊은 남녀의 감정 표현은 정말이지 너무 모호해서 때로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런 대화의 맛도 즐거워서 피식피식 웃으며 읽었다.

 

웬만한 인물들이 모두 등장한 이후에 존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캐서린이 느끼는 짜증과 분노를 나 역시 느꼈다. 존은 허세가 가득하고 허풍도 심하면서 거짓말도 능수능란하게 했다. 존 때문에 캐서린이 곤란한 지경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헨리의 오해를 살까 걱정했었다. 어찌나 꼴 보기가 싫던지 속으로 욕을 엄청 했다.

그런데 존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의 여동생인 이저벨라도 오빠와 똑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본인이 원하는 건 곧 죽어도 이뤄내야 하는 고집쟁이였다. 캐서린이 틸니 남매와 선약이 있다고 하는데도 마차 드라이브에 꼭 가야 한다면서 떼를 썼고 캐서린이 가지 않으면 자신도 안 가겠다고 선언해 캐서린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오빠 제임스와 결혼을 약속하게 된 후에는 속물적인 모습을 보였다. 가족 모두 가식적이라 정말 싫었다.

그들 남매가 짜증이 나긴 했는데 개성 강해서 조금은 재미있기도 했지만, 결말에 캐서린이 한방 더 먹어서 역시나 좋게 봐줄 수는 없었던 캐릭터들이었다.

 

캐서린이 이들 남매에게 벗어나 틸니 남매와 노생거 사원으로 가면서는 소설의 분위기가 조금은 바뀌었다. 제인 오스틴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고딕 소설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아무래도 당시에 유행하던 장르이기도 하고 주인공 캐서린이 그런 소설을 좋아하며 읽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기 때문에 조금은 실험적인 시도가 아니었나 싶다.

음산한 분위기와 연결되어 틸니 남매의 아버지 틸니 장군과 관련된 캐서린의 무서운 상상력이 발휘되고, 그걸 헨리가 알게 되면서 나도 속이 상했다. 밤에 이불킥을 할 정도로 이상하고 헨리 입장에서는 정말 불쾌할 수도 있는 상상이었기에 참 안타깝고 부끄러웠다. 캐서린이 아직 10대라서 조금은 가볍고 어린 게 느껴졌다.

 

초기작이라 그런지 고딕 소설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작가의 말이 소설 중간중간 개입되기도 하지만, 그녀의 다른 작품들처럼 결말은 해피엔딩이었다. 빌어먹을 존의 개수작 때문에 마지막에 아주 큰 위기를 맞이하긴 하지만 잘 해결되어 캐서린과 헨리는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 사실은 둘이 잘 안될까 봐 마지막까지 마음을 졸였는데 다행이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역시나 재미있다. 작가가 창조한 캐릭터들이 여러 사건 속에서 다양한 재미를 주고, 18세기를 살았던 제인 오스틴이 바라고 꿈꾸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주인공은 언제나 매력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뻔한 해피엔딩이 찾아오는 뻔한 결말이라고 해도 모두가 바라는 인생의 끝은 행복이기에 그녀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춤이나 결혼이나 선택권은 남자에게 있고, 여자에겐 거절권만 있어요. 춤이나 결혼이나 남자와 여자가 쌍방의 이익을 위해 맺은 약속이지요. 또 일단 맺어지면 깨질 때까지는 서로에게만 속하고요. 두 사람은 각기 상대방이 한눈을 팔지 않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더 완벽하지 않을까, 다른 누구하고 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펴지 못하게 막는 것이 최상의 이익이지요."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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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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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5살 "나"는 중환자실에서 혼수상태에 빠져있다가 깨어났다. 깨어나 처음 본 사람인 권대령은 나에게 희망의 마스코트가 되었다고 말했다. 트럭 운전을 하던 아빠가 제 한 몸 희생해 무장간첩이 탄 차를 정면으로 들이받아 즉사시킨 훌륭한 일을 했다는 게 알려져 국민들은 내가 깨어나길 간절히 바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자신이 나를 돌볼 것이라 말하며 나를 "원더보이"로 만들었다.

 

사고가 날 당시 눈부신 빛을 봤던 나는 깨어난 이후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다른 사람이 격하게 공감하게 만들 수도 있었고, 누군가의 물건을 만지면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알게 되기도 한다.

 

 

 

유일한 가족인 아빠를 잃은 끔찍한 사고로 믿을 수 없는 능력을 얻게 된 나, 김정훈의 갑자기 바뀐 인생에서 시작되어 격동의 80년대 사회로 이야기가 확장되었다. 처음엔 졸지에 고아가 된 김정훈의 인생이 안타까웠고, 권대령 때문에 송년특집 방송에 나가 입이 거친 이만기를 만나는 등의 에피소드는 조금 웃기기도 했다. 그러다 사람들을 고문하고 자백하게 만드는 목적으로 김정훈의 능력을 사용하게 되면서 내용에 이전과는 다른 무게가 실렸다.

 

아직 세상에 대해, 삶에 대해 알기엔 너무나 어린 나이였던 15살의 소년이 사는 80년대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해서는 안 되고, 그 아픔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어 쥐도 새도 모르게 붙잡혀가 사형 판결을 받을 수 있는 시대였다. 처음엔 권대령이 하는 일이 뭔지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왠지 그가 싫었던 김정훈은 능력이 없어진 것처럼 행동해 그의 통제하에서 벗어난다.

그 후 군 병원에 있을 때 자신을 돌봐주며 갈 곳이 없어지면 찾아오라던 간호병 선재 형을 만나고, 그에게서 강토 형을 소개받아 부조리한 이 시대에 대해 깊이 알게 된다. 여자인 정희선이 왜 남자인 강토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됐는지, 재진 아저씨는 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려고 하는지 깨달아가고, 김정훈은 피부로 생생히 느끼는 이 시대 속에서 아빠에게 죽었다고만 들었던 엄마가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찾기 위해 애를 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지만 지금의 자유로운 시대는 국민이 싸워서 찾은 것이고 그건 몇 십 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선재, 강토, 재진 아저씨와 같은 사람들은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하며 싸우고 또 싸웠다.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시대라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실을 경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희선이 강토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만든, 이수형이라는 남자와 관련된 사연은 중반에 등장했다가 후반에 훅 치고 들어와 가슴을 무너지게 했다. 정희선은 부조리한 세상, 부당한 세상에 맞서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마음에 남자의 외형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것 같다.

 

아빠가 돌아가셔서 허망한 어린 김정훈에게 슬퍼하면 너 혼자 울게 될 거라고 말하던 권대령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김정훈의 특별한 능력과 관련해 사람들이 함께 우는 몇몇 장면에서 권대령마저 눈물을 흘리는데 유일하게 대통령만은 울지 않으며 사람들의 반응에 의아해했던 것은 말 그대로 독재 정권을 보여주는 게 아니었나 싶다. 타인의 감정과 아픔에 공감하며 그를 이해하는 것은 큰 힘이었고, 그것에 공감할 수 없는 사람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있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시대 속에서 원더보이 김정훈은 초반엔 어리기 때문에 세상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있지만, 외적인 세상보다 유일한 가족인 아빠를 잃고 고아가 되어 세상에 홀로 떨어진 막막한 내적인 감정에 골몰한 탓이 크다고 여겨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 사람들에 의해 세상을 보고 느끼면서 소년은 성장했고 시대 역시 싸운 만큼 성장을 했다. 소년의 성장 소설이면서 시대의 발자취를 담은 소설이기도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국가는 왜 자기 안에 고통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면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이적행위자로 몰 이유가 없지 않나요? 우리에게는 이런 국가 말고 다른 국가를 선택할 권리가 없는 건가요?" - P190.191

"행복은 이토록 훤히 드러나는데, 고통은 꼭꼭 감춰져 있어요. 때리고, 부수고, 가두고, 불태우는 이유가 거기에 있죠. 어둠 속에 밀어넣고 감추기만 하면 되니까. 지금 우리는 차갑게 식어가는 캄캄한 밤 안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없다고 생각하죠. 그러니 그들의 고통도 이 세상에 없는 거예요. 신부님, 과연 이 고통이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을까요?" - P285.286

"이해란 누군가를 대신해서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그들을 사랑하는 일이야."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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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호수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정용준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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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빈 대학의 한국학과에서 나의 단편 시나리오를 번역해 각색과 연출까지 하겠다는 수업에 초청을 받아 번역원 직원 겸 가이드를 맡은 민영 씨와 빈에 왔다. 빈의 숙소에 도착해 호텔 팸플릿의 지도를 보다가 장크트갈렌에 산다던 무주가 생각이 났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며 7년 전 갑자기 나를 떠나 그 남자와 결혼해 스위스로 떠난 연인이었다.

 

무주는 절대 연락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무심결에 메일을 보냈고, 답장 없는 메일에 자책을 하며 빈에서의 일정을 소화하다가 가까우니 올 수 있으면 오라는 무주의 답장을 받는다. 일정을 조율하고 장크트갈렌에 도착한 나는 역으로 마중 나온 무주와 그녀의 딸 유나를 만난다.

 

 

 

 

 

 

절대 연락하지 말라고 했던 전 여자친구에게 7년 만에 보낸 메일로 인해 그녀와 만났던 시간과 헤어짐의 순간,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 과거 그 시절에 대해 말하는 소설이었다.

그리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던 짧은 소설이었지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느낄 수 있었다.

화자인 "나" 한윤기는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이었는데, 오래전 단편 시나리오로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한 이후 손을 대는 것 족족 망해 이제는 밥벌이를 위해 전국을 돌며 강의를 하는 처지였다. 그런 그가 오스트리아에서 한국어로 쓴 자신의 시나리오를 독일어로 번역하는 수업에 참관해 애매한 단어의 뜻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서 나라마다 언어의 차이가 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시나리오에 쓴 "친구"에 대해 그냥 친구는 없다며 남자친구인지 아니면 여자친구인지 말해주길 바랐고, "저만치"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하는 것을 알고자 했다.

다른 언어로 진행된 그 수업 외에 같은 나라 사람인 윤기와 민영이 "세계의 호수"에 대해 말하는 장면과 4년이나 만났던 윤기와 무주마저도 대화를 할 때 잘못 전달되고 때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의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윤기가 쓴 시나리오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나 그가 "그냥"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는 정보를 통해 윤기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무주와 만날 때부터 이미 그는 애매모호함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 표현을 즐겨 썼고, 무주가 시나리오를 읽어주며 적절하게 고쳐줬다.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서부터 그런 모호함이 몸에 배어있었으니 감정에 대해서도 당연히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윤기를 너무나 잘 아는 무주가 그의 감정을 느끼고 안간힘을 쓰다 결국 비참해질 동안 모호함으로 직접적인 표현을 피해왔던 윤기는 이유도 채 깨닫지 못한 채 이별을 통보받아야 했다.

이별에 정확한 수순이라는 게 있는 건 아니지만 감정을 피하기만 하다가 무주를 잃은 윤기도, 혼자 마음을 정리하고 이별을 고한 무주도 괜찮은 행동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4년이나 만난 연인과 헤어지게 됐을 땐 각자의 이유로 정말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다. 혼자 깨닫고 아파했던 무주가 그랬고, 7년 동안이나 이유를 몰랐던 윤기가 그랬듯 말이다.

 

무주의 집에 머무는 동안 윤기는 그의 성격처럼 직접적인 의문을 표하지 않다가 마지막에서야 무주에 의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작가의 말처럼 쓰인 후기에 이별과 작별에 대해 언급한 문장을 통해 윤기는 작별에서 비로소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7년 만에 비로소 감정을 털어낸 윤기는 후련해지고 조금은 편안하게 무주를 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감정에 대한 언어, 표현, 번역 등을 소재로 한 이 책을 읽으니 사람들 각자에겐 바벨탑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은 적당한 말과 행동을 취하고 있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상대에겐 진정한 의미가 닿지 않아 다른 뜻으로 오해하기도 하는 표현의 차이와 다름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오랜 시간 사귀고 만나온 친구, 연인이라도 한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건 도무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 이 리뷰는 아르테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만나고 싶고 만나고 싶지 않다. 잊었지만 잊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지만 보고 싶다. 만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왜 만나면 안 되는 건지 의문을 품고 있다. - P40

한국엔 있고 오스트리아엔 없거나 반대로 이곳엔 있고 저기엔 없는 것이 있을 것이다. 같은 단어를 쓰지만 사실은 다 다른 언어들. 쉬운 단어일수록 단순한 진술일수록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 P24

무주는 목소리, 눈빛, 한숨, 웃음만 보고도 내 마음의 모양을 알았다. 어제의 문장과 오늘의 문장의 다름과 뉘앙스의 차이를 짚어냈고 원래 쓰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어서 내 마음에 맞게 문장과 이야기를 고쳐주기도 했다. - P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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